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8월19일 전주 전북대에서 열린 전교조 제5차 대의원대회에서 국제자유교원노조연맹 가입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 자리에는 프레트 판레이우언 국제연맹 사무총장도 참석해 전교조 지지를 위한 국제연대를 다짐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67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1989년 5월 결성 이후 국제연대활동을 활발하게 벌였다. 독일·미국·일본 등 세계 여러나라 교원노조 및 교원단체에 전교조 탄압 상황을 알리고 연대를 호소했다. 해외 교원단체 주관의 국제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하거나 각국 교원단체에 전교조 탄압에 대한 항의와 전교조 지지의 뜻을 한국 정부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제회의에 참석한 국제자유교원노조연맹(IFFTU)의 프레트 판 레이우언 사무총장을 면담하고 국제노동기구(ILO)의 전교조 지원과 전교조 대표단의 유럽지역 초청 등을 요청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수학교사 출신의 레이우언 사무총장은 90년 8월 한국 초청방문 때 전주 전북대에서 열린 전교조 5차 대의원대회에 참석해 해직교사 석방 및 복직, 전교조 합법화를 위한 적극적인 국제 연대와 지지를 표명했다. 이 대회에서 전교조는 국제연맹 가입을 만장일치로 결정하고, 11월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게 된다.
한국과 가까운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과도 교류를 개척해 나갔다. 92년 2월, 일교조는 3월4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도쿄 교육토론회(APEF)에 전교조 참석을 희망하는 초청장을 보내왔다. 당시 이영희 전교조 위원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서울 당산동 본부 사무실로 갔더니 “일교조 주최 교육토론회에 선생님을 대표로 추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그때 나는 91년 광주지부장 임기를 마친 뒤 본부 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있었으나 거절한 상태였다. 분신정국 속에서 수많은 장례식과 뒷수습 등으로 몹시 힘든 1년을 보낸 까닭에 쉬고 싶은 마음이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도쿄 교육토론회에 부위원장 자격으로 가도록 준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수락을 하고는 토론회 참가 준비를 했다. 토론회는 영어 또는 일어로 진행된다고 해서 부대변인인 김지예 선생이 대표단으로 함께 가기로 결정됐다.
토론회에는 아-태지역 25개 나라 30여개 단체가 참가하는데 한국교총과 북한 대표단도 포함돼 있었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남한과 북한의 교원단체가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였다. 따라서 전교조는 ‘북한주민접촉 신청서’를 통일원에 접수시켰으나 출국하기 전날 불허 통보를 받았다.
교육토론회는 ‘아동의 권리, 평화, 환경보호’를 주제로 각국에서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교사와 교원단체의 구실이 무엇인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흘간의 공식 일정 이후 18일까지는 일교조 산하 지역조합 순회강연과 재일동포 만남, 강연 등이 잡혀 있었다. 토론은 몇 개 분과로 나눠 진행하는데 참여할 분과를 미리 선정해 보고하도록 했다. 전교조는 ‘평화보호분과’를 택해 영문 보고서를 미리 보냈다.
공식 행사 전날 도착해 등록을 하는데 문득 ‘우리말로 보고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일교조 사무국장을 찾아갔다. “내일부터 진행하는 분과 토론회에서 한국말로 하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했더니 일교조 사무국장이 “조금 전에 북한 대표도 와서 똑같은 말을 하고 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공문도 띄웠고 약속이 돼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행사장에서 일본 유학 중이었던 이효영 선생님(전 수석부위원장 직무대행)의 아들을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그 아들이 호텔 로비로 전화를 했더니 우리 방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연결이 되었다고 했다. “한국 전교조에서 오신 선생님들 방이 몇 호실이죠?” 했더니 전화를 받은 남자가 “전교조가 지금도 살아 있어?” 하면서 다짜고짜 끊어버려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알아봤더니 한국에서 나온 안기부 직원이 그 호텔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밖에도 이상스런 일이 많았다. 아-태 지역 교원단체 대표들이 모인 토론회이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는 많은 기자들이 취재를 했다. 그런데 남한 기자는 단 한 명도 볼 수가 없었다. 토론회 개막식 때 북한 대표와 총련계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는데 남한 기자를 만난 기억은 없었다. 전해 들은 얘기인즉, 우리 기자들은 아침 취재활동 시작 전 반드시 한국대사관에 들러 지시를 받고 나온다고 했다. <한겨레> 기자마저 눈에 띄지 않기에 재차 물었더니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해외지국 허가를 취소해 버리기 때문에 자유로운 취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전교조와 북한 대표가 참여하다 보니 대사관에서 취재 통제를 했던 것이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언론통제 상황을 해외에서까지 다시 확인하게 되니 정부의 통제에 의해 우리 국민들의 알 권리가 얼마나 박탈당하고 있는지를 새삼 실감한 현장이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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