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왼쪽 둘째)는 1994년 말 전교조 6대 위원장으로 재선출돼 미흡한 복직 조건 개선을 위해 매진했다. 96년 2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사무실에서 전교조 집행부와 함께 ‘해직·미복직 교사 원상회복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90
1994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6대 전교조 위원장과 7대 15개 지부장 선거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선거는 12월 중순께 치러지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한달 전에 선거 일정을 확정하고, 그 이전부터 후보를 찾기 시작한다.
주위에서 나를 추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나는 충북에서 열린 9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재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은 미흡한 복직 방침을 수락하기로 결정한 이후 대의원대회에서 사의 표명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었다. 다시 출마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던 일이었고, 차기 구상을 하고 있을 동지들에게 미리 내 생각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이제 차기 지도부에 대한 생각들을 하셔야지요.” 나는 웃음 섞인 어투로 가볍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구희현 경기지부장이 정색을 하고 말을 막았다. “안 됩니다. 다시 출마하셔야 합니다. 정해숙 위원장님은 국민들에게 전교조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이미지 메이커가 되셨습니다. 국민들은 ‘전교조가 우리가 생각하는 전교조가 아니네?’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더 하셔야 합니다.” 나로서는 힘들게 작정한 이야기를 다들 귀담아듣지 않는 듯했다.
깊어진 가을, 지선 스님의 전남 장성 백양사 주지 취임식에 참석했다. 지선 스님과 진관 스님은 함께 사회민주화운동에 앞장서온 불교계의 어른이었다. 91년 ‘강경대군’을 비롯한 분신정국 때도 사회현실에 무관심했던 불교계에서 두 분만은 전남대병원을 찾아 열사들의 영령을 위로해 주셨다. 그랬기에 취임식에 참석해 직접 축하를 해드리고 싶었다. 한편에서는 지선 스님이 하실 일이 많은데 주지 스님으로 내려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분들도 많아 취임식에는 전국에서 많은 스님들이 모였다.
혼자 차를 몰고 와 주차를 하고 대웅전 앞마당으로 올라가는데 전교조 선생님들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위원장 재출마 권유를 하러 온 것이었다. “중집위에서도 밝힌 것처럼 재출마하지 않을 것이니 차기 지도부 구성은 다른 분들로 논의했으면 좋겠다.” 여전한 내 대답에 선생님들은 절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논의를 더 하자고 했다. “물론 조직의 방침이었지만 미흡한 조건으로 복직을 시켜놓고 지금 그만두면 어떻게 하느냐. 위원장을 한번 더 맡아서 조직의 터를 잡고 물려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나는 뼈아픈 지적을 받으면서 결국 힘들게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백양사에 내려갔다가 ‘코가 꿰여’ 나온 셈이었다.
이부영 선생님이 나와 함께 수석부위원장 후보로 출마했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인간교육, 21세기 대비 창조적 교육, 통일시대를 여는 민족교육’을 목표로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 학교를 살리자’는 사업방향을 제시했다. 유세에서 나는 “저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자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이 자리에 와 있으며, 큰 책임감을 느낀다”는 소회를 밝혔다.
95년 초 6대 위원장 임기를 시작했다. ‘입시경쟁으로 황폐화되어 가는 교육을 바로잡는 것, 합법화를 이루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가는 것, 조합원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 아울러 노동조합으로서 교사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 등을 과제로 삼았다.
그 무렵 복직한 선생님들로부터 안부 편지를 받을 때마다 마음 한켠이 무거우면서도 참으로 든든했다. ‘복직할 때는 마음이 무거웠고, 주위에서도 미심쩍어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복직교사에 대한 평판이 좋다’는 분위기를 전해왔다. 옥천에서 복직한 한 선생님은 서울 당산동 본부 사무실로도 몇번 찾아와 복직 이후 학교생활을 전해주기도 했다. 어려운 결단을 하고 복직한 선생님들의 현장 적응 노력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해직 때와 달리 복직한 뒤에는 아픈 조합원이 더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도 다행스럽고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위원장 재선 뒤 대외활동에 나설 때면 다른 단체 대표들로부터 ‘원망 아닌 원망’을 듣곤 했다. “해직교사들을 모두 복직시키는 바람에 연대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왜 복직시켰습니까. 사람이 부족해 성명서 문건 하나 작성하기도 힘들고,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재정적으로나 인력으로나 열악한 단체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의 호소가 서운하다기보다 안타깝기만 했다. 그만큼 전교조의 존재 가치와 해야 할 책임에 대한 무게를 느끼곤 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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