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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도피중에도 전교조 알린 ‘5·18 최후수배자’ 윤한봉씨 / 정해숙

등록 2011-09-21 19:46수정 2011-09-22 15:23

1995년 11월11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민주노총 창립 대의원대회에서 필자는 전교조 위원장으로서 임시의장을 맡아 임원 선출 절차를 진행했다. 초대 위원장으로 수배중이던 권영길 준비위 공동대표가 뽑혔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5년 11월11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민주노총 창립 대의원대회에서 필자는 전교조 위원장으로서 임시의장을 맡아 임원 선출 절차를 진행했다. 초대 위원장으로 수배중이던 권영길 준비위 공동대표가 뽑혔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91
 1995년 4월23일 광주 염주종합체육관 앞마당 잔디에서 열린 윤한봉·신경희님 결혼식의 주례를 맡았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요청하는 주례는 어느새 여러 차례 했지만 외부 인사로는 거의 처음이었다. 고 윤한봉님은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관련 내란음모죄로 현상 수배돼 8개월 남짓 도피생활을 했다. 이듬해 4월 화물선 화장실에 숨어 35일을 연명한 끝에 미국으로 밀항했다. 그는 83년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민족학교를 세우고, 재미한국청년연합을 결성해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다. ‘5·18’ 마지막 수배자였던 그는 93년 문민정부 들어 수배가 해제되자 귀국했다.

 윤한봉님은 89년 결성 직후 어려움을 겪던 전교조를 미국으로 초청했다. 그는 전교조에서 대표로 파견한 김남선·김현준 두 선생님과 여러 도시를 돌면서 전교조를 알리는 일을 도왔다. 93년 일시 귀국했던 그는,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전교조 결성 4돌 전국교사대회에 초청 인사로 참석했다. 위원장으로서 첫해인 그때 나는 행사장 무대에 따로 내빈석을 설치하지 않도록 했다. 79년 덴마크 방문 때 여왕도 일반 객석에 같이 앉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도 실천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는 조합원들과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함께했고, 선생님들 역시 뜨거운 박수로 그를 환영했다.

 그는 귀국 이후 5·18기념재단 후원회 일은 물론 민족미래연구소장과 들불야학기념사업회장을 맡아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밀항 때부터 배 밑바닥에 숨어 고생한데다, 미국에서도 오랜 수배상태로 힘들게 생활했던 탓인지 안타깝게도 폐기종이 발병해 투병하다 2007년 환갑을 겨우 넘길 무렵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평생 반려자였던 신경희씨도 미국의 민족학교에서 같이 공부하고 활동하던 인재였다. 경상도가 고향인 그는 부모와 함께 일찍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결혼할 때 귀국한 뒤 지금껏 한국에 살고 있다. 대학에 진학해 복지학 공부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주고받는데 잘 적응하며 사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타깝다.

 95년 11월11일에는 연세대 대강당에서 민주노총 창립 대의원대회가 열렸다. 민주노조운동의 총결집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공식 출범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산업별 노동조합을 지향하며 87년 노동자 대투쟁, 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 93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협의회(전노대)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역량의 성과였다. 94년 ‘민주노총 준비위원회’(공동대표 권영길 권용목 양규헌)를 결성한 지 1년 만이었다. 다음날인 12일에는 여의도에서 대규모 전국노동자대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민주노총 출범을 앞두고 김영삼 정부는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민주노총의 법적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 정부는 또 이미 수배중인 준비위원회 공동대표 3명을 포함해 19명의 노조 간부에 대한 수배령을 내리고 전단 배포 등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더구나 권영길 공동대표는 94년의 철도노조 파업을 배후조종했다는 ‘제3자 개입 혐의’로 1년4개월째 수배상태였다.

 전교조는 민주노총 가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10월31일부터 11월2일 사이에 15개 지부별로 대의원대회를 치렀다. 이른바 분할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 가입이 결정됐고, 파견 중앙위원과 대의원 10명도 승인했다.

 최고의결기구인 창립 대의원대회에서는 선언서를 채택하고, 강령과 과제 및 규약안을 의결하며, 민주노총 초대 의장을 선출할 예정이었다. 초대 의장 선출에 앞서 누군가 회의를 진행할 임시의장을 맡아야 했다. 내가 연장자이다 보니 임시의장을 떠맡게 됐다. 권영길 초대 위원장, 양규헌 수석부위원장, 8명의 부위원장, 권용목 사무총장이 90%의 찬성으로 선출되었다. 위원장 선출 이후 의사진행은 권영길 위원장에게 넘겼다. 이날 대회에는 대의원을 비롯한 국제노동단체 축하사절단 50여명, 재야인사 및 학생 등 1000여명이 참가했다. 한국 민주노조운동 역사의 한 장이 쓰이는 순간이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그런데 그런 큰 창립대회 진행이 처음이다 보니 자잘한 실수도 있었다. “위원장님, 아까 안건 통과시킬 때 의사봉을 안 두드리셨어요.” “아, 그랬어요?” 석치순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의 지적을 받은 뒤부터 내가 안건 통과 때마다 “저 의사봉 두드립니다” 하고 말을 했더니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그 얼마 뒤 동국대에서 열린 토론회 자리에서 신인령 당시 이화여대 교수(전 이화여대 총장)를 만났더니 “민주노총 창립 대의원대회 참석했을 때 여성 의장이 회의를 진행하고 민주노총 위원장을 선출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노동법 전문가인 신 총장은 전교조와 민주노총에 애정을 갖고 여러모로 도움을 준 고마운 진보학자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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