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44. 인코그니토-“자율이 정답일까? 신경생리학에게 묻는다면”
<인코그니토>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김소희 옮김/샘앤파커스 전설적인 야구선수 놀런 라이언은 시속 164㎞로 공을 던졌다. 포수 글러브까지 0.4초밖에 걸리지 않는 속도다. 이 짧은 시간에 타자들은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를 가려낸다. 그러곤 방망이를 휘둘러 공을 맞힌다. 머리로 생각했다간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몸이 알아서 한다’는 말은 정답이다. 실제로,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은 생각이 많다. 몸에 익은 일에서는 생각이 되레 방해만 된다. 자전거를 몰 때, 걸음을 걸을 때, 우리는 팔다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따지지 않는다. 일단 ‘의식’하는 순간, 동작은 서걱거릴 테다. 신경생리학자들은 한발 더 나아간다. 그들은 인간은 정신보다 육체에 가깝다고 소리 높인다. 바람둥이의 바람기를 어떻게 잠재워야 할까? 만날 설득해봐야 별 소용 없을 테다. 그러나 ‘바소프레신’이라는 약물의 효과는 금방이다. 바소프레신은 배우자 한 명에게만 매달리게 하는 물질이란다. 동물들도 바소프레신을 맞으면 정해진 짝에게만 절절하게 매달린다. 두뇌가 망가지면 성격도 변한다. ‘전두측치매’에 걸린 사람은 함부로 행동한다. 신호가 아닌데도 길 건너는 정도는 예사다.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먹기도 하고, 입에 못 담을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이들을 나무라도 소용없다. 이들은 생각보다 두뇌가, 정신보다 ‘몸’이 아픈 탓이다. 신경생리학자들은 본능의 중요성도 놓치지 않는다. 젊은 여자는 왜 아름다울까? 인간 두뇌는 가임기(可姙期) 여인을 예쁘게 보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젊은데도 푸석한 피부와 파리한 얼굴색을 하고 있다면? 매력이 떨어진다. 뇌가 이를 ‘건강한 임신이 어려운 상태’를 나타내는 신호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본능 프로그램을 의지로 이겨내기는 정말 어렵다. 인간이 아닌 무엇을 ‘사랑’하기란 노력으로도 어렵다. 우리가 무슨 일을 좋아할지, 어떤 사람에게 끌릴지는 본능에 휘둘린다. 그뿐이다. 생각은 여러 화학물질에 따라서도 춤을 춘다. 알코올이나 약물에 내 판단과 결정이 얼마나 틀어지는지를 떠올려 보라. 그렇다면 ‘나’는 본능과 여러 화학물질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일까?
신경생리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동시에 머리를 흔들기도 한다. 육체가 곧 인간이다. 그러나 꼭 그것만은 아니다. 이글먼은 우리 두뇌를 ‘라이벌들을 모아놓은 팀’이라고 부른다. 맛있는 케이크가 눈앞에 있다 해보자. 우리 두뇌 안에는 여러 개의 ‘좀비 시스템’이 있다. 생각 없이도 익숙하게 움직이는 동작들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 눈은 본능적으로 케이크를 바라보며 손을 뻗을 테다. 반면, 다이어트에 익숙한 이들은 어떨까? 이들에게는 또 다른 좀비 시스템이 있다. 이들은 케이크로 뻗는 손을 멈추고 발길을 돌리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케이크를 볼 때마다, 두뇌 속에서는 두 개의 시스템은 늘 충돌한다. 뇌 안에서 라이벌 팀들이 부딪히는 셈이다. 그리고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는 ‘생각’에 따라 정해진다. 동물은 어떨까? 이글먼은 재갈매기를 예로 든다. 재갈매기 둥지에 붉은색 알을 놓았다. 붉은색은 ‘적’을, 알은 품고 싶은 욕망을 일깨운다. 두뇌 한쪽에서는 싸우라 하고, 다른 쪽은 알을 돌보라고 명령하는 꼴이다. 이럴 때 재갈매기는 어떻게 할까? 알을 품었다가 집어던졌다가 한단다. 충돌하는 ‘좀비 시스템’들을 조율할 능력이 없는 탓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생각을 통해 욕구를 다독여서 하나로 합쳐낼 줄 안다. ‘고민’은 인간의 뇌가 ‘민주적인 합의’로 굴러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생각은 새로운 좀비 시스템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하기도 하다. 야구 선수가 빠른 볼을 치기까지는 숱한 훈련을 해야 한다. 그 가운데에는 ‘생각’도 많아야 한다. “손목에 힘을 주자” “오른쪽 다리에 중심을 두어야 해” 등등으로 말이다. 생각을 통해 두뇌는 신경세포들을 새롭게 꾸린다. 