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가는 영화 장면 많아 ‘엄마’를 다시 생각하게 돼
10대 때 가장 후회됐던 일 “내 꿈을 쉽게 포기한 것”
10대 때 가장 후회됐던 일 “내 꿈을 쉽게 포기한 것”
엄마와 함께 영화 <써니>를 보다
“주인공 ‘나미’가 고등학교 친구들이 녹화된 비디오를 보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난 유명한 화가가 돼 있을 거야’ 하면서 각자의 꿈을 말하는 친구들을 보며 주인공이 눈물을 흘리죠. 그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엄마도 꿈 많은 10대의 학창시절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누군가의 엄마와 아내로 살아가고 있잖아요. ‘엄마’라는 이유로 포기하고 희생해야 될 게 많았을 것 같아요. 투정만 부리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요. 앞으로는 엄마한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이예은(17·고양외고)양은 영화 <써니>를 보고 조금은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 매번 같은 문제로 엄마와 갈등을 빚었던 이양은 “엄마니까 당연히 나를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다툼이 싫어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지낸 적도 있다. 하지만 ‘엄마’도 나름의 고민이 있고 힘든 삶을 살아왔다는 걸 잊고 있었다. 아마 남편과 자식을 위해 포기해야 할 일도 많았을 것이다. 어색하긴 하지만 이제는 먼저 엄마한테 손을 내밀려고 한다.
영화 <써니>는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상반기 최고의 흥행작이 됐다. 40대 여성들의 학창시절 향수를 자극하며 복고 열풍도 불고 있다. 이들의 자녀인 10대들도 영화를 보며 새로운 재미를 느끼고 있다. 영화 속 1980년대 고교생들의 모습은 지금과 비교해도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보다 매점을 더 좋아한다거나 똑같은 브랜드의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는 건 지금의 10대도 마찬가지다. 친구와의 관계가 늘 고민인 것도 비슷하다. 10대들의 ‘엄마’인 40대들도 우리와 똑같은 청소년 시기를 보냈던 것이다. <아하! 한겨레> 학생수습기자들(김승민·윤이경)도 엄마와 함께 영화 <써니>를 봤다.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승민 학생기자의 엄마인 김병숙(42·서울 하계동)씨는 영화를 보고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그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영화를 통해 재연됐기 때문이다. “1984년에 고등학교 1학년이었어. 여고를 다녔었지. 학교 규칙이 엄한 시절이라 감히 선생님한테 반항을 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어.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던 것 같아. 그 시절에 엄마도 4~5명의 친구들과 몰려다니곤 했어. 수학여행 장기자랑 연습도 하고 디스코도 추고 그랬지. 근데 진짜 영화처럼 한 친구도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어. 연락이 끊긴 친구들도 있고, 그중 한명은 지금도 만나고 있는데 제일 친한 친구지.”
기자가 가장 공감이 갔던 장면은 밤에 귀를 쫑긋 세우고 라디오를 듣는 모습이었다. 디제이가 사연을 읽어가며 음악을 틀어줄 때 숨죽이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심야 라디오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편이라 꽤 공감이 갔어요. 사연을 보내보진 않았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감동을 받기도 하죠.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라디오는 곧 없어질 거라는 얘기도 있었다는데, 라디오가 주는 매력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아요. 10대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노래들이 많이 나오니까요.”
<써니>의 주인공 ‘나미’가 고등학교 친구들을 하나씩 찾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와 누군가의 아내로 충실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런 ‘나미’도 친구 문제로 고민하고 누군가를 짝사랑하던 학창시절이 있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 친구들과의 우정 등은 그때도 마찬가지였지. 친구와 싸웠다가 다시 화해도 하고 비슷한 것 같아. 영화처럼 그렇게 폭력적인 친구는 없었지만 그런 것도 한 시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고등학교 동창 가운데 소식이 끊긴 ‘경희’라는 친구를 만나보고 싶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
당시 엄마도 ‘엄마(외할머니)’와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유독 자신에게만 엄했던 엄마를 떠올렸다. “난 사춘기가 좀 늦게 온 것 같아. 대학 진학을 두고 고등학교 때 좀 갈등이 있었지. 내 꿈은 건축학을 공부해서 멋있는 집을 짓는 건축가가 되는 거였어. 근데 엄마가 심하게 반대를 했어. 여자가 대학에 가는 게 드문 시절인데다 ‘건축’은 남자가 하는 일이라고 안 된다고 했지.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던 같아. 결국 적성에도 맞지 않은 과에 진학했는데, 지금도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이야.”
