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5월28일 전교조 결성 직후부터 당시 노태우 정권은 전방위 공적·사적 수단을 동원해 노조 가입 교사들을 대상으로 탈퇴를 강요했다. 이에 맞서 서울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전교조 집행부 간부 30여명과 그 가족들이 탈퇴 시한인 7월15일 정부에 대화를 촉구하는 촛불기원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53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지부·지회·분회까지 체계를 갖추며 결성을 이어가자 노태우 정권은 징계 방침의 수위를 높여 갔다. 1989년 6월30일 ‘분회장급 이상 결성 주도자에 대해 중징계하되 단순 가담자에 한해서는 감봉 등 처벌을 완화한다’는 방침에 이어 7월1일엔 ‘7월15일까지 탈퇴하지 않는 조합원 전원을 파면 해임하겠다’는 내용의 강화된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탈퇴 1차 시한인 7월15일까지 탈퇴는커녕 오히려 단위학교 농성, 농성 수업, 명단 공개 등으로 투쟁을 전개하자 문교부는 ‘징계를 8월8일까지 완료한다’고 연기했다.
한편으로 단위학교에서는 반인륜적 방법까지 동원한 괴롭힘으로 탈퇴를 강요했다. 우리 효광여중 분회 출범 때 조합원은 12명이었으나 장학사·교장·교감이 총동원돼 가족들을 압박하면서 한두명씩 탈퇴하기 시작했다. 결혼한 여성 조합원은 남편이나 시부모를 압박했고, 남성 조합원은 부인을 회유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 조합원은 마치 학생들 학부모 소환하듯 부모님을 학교로 불러 ‘딸을 탈퇴시키라’고 종용했다. 소신이 분명했던 한 여성 조합원은 장학사가 남편의 직장으로 전화해 “부인이 탈퇴서를 안 내면 당신 직장도 위태로울 것”이라고 협박하는 바람에 날마다 부부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선배로서 그에게 ‘탈퇴하라’고 권했다. “남편과 매일 싸우면 가정이 어떻게 되겠어요.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고, 탈퇴서 쓴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일단 마음 편한 쪽으로 하세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또는 장인이나 부인이 탈퇴서를 쓰면서 우리 학교는 나를 포함해 셋만 조합원으로 남았다. 날마다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다.
부산에서는 한 조합원이 전교조 가입을 빌미로 교장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뺨을 맞는 등 폭행을 당한 뒤 오히려 좌경 혐의로 직위해제 당하자 격분한 이 교사의 아버지가 자살하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강원도와 광주에서는 전교조 교사 부모와 부인들의 자살·유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횡성에서 이런 방법으로 한 교사를 탈퇴시키는 데 성공하자 이를 ‘우수 탄압 사례’로 본받았다고 한다. 반인륜적 탄압은 상상을 초월했다.
징계위가 열릴 즈음까지 우리 학교 세명이 끝까지 탈퇴서를 쓰지 않자 관할 교육청의 교육장까지 학교로 찾아왔다. 나는 평소 알고 지내던 교육장에게 강력하게 반박했다. “교사들이 뜻을 같이해서 결성을 하는 건데 단위학교까지 다니며 해라 마라 간섭을 합니까? 책임자로서 정부 방침에 따라 어쩔 수 없으리라 이해는 하지만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교장실 앞 복도를 지나는데 교육청 직원이 들고 있는 서류가 이인숙 조합원한테 탈퇴서를 쓰라고 가져온 듯해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다. 그것도 일종의 공문서로 여차하면 제대로 걸릴 상황이었다. 그동안에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는데 그날은 나도 모르게 심하게 화를 냈다. 교장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고, 교육장은 언제 갔는지 모르게 가버렸다. 이후 그 일을 문제 삼지는 않았지만, 또 한명 남은 이현숙 조합원마저 본인도 모르게 시어머니가 와서 탈퇴서를 쓰는 바람에 결국 조합원은 나 혼자 남게 됐다. 마치 요동치는 배를 홀로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럴수록 전교조를 지키기 위한 투쟁은 계속됐다. 7월9일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전교조 탄압 저지 및 합법성 쟁취를 위한 제1차 범국민대회’를 열었고, 7월26일부터는 전국의 조합원 600여명이 명동성당에서 11일간의 단식농성을 벌였다. 또 7월부터 탈퇴서를 냈던 조합원들의 탈퇴 무효화 선언이 이어졌다.
“사랑하는 어머니,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당신의 간곡한 말림을 뿌리치고 직장을 관두던 그날이 생각납니다. ‘영희야, 대학 안 나온 사람은 사람이 아니냐. 우리 처지에 대학은 무슨 대학… 제발 직장을 포기하지 마라’ 하며 눈물로 호소하시던 어머니, 대학 4년을 마치고 형님과 나란히 첫 출근을 하던 오누이의 등 뒤에서 당신은 또 한번 눈물을 찍어내셨지요… 날이면 날마다 이어지는 교장 선생님과 장학사들의 탈퇴 권유와 파면 협박에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쓰러져 누운 당신의 모습을 보고 저는 탈퇴서를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탈퇴서를 쓴 이후 2주일 동안 저는 얼마나 부끄럽고 비굴했는지 모릅니다. 굴종의 패배감에 젖어 아이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주문처럼 이야기하던, 부끄럼 없이 살아가자던 말이 얼마나 거짓이었는지… 저는 징계를 눈앞에 두고 각서 무효화 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가슴에 또 한번 못을 박는 딸이 너무나 원망스러우셨지요? … ‘학교를 떠나면 교직원 노조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목이 메시는 당신 앞에 저는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누가 정직하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몸부림을 가로막는 걸까요?”
한 젊은 여교사가 전교조 탈퇴 무효화 선언을 앞두고 어머니에게 올린 글은 당시 양심을 지키기 위한 교사들의 고통을 절절하게 보여주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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