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0월28일 오후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출발한 ‘참교육을 위한 국민걷기대회’ 행렬은 목적지인 남산 팔각정에 무사히 도착했다. 전교조 관련 최초의 합법 집회였던 걷기대회는 이틀에 걸쳐 전국 45개 지역에서 4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58
전교조 탄압 저지와 사수를 위한 한 축의 든든한 원군이 학생들이었다면 다른 한 축은 종교인·예술인·노동단체·시민사회단체·학부모·민주동문회 등을 망라한 우리 사회의 민주 양심세력이었다. 전교조 건설과 탄압 대응 투쟁은 그야말로 범국민적 운동이었다.
1989년 6월, 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계속되고 학부모를 동원한 학생 등교 방해 등 노조 반대 관제시위가 벌어지자 각계각층의 단체들은 전교조 탄압 저지와 참교육 실현을 위해 적극 힘을 모으기로 하고 전국 단위의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6월17일 민주학부모회 준비위, 여성단체연합,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등 학부모, 여성, 예술인, 노동, 종교 등 29개 단체 대표자들이 서울 프레스센터 언론노동조합연맹(현 언론노조) 사무실에 모여 ‘전교조 탄압 저지 및 참교육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약칭 전교조 공대위) 결성식을 열었다. 위원장에는 이우정 여성단체연합 의장이 선출되었고, 고문으로 4·19 교원노조의 계훈제·이목·강기철 선생, 이규환·이효재 이화여대 교수, 성내운 광주경상대학장, 이오덕 선생, 이소선 유가협 회장 등을 추대했다.
공대위는 발족문에서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의지를 이렇게 밝힌다. “말로만 민주화를 떠드는 현 정권은 학부모 관제시위, 여론조작, 엄청난 폭력을 동원한 합법적 집회 봉쇄 등 온갖 방법으로 전교조를 탄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탄압은 법을 마음대로 행사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독재권력이 교사들의 조직적 실천에 의해 국민 대중과 학생들의 각성이 이루어짐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이 조금이라도 손상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더욱 폭력적으로 나타납니다. … 민주화를 희구하는 모든 국민들이 힘을 모아 교직원노조를 지켜나가는 것은 우리 시대의 역사적 사명이자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필연적 요청이며 우리 모두의 진정한 권리행사라고 생각합니다.”
공대위의 결의는 전교조에 어떠한 탄압에도 물러섬 없는 투쟁 의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어 19일 기자회견에서 공대위는 “단순히 전교조를 지원·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산적한 한국 교육문제를 우리가 주체로 나서 해결하기 위해 공대위를 발족시켰다”고 밝혔다. 잇따라 60여개의 지역별 공대위도 구성해 강연회, 범국민 토론회, 1천만 서명운동, 모금운동, 두차례에 걸친 범국민대회, ‘참교육을 위한 국민걷기대회’ 등을 개최하며 전교조 지지 운동을 확산해 나갔다.
공대위는 7월29일 전교조 교사들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명동성당 성모동산에서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을 열고 공식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가수 정태춘은 이날 발대식에서 격려 공연으로 해직교사들에게는 깊은 연대감을, 공대위 단체들의 서명에는 큰 힘을 보탰다. 그는 이후 전국 대학 총학생회와 결합해 전국 16개 도시를 돌며 노래극 <송아지 송아지 누렁송아지>를 공연했다. “명동성당에서의 공연이 나에게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 그는 잊을 수 없는 전교조의 원군으로 남아 있다.
역시나 서명운동은 순탄치 않았다. 교사와 시민, 학생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백골단과 경찰 등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다. 당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지지는 전폭적이었다. 대량 징계 즉각 철회와 전교조 인정, 교육악법과 노동악법 즉각 개정, 교육세 및 교육예산 유용 관련 비리 공개 등을 요구한 서명에는 51만여명이 참여했고, 1990년 2월 제148회 임시국회에 교육관계법 개정 청원서와 함께 접수됐다.
9월24일 전교조·전교조공대위·참교육학부모회 공동주최의 ‘전교조 탄압 저지와 합법성 쟁취를 위한 제2차 범국민대회’에는 전국 21개 지역의 시민 4만여명이 참여해 우리 교육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표출했다.
10월28~29일 전국 45개 지역에서 진행된 ‘참교육을 위한 국민걷기대회’에는 교사·학생·시민 등 4만여명이 참가했다. 이전 집회와 달리 집회신고가 받아들여진 전교조 최초의 합법 집회로 평화민주당이 후원하고 참교육학부모회,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대학강사협의회(현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대학교직원노조협의회(현 대학노조), 연구전문기술노련, 언노련(현 언론노조), 사무금융노련(현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병원노련(현 보건의료노조), 전국사범대학연합, 전국교육대학대표자협의회 등 18개 단체로 구성된 ‘공동위원회’가 주최했다.
서울지역의 걷기대회는 장충단공원~남산 팔각정으로 이어졌는데 박영숙 당시 평민당 부총재와 김진균·오세철 교수 등 민교협 소속 교수, 계훈제·백기완 선생 등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한발 두발 참교육, 한발 두발 전교조로’ ‘교육 망치는 돈봉투, 참교육은 거부한다’ ‘국민 위한 참교육, 살려내자 전교조’ 등의 펼침막과 손팻말을 들고 평화적으로 행진했다. 중고생 1만여명도 ‘참교육을 받고 싶어요’가 적힌 펼침막과 풍선을 들고 대열에 함께했다. 합법 집회임에도 당국은 지역마다 경찰 병력을 배치해 검문검색을 하는 등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걷기대회는 참교육 열기를 국민 속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게 한 감동 깊은 행사였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10월28~29일 전국 45개 지역에서 진행된 ‘참교육을 위한 국민걷기대회’에는 교사·학생·시민 등 4만여명이 참가했다. 이전 집회와 달리 집회신고가 받아들여진 전교조 최초의 합법 집회로 평화민주당이 후원하고 참교육학부모회,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대학강사협의회(현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대학교직원노조협의회(현 대학노조), 연구전문기술노련, 언노련(현 언론노조), 사무금융노련(현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병원노련(현 보건의료노조), 전국사범대학연합, 전국교육대학대표자협의회 등 18개 단체로 구성된 ‘공동위원회’가 주최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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