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거스를 수 없는 물결’ 전교조 분회 한달새 574개 / 정해숙

등록 2011-07-26 19:58수정 2011-07-26 21:26

1989년 5월28일 연세대에서 기습적으로 창립식을 마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6월1일 노동부에 설립 신고를 하고 전국적인 지부·지회 결성에 나섰다. 당시 임시집행부 법규국장 이철국(오른쪽·현 대안중등 불이학교 교장), 교권국장 배춘일(왼쪽) 상임위원이 신고서를 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9년 5월28일 연세대에서 기습적으로 창립식을 마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6월1일 노동부에 설립 신고를 하고 전국적인 지부·지회 결성에 나섰다. 당시 임시집행부 법규국장 이철국(오른쪽·현 대안중등 불이학교 교장), 교권국장 배춘일(왼쪽) 상임위원이 신고서를 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52
1989년 5월28일 결성된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는 시도 지부, 시군구 지회, 단위학교 분회 체계를 갖추기로 하고 지부·지회·분회 결성을 이어갔다. 광주에서도 6월7일 지부 결성에 이어 학교별로 분회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나는 6월27일 직원회의 때 “오늘 오후 5시 음악실에서 효광여중 분회 결성식을 하겠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들은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발표했다. 그날은 마침 <한국방송>(KBS) 광주지국의 라디오방송에 고정출연하는 화요일이었다. 직원회의와 학급조회가 끝나고 1교시 시작 전 방송 출연을 위해 나가려는데 장학사 몇명이 학교로 오고 있었다. 분회 결성 계획을 알린 직원회의가 끝나자 교장 선생님이 교육청에 보고를 했고, 교육청엔 완전히 비상이 걸린 것이었다.

개의치 않고 차를 몰고 나가려는데 가정과 장학사가 몰고 들어오는 차와 교문 앞에서 마주쳤다. “정 선생, 어디 가세요?” “방송국에 가는데 왜요?” “나 정 선생 만나야 돼요. 나 따라갈게요.” 끝내 방송국까지 따라온 장학사는 차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방송을 끝내고 나오니 그는 잠깐 차 한잔하자고 붙들었다. 내 차는 두고 자기 차로 이동하자고 해서 전혀 의심 없이 올라탔다. 그런데 방향을 순천으로 잡는 것이었다. 그의 임무는 분회 결성식 때까지 나를 붙들어 창립을 막는 것이었다.

순천의 한정식집에 자리를 잡은 뒤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 정말 피곤하네….” 내 말에 장학사는 “피곤하면 그리 좀 누워.” 내 말의 참뜻을 짐작했으련만 엉뚱하게 받았다. “갑시다. 눕긴 어디 누워.” “아니 좀 쉬라니까. 나도 피곤하네.” 하긴 교육청의 임무를 띠고 온 그도 피곤하긴 할 터였다. 그가 먼저 눕기에 나도 옆에 눕는 시늉을 했다 일어났다. 그사이 장학사는 잠이 든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식당을 나와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갔다. 광주행 차가 바로 없어 10여분 기다리다가 탔는데 그 순간 장학사가 터미널로 쫓아왔다. 차에 올라타서는 내리라고 보챘다. “정말 피곤하게 하네요, 정말. 나 가야 되잖아.” “조금만 내려 봐요.” 내려서 잠시 멈칫거리고 보니 2시쯤 됐다. 분회 창립은 5시에 하기로 돼 있었다. 공중전화를 찾아 동료 조합원한테 전화를 했다. “나 지금 순천까지 와 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될 것 같아요. 장학사가 나를 끌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러니 조합원들에게만 조용히 말해서 안 하는 것으로 합시다. 교육 관료들이 감시하며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냥 기분 좋게 퇴근하시지요.”

일단 분회 결성식을 취소한 나는 느긋하게 광주로 돌아와 장학사와 무등산 신양파크호텔 커피숍에서 차를 한 잔 더 마셨다. 방송국으로 돌아가 내 차를 몰고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5시30분쯤이었다. 그때까지 교장 선생님도 퇴근을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날 장학사의 집요한 방해로 우리 학교 분회 창립은 무산되었다. 촌극이 따로 없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그길로 퇴근한 나는 다른 학교 선생님들과 만나 대책을 협의했다. 정부 차원의 탄압 강도가 높아지고 있었고 개별 학교마다 방해 방법도 다양해서 선생님끼리 상황 공유와 공조 모임을 수시로 해야 했다. 몇몇 학교 대표들과 논의한 끝에 효광여중·화정중·봉선중·광주농고·체육고 이렇게 다섯 학교가 출근시간 전에 합동 분회 창립을 하기로 했다. 7월1일 아침 7시 체육고 소강당에서 5개 학교 조합원이 함께 분회 결성식을 했다. 체육고 김일룡 선생님을 비롯한 몇 분의 도움을 받아 소강당을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나와 김진·이현숙 선생님이 참석했다. 효광여중 분회장을 맡은 나는 5개 학교 분회장을 대표해 분회 창립 선언문을 낭독했다. 창립식을 끝내고 출근해 직원회의가 끝난 뒤 교장 선생님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오늘 아침 체육고에서 다섯개 학교가 같이 전교조 분회 결성을 했습니다.” 효광여중 분회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비단 우리 학교만이 아니었다. 조합원 폭행과 학부모를 동원한 조합원 수업 방해, 조합원 부모 회유와 공갈 등 전국 곳곳의 분회 창립이 교장 선생님들의 다양한 방해에 부딪혀야 했다. 전교조 결성 저지에 소극적인 교장을 직위해제까지 하는 등 정부의 압력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전교조 결성 한달 남짓 만인 7월3일까지 전국 574개 학교에 분회가 결성되며 거스를 수 없는 교원노조의 물결을 만들어갔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