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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광주지부장 당선되자마자 ‘해직교사돕기’ 전시회 / 정해숙

등록 2011-08-10 19:35수정 2011-08-11 11:50

1991년 12월10일 저녁 서울 구로구 갈릴리교회에서 전교조 3대 위원장 선거 서울남부지회 유세가 열려 참석 교사들이 한 후보의 열띤 지지 호소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당시 선거에서 필자는 광주지부장으로 선출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1년 12월10일 저녁 서울 구로구 갈릴리교회에서 전교조 3대 위원장 선거 서울남부지회 유세가 열려 참석 교사들이 한 후보의 열띤 지지 호소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당시 선거에서 필자는 광주지부장으로 선출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63
1990년 12월13~15일 전교조는 제3대 위원장 선거와 16개 지부장 선거를 치렀다. 윤영규·이영희 선생이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으로 당선되었다. 여성지부장으로는 나와 김남선 선생이 각각 광주와 서울에서 뽑혔다. 1년 임기의 시작은 91년 1월이었다.

전교조는 해직교사 1500여명의 생계비 지급과 지부·지회 운영 등으로 재정이 여전히 빠듯한 상태였다. 광주지부(지부장 오종렬)는 해직자가 서울과 전남 다음으로 많은 130명이었다. 교사 수 대비로는 가장 많은 인원이었다. 더구나 해직교사들의 연령이 높은 편이었고, 사립학교 해직교사가 119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광주는 지역경제도 그리 크지 않은데다 ‘5·18’로 인해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많았다. 그나마 월급생활자들이 십시일반 후원금을 내고 있어서 다른 지역에 비해 넉넉하지 못했다. 후원금이 제법 들어왔던 서울동북부지회(지회장 유승준)에서 광주지부의 사정을 듣고 250만원을 보내온 적도 있었다.

지부장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앞서 국공립지회 사무실에 집기를 기증해준 정진백 남풍출판사 사장이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해서 만났다. 정 사장은 덕망 있는 인사들의 글과 글씨, 그림을 새긴 도자기를 꽤 많이 수집해 놓았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 문익환 목사님과 백기완 선생의 글씨가 새겨진 도자기 등 다양했다. 김남주 시인의 옥중시집 <조국은 하나다> 등을 펴내 주목을 받은 남풍출판사는 안기부 소환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 사무실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는 도자기 150점을 내놓을 테니 광주지부 기금 마련 전시회를 열어 재정에 보태라고 제안했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었다.

지부 간부들과 의논하니 모두들 고맙게 받아들이며 전시회를 하기로 결정했다. 정 사장에게도 수익금의 일부를 나눠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곧바로 서울 인사동에 있는 그림마당 ‘민’과 계약을 하고 전시회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렇게 해서 지부장으로서 첫 사업인 ‘광주 해직교사 돕기 도자기 전시회’를 91년 1월16~25일 열흘 동안 열었다.

그런데 전시회 개막에 맞춰 전날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데 ‘이라크전쟁’ 뉴스가 터져나왔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미국이 바그다드를 공격하면서 발발한 1차 이라크전쟁이었다. 광주지부 선생님들은 전시회 준비를 위해 미리 가 있었고, 총책임을 맡기로 한 임추섭 선생님과 함께 가는 길이었다. 전쟁 자체도 마음이 무거웠지만, 뜻깊은 전시회를 하려는데 전쟁이 터져버리니 답답했고 걱정이 앞섰다. 평화로울 때라야 사람들 마음이 평화롭게 주고받아지는 것인데…. 임 선생님과 나는 뉴스를 듣는 순간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말을 잃었다.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전시장을 찾아주었다.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는 김태식·한광옥 전 의원을 통해 후원금을 전해주었다. 김태홍 전 <한겨레> 이사도 전시회 기간 동안 자주 찾아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전시회 열흘 동안 나는 서울에 머물며 이종진 수석부지부장과 수시로 연락을 하며 광주지부 상황을 확인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전시회에서 마련된 기금으로 우리는 89년 서울동북부지회에서 광주지부를 도와줬던 250만원을 우선 전달했다. 당시 수석부위원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이효영 참교육사업단 단장(광주지부 소속)과 함께 동북부지회를 찾았다. 유기창 지회장은 웃으며 “이렇게 빨리…, 되받을 생각은 안 했는데요”라며 반겼다. 독지가 덕분에 기금을 마련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되돌아올 때 기분이 무척 좋았다. 너나없이 힘든 상황에서 서로를 위해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는 해직동지들의 따뜻한 마음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순간이었다.

그 뒤 4월에는 광주 현산미술관에서 ‘광주 해직교사 돕기 도서화(陶書畵) 전시회’를 했다. 조방원·문장호·박행보·강연균·박광식·최연섭·김대성·조광섭·윤의중·김광현·조진호·김상일·김승평 작가들께서 출품해주셨다. 서울 전시회 때 남은 도자기도 함께 전시해 판매했다.


두 차례의 전시회 성공은 기꺼이 작품을 기증해준 분부터 값을 따지지 않고 사준 분과 음으로 양으로 협조해준 분 등 너무나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특히 정 사장은 이후로도 계속 전교조의 소중한 후원자로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 ‘삶이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로구나’ 깊이 느끼며 지부장 일을 시작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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