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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스위스서 만난 ‘전교조 열성팬’ 박경서 박사 / 정해숙

등록 2011-08-31 19:42

1993년 6월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비정부기구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전국노조대표자회의 공동대표단이 잠시 쉬는 시간에 모여 일정을 논의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권영길 언노련 위원장, 필자, 배석범 건설일용노협 위원장, 통역 유학생 이금윤씨.
1993년 6월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비정부기구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전국노조대표자회의 공동대표단이 잠시 쉬는 시간에 모여 일정을 논의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권영길 언노련 위원장, 필자, 배석범 건설일용노협 위원장, 통역 유학생 이금윤씨.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78
1993년 6월1일, 나는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참석을 위해 출국했다. 권영길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 배석범 전국건설일용노동조합협의회(현 건설노조) 위원장, 최재호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위원장 등과 함께 전국노조대표자회의 공동대표단 자격으로 참가했다. 우리는 국제노동기구의 비정부간 기구 대표 자격으로 참관했다. 전교조 조경오 국제국장도 같이 갔다.

우리 대표단은 국제노동기구 본부 관계자와 국제노동단체 대표들을 두루 만났다. 국제노동기구 노동국장과의 면담에서는 한국의 노동법 개정에 대한 관심을 주문하자 긍정적인 답변과 함께 한국 민주노조들의 충실한 보고와 적극적인 활동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나는 국제교원단체총연맹(EI) 집행위원 로버트 해리스를 만나 전교조의 활동 계획과 한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 설명했다. 해리스는 ‘전교조가 한국 사회의 교육개혁을 위해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 만큼, 총연맹에서 전교조 합법화와 해직교사 복직을 위해 한국 대통령과 관계기관에 공문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총회에 한국 정부 대표의 한사람으로 참석한 이인제 노동부 장관과도 비공식으로 만났다. ‘전교조 문제는 노동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우리의 지적에 대해 이 장관은 인정하면서 ‘나름의 판단을 갖고 김영삼 대통령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5박6일간의 우리의 공식, 비공식 일정은 매우 바빴다.

총회 첫날 대표단은 우리의 안내를 맡은 유학생 부부와 차를 한잔 마셨다. 그 부부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박경서 박사께서 ‘전교조 위원장이 제네바에 오셨는데 당신을 안 만나고 돌아가면 이제 전교조하고 굿바이’라고 하셨어요”라고 전하며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 박경서 박사를 몰랐지만 “그래요? 누군데 그렇게…, 그럼 가야 되겠네요. 굿바이하면 안 되지요”하며 약속을 했다. 권영길·배석범·최재호 위원장, 조경오 국장과 함께 총회 일정이 끝난 뒤 세계교회협의회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런데 박경서 박사의 사무실에 들어서니 한쪽 벽에 낯익은 사진 액자가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바로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렸던 전교조 창립 2돌 대회 행사 장면이었다. ‘어? 저 사진이 여기에 있네?’ 그 먼 땅에서 우리 행사 사진을 보니 매우 놀라우면서도 기쁜 마음 한량없었다. 또 책상의 유리판 밑에는 <전교조 신문>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어마, 우리 신문도 있네?” 순간 말이 튀어나왔다. “박 박사님이 전교조 팬 아닙니까. 여기 유럽지역의 전교조 물품 판매원이에요.” 유학생 부부가 옆에서 일러줬다. ‘이렇게 먼 곳에서까지 전교조를 위해 힘을 보태주는 분이 계셨다니…, 아, 우리는 정말 너무너무 행복한 운동을 하고 있구나.’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굉장한 격려를 받은 기분이었다.

박경서 박사는 서울대에 재직하다 박정희 정권 때 해직된 분이다. 1982년부터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일을 맡아 18년간 제네바에서 생활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 귀국한 뒤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과 대한민국 인권대사로 활동했고, 지금은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계신다. 부인 오영옥님은 당시 제네바에서 <문화방송>(MBC) 객원기자로 활동했다.

박 박사는 저녁식사 준비를 해놨으니 같이 가자며 우리 일행을 자택으로 초대했다. 집에서 박 박사는 해직교사 복직과 전교조 합법화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털어놓았다. 앞서 봄에 한국을 방문해 한완상 통일원(현 통일부) 장관과 만나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박사는 그때 듣고 느꼈던 한국 정부의 분위기와 생각에 대해 나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4월에 갔을 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노동’ 자를 빼면 좋은 조건으로 복직도 되고 활동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국에도 ‘노동’ 자를 안 붙이면서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교원단체들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국회 상임위원장 조순형 의원한테도 했던 답을 다시 말씀드렸다. “(이러저런 이유로) ‘노동’은 뺄 수 없는데요?” “알았습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전교조의 이념인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에는 우리 민족의 숙원인 민족문제를 풀 통일교육이 중요하게 포함되어 있다는 말씀도 드렸다. 박 박사는 82년부터 세계교회협의회에 근무했는데 ‘아시아 지역 담당이기 때문에 86년부터 한국인으로서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들려줬다. 조국에 대한 애정이 깊고 멀리서나마 전교조와 함께해주었던, 너무나 고맙고 좋은 또 한 분을 멀리 이국에서 만나면서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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