공을 보면 반사적으로 방망이를 돌리는 좀비 시스템을 만드는 셈이다. 일단 동작이 몸에 배고 나면 두뇌는 다시 조용해진다. 이글먼은 우리의 정신을 바꾸고 싶다면 몸부터 바꾸라고 충고한다. 설득에 앞서 두뇌의 상태에 먼저 신경 쓰라는 말이다. 다리가 부러지면 뛰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두뇌가 탈난 상태에서는 제멋대로 불끈거리는 욕구를 어쩌지 못할 테다. 그다음은 ‘전전두엽 단련운동’을 해야 할 차례다. 전전두엽이란 이마 부근의 두뇌를 말한다. 충동을 다스리고 이성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부위다. 근육을 키우듯, 전전두엽의 힘이 세지도록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 이쯤 되면, 이글먼의 주장은 인격 수양(修養)을 강조하는 유교(儒敎)와 통하는 듯 들린다. 왜 그가 인간은 육체이지만 그 이상이라 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프로야구팀 에스케이(SK)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었단다. 그는 혹독한 훈련으로 이름 높은 감독이다. 한때 그의 야구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손가락질 받았다. 자유와 자율을 최고로 여기는 시대, 강제와 인내가 뭐란 말인가. 정작 그의 야구는 시대를 앞서갔다. 엄청난 훈련으로 몸에 익은 ‘실력’은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는다. 두뇌생리학의 최신 연구 결과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원고를 쓰는 이 순간까지 에스케이와이번스는 5연패를 당하고 있다. 인천의 야구 수준은 20여년 전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로 돌아간 듯싶다. 인간은 육체이지만 그 이상이기도 하다. 선수들 몸에 새겨진 실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을 리는 없다. 인간은 육체를 뛰어넘는 존재다. 김성근 감독이 손을 놓은 뒤, 그들에게는 무엇이 사라졌을까? 안광복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김소희 옮김/샘앤파커스 전설적인 야구선수 놀런 라이언은 시속 164㎞로 공을 던졌다. 포수 글러브까지 0.4초밖에 걸리지 않는 속도다. 이 짧은 시간에 타자들은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를 가려낸다. 그러곤 방망이를 휘둘러 공을 맞힌다. 머리로 생각했다간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몸이 알아서 한다’는 말은 정답이다. 실제로,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은 생각이 많다. 몸에 익은 일에서는 생각이 되레 방해만 된다. 자전거를 몰 때, 걸음을 걸을 때, 우리는 팔다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따지지 않는다. 일단 ‘의식’하는 순간, 동작은 서걱거릴 테다. 신경생리학자들은 한발 더 나아간다. 그들은 인간은 정신보다 육체에 가깝다고 소리 높인다. 바람둥이의 바람기를 어떻게 잠재워야 할까? 만날 설득해봐야 별 소용 없을 테다. 그러나 ‘바소프레신’이라는 약물의 효과는 금방이다. 바소프레신은 배우자 한 명에게만 매달리게 하는 물질이란다. 동물들도 바소프레신을 맞으면 정해진 짝에게만 절절하게 매달린다. 두뇌가 망가지면 성격도 변한다. ‘전두측치매’에 걸린 사람은 함부로 행동한다. 신호가 아닌데도 길 건너는 정도는 예사다.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먹기도 하고, 입에 못 담을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이들을 나무라도 소용없다. 이들은 생각보다 두뇌가, 정신보다 ‘몸’이 아픈 탓이다. 신경생리학자들은 본능의 중요성도 놓치지 않는다. 젊은 여자는 왜 아름다울까? 인간 두뇌는 가임기(可姙期) 여인을 예쁘게 보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젊은데도 푸석한 피부와 파리한 얼굴색을 하고 있다면? 매력이 떨어진다. 뇌가 이를 ‘건강한 임신이 어려운 상태’를 나타내는 신호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본능 프로그램을 의지로 이겨내기는 정말 어렵다. 인간이 아닌 무엇을 ‘사랑’하기란 노력으로도 어렵다. 우리가 무슨 일을 좋아할지, 어떤 사람에게 끌릴지는 본능에 휘둘린다. 그뿐이다. 생각은 여러 화학물질에 따라서도 춤을 춘다. 알코올이나 약물에 내 판단과 결정이 얼마나 틀어지는지를 떠올려 보라. 그렇다면 ‘나’는 본능과 여러 화학물질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일까?
