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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전교조에 대한 재외동포 기대 확인한 일본 방문 / 정해숙

등록 2011-08-21 20:17

1992년 3월 일교조 주최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 교육포럼’에 전교조 대표로 참가한 필자(맨 왼쪽)는 도쿄 일정을 마친 뒤 재일동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오사카를 방문해 동포 청년들의 조국과 전교조를 향한 기대와 지지를 확인했다.
1992년 3월 일교조 주최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 교육포럼’에 전교조 대표로 참가한 필자(맨 왼쪽)는 도쿄 일정을 마친 뒤 재일동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오사카를 방문해 동포 청년들의 조국과 전교조를 향한 기대와 지지를 확인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70
1992년 3월 아시아태평양지역 교육포럼과 지역교조 탐방 일정에 이어 도쿄의 일교조 본부 사무실을 방문했다. 일교조 위원장 면담은 계획된 일정이었다. 그런데 일교조 사무실은 초인종을 누르면 예약 여부나 방문자의 목적과 신원을 확인한 뒤에야 문을 열어 줬다. 우익단체들이 갑작스레 사무실을 습격하는 사례가 종종 있어서 사고 예방과 보안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일본 사회의 보수화 경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는 단적인 장면이었다.

일교조 위원장은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꺼냈다. 아이치현 교조를 탐방하도록 배정된 한국교총 대표단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오지 않아 그쪽 대의원들로부터 전화가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환영 펼침막까지 준비해놓고 기다렸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너무 창피했지만 애써 표정을 가다듬고 대신 사과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국제 행사에서 큰 결례를 했습니다. 아이치현 지부장님께 전교조 대표인 제가 대신 사과한다고 꼭 전해 주십시오.”

우리가 도쿄 포럼 일정을 무사히 마무리하기까지 통역부터 안내까지 도맡아 해준 재일동포 김광남씨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89년 해직 초기 김남선·김현준 선생님이 전교조 대표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부터 일본과의 교류 행사 때마다 기꺼이 도움을 주었다. 민족에 대한 애정이 컸던 그는 전교조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우리는 도쿄의 재일동포 2·3세들과 몇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 대학에 다니는 동포 학생 16명과 만났는데 거의 대부분이 우리말을 못했다. 그중 우리말을 잘하는 여학생이 있어 통역을 해주었다. “저 여학생은 어떻게 우리말을 잘합니까?” “원래 조총련계 학교를 다녔는데 졸업 뒤 민단 소속 대학원으로 진학을 했습니다. 민단계 학교와 달리 조총련계에서는 우리말을 가르치거든요.” 한국말을 쓰면 일본 사회에서 ‘조센진’이라 따돌림을 당해 살기가 어려우니까 2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지 못한 동포들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확인한 자리였다. 우리 정부가 재외동포 2·3세들에 대한 교육을 얼마나 등한시하고 있는지도 여실하게 느낀 만남이었다.

오사카에서는 동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큰 시장을 구경한 뒤 근로청년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한 청년이 전교조에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우리가 비록 일본에 살아도 우리의 조국은 한국입니다. 우리 조국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고 한국 상황을 알고 싶어 뉴스를 주의깊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 조국의 노동자들이 일하다 병에 걸려도, 손가락이나 팔이 잘려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탄압받고 있는 현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교조 선생님들이 ‘우리는 노동자’라며 노동조합 깃발을 올린 뉴스를 보고 얼마나 고맙고 든든하게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동과 동시에 가슴 저린 이야기였다. 동행한 김지예 선생과 둘이서만 듣기에는 너무 아쉬운 대화였다.

또 어떤 젊은이는 “한국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없애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전교조 선생님들이 적극 나서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국가보안법을 없애야겠지요. 직간접으로 들어서 아시겠지만 한국에서는 통일이나 노동 이야기만 하면 빨갱이, 좌경 용공으로 몰아갑니다. 교육이 잘못되면 미래의 우리 주인공들이 잘못되고, 미래의 주인공이 잘못되면 우리 조국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노동과 통일을 불온시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깨뜨리고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노조 깃발을 올렸습니다. 남북 분단 극복을 위해 통일교육을, 그리고 국방비를 절감하고 교육의 질 향상에 투자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며 노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상황은 국가보안법을 거론하기에 아직도 참 엄혹한 현실입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마침 유학중이던 강문규 목사님의 딸이 통역을 맡아 계속 수고해 주었다.

민단 소속 학부모회에서도 몇 분이 참석했는데 한 젊은 엄마가 전교조에 꼭 건의하고 싶다며 손을 들었다. “저희 아들이 민단 학교에 다니는데 공부보다는 한국 정부 선전에 몰두해서 학부모들이 할 수 없이 힘을 모아 교장을 쫓아냈는데 앞으로 어떤 보복이 돌아올까 걱정하고 있다”는 그는 “전교조 선생님들께서 국외동포들 특히 일본 동포들의 자녀교육에 적극 관심을 갖고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 주시고 도와주시기 바란다”고 간절히 호소했다. 허심탄회한 대화 속에서 전교조에 요구되는 엄청난 과제를 다시 확인한 뜻깊은 여정이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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