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한 만찬> 피에르 베일 지음. 양영란 옮김/궁리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43. 빈곤한 만찬 - 가격 뒤에 감추어진 음식의 진실
43. 빈곤한 만찬 - 가격 뒤에 감추어진 음식의 진실
세종대왕은 비만이었다. 정조도 날씬 체질은 아니었던 듯싶다. 그렇다 해도 위대한 이 두 임금이 ‘비호감’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인격 훌륭한 사람들은 몸이 넉넉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사장님 배’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살집 좋은 몸은 원만한 성격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청소년들은 어떨까? 비만은 심각한 ‘유행병’이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뚱뚱한 아이들의 성격이 꼭 후덕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몸이 비대할수록 성격이 난폭하고 집중력도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만은 이제 건강을 넘어 인격과 학업 성취도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비만은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허리둘레와 소득수준은 반비례 관계다. 부유할수록 날씬하고, 가난할수록 한 체격 할 가능성이 높다. 체중관리는 인성과 학업, 나아가 계층 갈등에까지 뿌리가 뻗어 있다.
그렇다면 비만을 좀 더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농업연구가 피에르 베일은 로열젤리 이야기부터 꺼내든다. 벌들은 태어나서 8일 동안만 로열젤리를 먹는다. 그러나 여왕벌은 죽을 때까지 이것만 먹는다. 벌들 세계에서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다. 일벌도 로열젤리만 계속 먹으면 여왕벌로 바뀐다. 먹는 음식에 따라 신분이 바뀌는 셈이다.
사람도 별다르지 않다. 먹는 음식은 우리 몸속의 유전자를 건드린다. 마치 로열젤리가 여왕벌이 되는 유전자를 일깨우듯이 말이다. 아메리카 피마족이 대표적인 예다. 원래 피마족은 날렵하고 용맹한 인디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종족의 75%가 비만인 세계 최고의 ‘고혈압 부족’이 되어버렸다. 먹는 음식이 ‘미국식’으로 바뀌자, 이들 몸속에 비만 유전자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좋은 먹거리는 부실한 몸도 튼튼하게 한다는 뜻도 되겠다. 건강을 지키는 유전인자를 깨울 음식은 무엇일까? ‘지중해식 식사’는 가장 좋은 식단으로 알려져 있다. 엄청난 양의 과일과 채소, 흰 살코기, 많은 곡물 등등.
그러나 베일은 음식 자체만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식탁은 지중해식과 비슷하다. 유대교는 한 끼 식사에서 유제품과 고기를 같이 먹지 못하게 한다. 때문에 이들은 버터 대신 식물성 마가린을 먹는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인들은 채소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먹는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인들 가운데는 당뇨, 심장병, 비만 환자가 매우 많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빈곤한 만찬>의 결론은 간단하다. 채소가 다 똑같은 채소가 아니며, 소고기가 다 똑같은 소고기가 아니라는 것.
예를 들어보자. 풀을 먹고 자란 소와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란 소의 고기가 똑같을까? 채소도 마찬가지다. 들판에서 햇볕을 담뿍 받고 자란 채소와 비닐하우스에서 인공비료로 키운 채소의 성분이 똑같을까? 똑같은 생선을 먹더라도, 우리가 먹는 물고기의 성분은 과거와 다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전의 채소와 동식물에는 ‘오메가 3’ 지방산이 많았다. 이는 지방 세포가 자라지 못하도록 막는 물질이다. 반면, 지금의 먹거리에는 ‘오메가 6’ 지방산이 훨씬 많다. 이는 지방 세포를 만들고 키운다. 예전에는 소는 꼴을, 돼지는 음식물 찌꺼기를, 닭은 마당에서 벌레를 잡아먹었다. 지금은 소, 돼지, 닭, 사람이 모두 같은 음식을 먹는다. 콩과 옥수수 등, ‘오메가 6’가 주가 된 사료와 음식을 먹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비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누이트(에스키모)는 붉은 살코기만 먹었음에도 멀쩡했다. 먹거리들에 자연 상태 그대로의 영양이 담겨 있다면, 굳이 음식을 가려 먹지 않아도 건강은 유지된다는 의미다. 반면, 음식 원재료에서부터 균형이 깨져 있다면, 무엇을 먹어도 몸이 망가진다. 베일의 결론은 분명하다. “돼지나 소의 섭생방식을 바꾸는 것이 그 돼지나 소로부터 먹거리를 얻는 환자들의 섭생방식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쉽다.” 채소나 가축이 건강해야 인간의 식사도 행복해진다는 논리다. 농산물을 자연에 가깝게 기르는 데 들어가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먹거리 가격의 대부분은 운송비가 차지한다. 