엄마는 다시 10대로 돌아간다면 다시 건축학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한번 부딪쳐 봤어야 하는데 엄마 말씀에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던 것 같아. 그때는 직업에 대한 정보나 기회가 많이 부족했거든. 여성이 건축 관련 일을 한다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거지. 지금 10대들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 윤이경 학생기자의 엄마인 김소연(45·경기도 용인시)씨는 1982년에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뒤라 사회·정치적 분위기가 엄혹했던 시절이었다. “군사정권 시절이었지만 어릴 때라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던 것 같아.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스포츠에 관심이 생겼고 영국의 퀸이나 스웨덴의 아바 같은 팝 음악을 즐겨들었지. 텔레비전보단 공연이나 영화를 보는 걸 더 좋아했어. 초중고 모두 남녀공학을 다녀서 그런지 영화 속 모습에 공감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우리 때도 다들 비슷했던 것 같아.” 엄마는 친구들과 주로 집에서 모여 놀던 기억이 되살아났다고 했다. 조용한 성격 때문에 음악다방이나 고고장은 대학에 진학한 뒤에 처음 가보았다. “당시에도 사교육 열풍이란 게 있어서 이걸 막으려고 1980년에 과외교습 금지 조처가 내려졌어. 학교 끝나면 특별히 할 게 없으니 친구들과 집으로 몰려가서 놀고 그랬지. 주로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었던 것 같아. 학교에 매점이 없어서 ‘매점’에 대한 추억은 없고 라디오 진행자인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 가 최고로 인기가 좋았어. 영화를 보면 이종환씨가 여고생 7명의 ‘서클’ 이름을 그룹 보니 엠의 댄스곡인 ‘써니’(Sunny)라고 붙여주면서 노래를 틀어주지.” 기자도 영화를 보면서 <써니>의 주인공 같은 친구들을 사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7명씩 몰려다니며 노는 그들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다 함께 어울리는 것도 보기 힘든 모습이다. “요즘은 학교에서 6~7명씩 몰려다니는 건 보기가 힘들죠. 1~2명 정도 정말 친한 친구들하고만 다니거든요. 학교 끝나면 다들 학원 가기에 바쁜 게 현실이고요. 친구네 집에 놀러 간다거나 집에 초대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죠. 영화를 보면서 여러 명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친구네 집에 가서 놀고 잠도 자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기자는 엄마와 비교적 사이가 좋은 편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풀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10대 때 엄마(외할머니)와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엄마가 공부 잘하는 언니와 비교를 많이 해서 자신감이 부족했었어. 공부를 못하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엄마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었나봐. 어려서부터 언니보단 공부를 못한다는 낙인 때문에 힘들기도 했고 그래서 엄마한테 많이 대들기도 했지. 이런 영향 때문인지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거나 자식들 간 우열을 비교하는 말은 하지 않게 돼.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아’ 하면서 얘기를 꺼내는 정도지.” 엄마는 뚜렷한 목표 없이 10대를 보낸 게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내 꿈이 뭐였지?’라고 생각할 만큼 뚜렷한 목표가 없었던 것 같아. 막연히 기자가 되고 싶기도 했고 여행을 마음껏 가고 싶기도 했지. ‘목표’가 있었다면 치열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랬을 텐데, 공부도 노는 것도 그냥 그랬던 거지. 대학도 아는 언니가 취직이 잘되는 과를 추천해줘서 지원했거든. 적극적으로 못했던 게 많이 후회가 돼. 너희들은 무조건 공부만 하기보단 책도 많이 보면서 꿈을 키워갔으면 해.” 김승민(하계중 3학년), 윤이경(용인외고 2학년) 이종은(고양외고 2학년) 학생수습기자
학생수습기자 김승민군과 어머니 김병숙씨의 모습.