신경생리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동시에 머리를 흔들기도 한다. 육체가 곧 인간이다. 그러나 꼭 그것만은 아니다. 이글먼은 우리 두뇌를 ‘라이벌들을 모아놓은 팀’이라고 부른다. 맛있는 케이크가 눈앞에 있다 해보자. 우리 두뇌 안에는 여러 개의 ‘좀비 시스템’이 있다. 생각 없이도 익숙하게 움직이는 동작들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 눈은 본능적으로 케이크를 바라보며 손을 뻗을 테다. 반면, 다이어트에 익숙한 이들은 어떨까? 이들에게는 또 다른 좀비 시스템이 있다. 이들은 케이크로 뻗는 손을 멈추고 발길을 돌리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케이크를 볼 때마다, 두뇌 속에서는 두 개의 시스템은 늘 충돌한다. 뇌 안에서 라이벌 팀들이 부딪히는 셈이다. 그리고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는 ‘생각’에 따라 정해진다. 동물은 어떨까? 이글먼은 재갈매기를 예로 든다. 재갈매기 둥지에 붉은색 알을 놓았다. 붉은색은 ‘적’을, 알은 품고 싶은 욕망을 일깨운다. 두뇌 한쪽에서는 싸우라 하고, 다른 쪽은 알을 돌보라고 명령하는 꼴이다. 이럴 때 재갈매기는 어떻게 할까? 알을 품었다가 집어던졌다가 한단다. 충돌하는 ‘좀비 시스템’들을 조율할 능력이 없는 탓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생각을 통해 욕구를 다독여서 하나로 합쳐낼 줄 안다. ‘고민’은 인간의 뇌가 ‘민주적인 합의’로 굴러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생각은 새로운 좀비 시스템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하기도 하다. 야구 선수가 빠른 볼을 치기까지는 숱한 훈련을 해야 한다. 그 가운데에는 ‘생각’도 많아야 한다. “손목에 힘을 주자” “오른쪽 다리에 중심을 두어야 해” 등등으로 말이다. 생각을 통해 두뇌는 신경세포들을 새롭게 꾸린다. 공을 보면 반사적으로 방망이를 돌리는 좀비 시스템을 만드는 셈이다. 일단 동작이 몸에 배고 나면 두뇌는 다시 조용해진다. 이글먼은 우리의 정신을 바꾸고 싶다면 몸부터 바꾸라고 충고한다. 설득에 앞서 두뇌의 상태에 먼저 신경 쓰라는 말이다. 다리가 부러지면 뛰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두뇌가 탈난 상태에서는 제멋대로 불끈거리는 욕구를 어쩌지 못할 테다. 그다음은 ‘전전두엽 단련운동’을 해야 할 차례다. 전전두엽이란 이마 부근의 두뇌를 말한다. 충동을 다스리고 이성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부위다. 근육을 키우듯, 전전두엽의 힘이 세지도록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 이쯤 되면, 이글먼의 주장은 인격 수양(修養)을 강조하는 유교(儒敎)와 통하는 듯 들린다. 왜 그가 인간은 육체이지만 그 이상이라 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프로야구팀 에스케이(SK)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었단다. 그는 혹독한 훈련으로 이름 높은 감독이다. 한때 그의 야구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손가락질 받았다. 자유와 자율을 최고로 여기는 시대, 강제와 인내가 뭐란 말인가. 정작 그의 야구는 시대를 앞서갔다. 엄청난 훈련으로 몸에 익은 ‘실력’은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는다. 두뇌생리학의 최신 연구 결과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원고를 쓰는 이 순간까지 에스케이와이번스는 5연패를 당하고 있다. 인천의 야구 수준은 20여년 전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로 돌아간 듯싶다. 인간은 육체이지만 그 이상이기도 하다. 선수들 몸에 새겨진 실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을 리는 없다. 인간은 육체를 뛰어넘는 존재다. 김성근 감독이 손을 놓은 뒤, 그들에게는 무엇이 사라졌을까? 안광복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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