자연대로 기르는 농산물의 수요가 늘어난다면, 좋은 식품의 가격은 자연히 떨어질 테다. 그렇게 된다면 “생태계를 보호하며, 식품의 향취와 맛, 먹는 즐거움은 물론 영양까지도 생각하고,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값을 고려한 (농산물) 생산방식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처럼 <빈곤한 만찬>은 가격이 아니라 생태계의 건강부터 먼저 챙기는 음식 문화를 주장한다. 생각이 바뀌면 생활도 바뀐다. 식품을 고를 때는 가격보다 성분분석표를 꼼꼼하게 살펴보라. 그리고 음식이 된 가축과 채소가 어떻게 자랐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우윳값 인상을 놓고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 우유는 이제 ‘생활필수품’에 가깝다. 학교 급식에도 우유가 나올뿐더러, 치즈·빵 등 우유가 재료로 쓰이는 음식도 꽤 많다. 당연히 우유 가격에 사람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격이 오르면서, 체세포수 1등급과 2등급 원유 사이의 가격 차이가 많이 줄어들었나 보다. 체세포는 젖소의 유방에서 떨어져 나온 늙고 죽은 세포를 말한다. 많을수록 우유의 질은 떨어진다. 2등급 원유는 늙은 소에서 주로 나온단다. 농가에서는 나이든 젖소를 도태시키지 않고 늦게까지 우유를 받아낼 가능성이 커졌다. 싼 음식 가격은 꼭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지구를 살리고 건강도 지키려면, 가격 뒤에 감추어진 위험들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 난이도 수준: 고2~고3
※필자 사정으로, 이번 원고는 다른 잡지에 게재했던 것을 필자 동의하에 다시 고쳐 실었습니다.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예를 들어보자. 풀을 먹고 자란 소와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란 소의 고기가 똑같을까? 채소도 마찬가지다. 들판에서 햇볕을 담뿍 받고 자란 채소와 비닐하우스에서 인공비료로 키운 채소의 성분이 똑같을까? 똑같은 생선을 먹더라도, 우리가 먹는 물고기의 성분은 과거와 다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전의 채소와 동식물에는 ‘오메가 3’ 지방산이 많았다. 이는 지방 세포가 자라지 못하도록 막는 물질이다. 반면, 지금의 먹거리에는 ‘오메가 6’ 지방산이 훨씬 많다. 이는 지방 세포를 만들고 키운다. 예전에는 소는 꼴을, 돼지는 음식물 찌꺼기를, 닭은 마당에서 벌레를 잡아먹었다. 지금은 소, 돼지, 닭, 사람이 모두 같은 음식을 먹는다. 콩과 옥수수 등, ‘오메가 6’가 주가 된 사료와 음식을 먹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비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누이트(에스키모)는 붉은 살코기만 먹었음에도 멀쩡했다. 먹거리들에 자연 상태 그대로의 영양이 담겨 있다면, 굳이 음식을 가려 먹지 않아도 건강은 유지된다는 의미다. 반면, 음식 원재료에서부터 균형이 깨져 있다면, 무엇을 먹어도 몸이 망가진다. 베일의 결론은 분명하다. “돼지나 소의 섭생방식을 바꾸는 것이 그 돼지나 소로부터 먹거리를 얻는 환자들의 섭생방식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쉽다.” 채소나 가축이 건강해야 인간의 식사도 행복해진다는 논리다. 농산물을 자연에 가깝게 기르는 데 들어가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먹거리 가격의 대부분은 운송비가 차지한다. 자연대로 기르는 농산물의 수요가 늘어난다면, 좋은 식품의 가격은 자연히 떨어질 테다. 그렇게 된다면 “생태계를 보호하며, 식품의 향취와 맛, 먹는 즐거움은 물론 영양까지도 생각하고,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값을 고려한 (농산물) 생산방식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처럼 <빈곤한 만찬>은 가격이 아니라 생태계의 건강부터 먼저 챙기는 음식 문화를 주장한다. 생각이 바뀌면 생활도 바뀐다. 식품을 고를 때는 가격보다 성분분석표를 꼼꼼하게 살펴보라. 그리고 음식이 된 가축과 채소가 어떻게 자랐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우윳값 인상을 놓고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 우유는 이제 ‘생활필수품’에 가깝다. 학교 급식에도 우유가 나올뿐더러, 치즈·빵 등 우유가 재료로 쓰이는 음식도 꽤 많다. 당연히 우유 가격에 사람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격이 오르면서, 체세포수 1등급과 2등급 원유 사이의 가격 차이가 많이 줄어들었나 보다. 체세포는 젖소의 유방에서 떨어져 나온 늙고 죽은 세포를 말한다. 많을수록 우유의 질은 떨어진다. 2등급 원유는 늙은 소에서 주로 나온단다. 농가에서는 나이든 젖소를 도태시키지 않고 늦게까지 우유를 받아낼 가능성이 커졌다. 싼 음식 가격은 꼭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지구를 살리고 건강도 지키려면, 가격 뒤에 감추어진 위험들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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