엄마는 다시 10대로 돌아간다면 다시 건축학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한번 부딪쳐 봤어야 하는데 엄마 말씀에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던 것 같아. 그때는 직업에 대한 정보나 기회가 많이 부족했거든. 여성이 건축 관련 일을 한다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거지. 지금 10대들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 윤이경 학생기자의 엄마인 김소연(45·경기도 용인시)씨는 1982년에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뒤라 사회·정치적 분위기가 엄혹했던 시절이었다. “군사정권 시절이었지만 어릴 때라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던 것 같아.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스포츠에 관심이 생겼고 영국의 퀸이나 스웨덴의 아바 같은 팝 음악을 즐겨들었지. 텔레비전보단 공연이나 영화를 보는 걸 더 좋아했어. 초중고 모두 남녀공학을 다녀서 그런지 영화 속 모습에 공감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우리 때도 다들 비슷했던 것 같아.” 엄마는 친구들과 주로 집에서 모여 놀던 기억이 되살아났다고 했다. 조용한 성격 때문에 음악다방이나 고고장은 대학에 진학한 뒤에 처음 가보았다. “당시에도 사교육 열풍이란 게 있어서 이걸 막으려고 1980년에 과외교습 금지 조처가 내려졌어. 학교 끝나면 특별히 할 게 없으니 친구들과 집으로 몰려가서 놀고 그랬지. 주로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었던 것 같아. 학교에 매점이 없어서 ‘매점’에 대한 추억은 없고 라디오 진행자인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 가 최고로 인기가 좋았어. 영화를 보면 이종환씨가 여고생 7명의 ‘서클’ 이름을 그룹 보니 엠의 댄스곡인 ‘써니’(Sunny)라고 붙여주면서 노래를 틀어주지.” 기자도 영화를 보면서 <써니>의 주인공 같은 친구들을 사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7명씩 몰려다니며 노는 그들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다 함께 어울리는 것도 보기 힘든 모습이다. “요즘은 학교에서 6~7명씩 몰려다니는 건 보기가 힘들죠. 1~2명 정도 정말 친한 친구들하고만 다니거든요. 학교 끝나면 다들 학원 가기에 바쁜 게 현실이고요. 친구네 집에 놀러 간다거나 집에 초대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죠. 영화를 보면서 여러 명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친구네 집에 가서 놀고 잠도 자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기자는 엄마와 비교적 사이가 좋은 편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풀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10대 때 엄마(외할머니)와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엄마가 공부 잘하는 언니와 비교를 많이 해서 자신감이 부족했었어. 공부를 못하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엄마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었나봐. 어려서부터 언니보단 공부를 못한다는 낙인 때문에 힘들기도 했고 그래서 엄마한테 많이 대들기도 했지. 이런 영향 때문인지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거나 자식들 간 우열을 비교하는 말은 하지 않게 돼.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아’ 하면서 얘기를 꺼내는 정도지.” 엄마는 뚜렷한 목표 없이 10대를 보낸 게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내 꿈이 뭐였지?’라고 생각할 만큼 뚜렷한 목표가 없었던 것 같아. 막연히 기자가 되고 싶기도 했고 여행을 마음껏 가고 싶기도 했지. ‘목표’가 있었다면 치열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랬을 텐데, 공부도 노는 것도 그냥 그랬던 거지. 대학도 아는 언니가 취직이 잘되는 과를 추천해줘서 지원했거든. 적극적으로 못했던 게 많이 후회가 돼. 너희들은 무조건 공부만 하기보단 책도 많이 보면서 꿈을 키워갔으면 해.” 김승민(하계중 3학년), 윤이경(용인외고 2학년) 이종은(고양외고 2학년) 학생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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