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거듭된 대화 제의와 국민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정권은 1989년 8월7일까지 노조 가입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강행해 무려 1500여명의 해직교사를 양산했다. 전교조는 8월12일 서울 명동성당 전교조 공대위와 함께 ‘전교조 대국민 선전의 날’을 선포하고 강제해직의 부당성을 홍보하기로 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56
1989년 7월19일, 광주시교육청에서 열린 징계위원회 회의실에서 끌려나오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나는 한동안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란 여직원들은 “선생님, 미안해요” 하면서 나를 붙들고 울기도 했고, “선생님, 눈 떠 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하며 당황해했다.
나는 머리가 아찔하고 눈도 도저히 뜰 수 없는 상태였지만 진정하려 애썼다. “응, 나 그대로 놔둬. 알았어. 그대로 놔둬. 여러분들 잘못은 아니야.” 경황이 없는 중에도 나는 ‘어디 방으로 데려가면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복도에 대기하고 있던 남자 직원 두 명이 쫓아와 일으켜서는 계단 밑으로 데리고 가더니 그대로 현관 밖 바닥에 던지듯 하고는 들어가버렸다.
나는 미처 정신을 가다듬지도 못한 채 교육청 입구에 앉아 있었다. 교사의 인권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다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표현력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다.
조금 있으니 1년 선배인 영어과 장학사가 나왔다. ‘일어나서 들어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한참 더 지나서 김원본 장학관이 의자를 들고 나와 ‘바닥에 앉지 말고 여기 앉으세요’라고 권했지만 역시 잠자코 있었다. 그다음엔 한 여성 장학사가 와서는 다친 부위에 약을 발라주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퇴근시간이 되어 직원들이 쳐다보며 지나갔다. 또 다른 장학사가 와서 안타까운 말투로 ‘일어나라’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아니요, 우리 선생님들 끝나고 나오면 그때 일어나서 같이 나갈 것입니다. 나를 여기다 이렇게 던져놨는데 내 발로 어떻게 다시 들어갑니까?” 다들 속수무책이었다.
인적이 뜸해질 때까지 기다린 나는 윤광장·김화진 선생님이 징계위를 끝내고 나오자 함께 움직였다. 밖에 기다리고 있던 전교조 광주지부 선생님들과 지부 사무실로 옮겨 징계위 상황을 보고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으라’는 선생님들의 권유를 뒤로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말이 아니었다. 고개를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물조차 마실 수가 없었다. 집 근처 상무지구에 있는 남광병원에서 엑스레이 등 검사를 받고 진단서를 보니 온몸이 멍투성이에 경추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꼬꾸라진 채 머리를 계단 모서리에 수없이 부딪히고, 막판에는 벽에 세게 부딪히고야 멈출 수 있었는데 머리는 다치지 않았다. 뇌진탕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전교조 광주지부는 교육감과 징계위원장을 비롯해 나를 강제로 끌어낸 직원들까지 ‘폭행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당시 분위기로 보아 우리 쪽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희박했지만 문제를 제기해 기록을 남겨놓기 위해서였다.
나는 광주 옥천여상에서 해직된 박상범 선생님과 함께 조사차 검찰에 출두했다. “교사들이 교육감을 고발해요?” 젊은 검사의 태도가 기세등등했다. “교육감이 교사들의 모가지를 잘라?” 나이 많은 내가 움츠러들지 않고 받아치자 검사가 주춤했다. 하지만 전교조 출범 초기 워낙 급박한 상황이었던 까닭에 우리는 개별 재판에 매달릴 여유가 없었고, 결국 ‘혐의 없음’으로 결론나고 말았다.
결국 그해 8월3일자로 나는 광주 효광여중에서 ‘해임’ 통보를 받았다. 5월28일 전교조 결성대회 직후 수배와 구속과 해직의 고행길로 접어든 윤영규 초대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 말고 일선 공립학교 교사로서 광주지역에서는 우리 3명이 첫 징계 사례였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착잡했다. 홀로 걷다가 서점에 들렀다. <선생님의 밥그릇!>, ‘밥통’을 뺏긴 처지여서였던지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작가는 평소 좋아하던 소설가 이청준이었다. 류시화 번역의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도 집어 들었다. 해직된 첫날 나는 책 두 권을 샀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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