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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전 조합원 슬픔 빠뜨린 경남지부 버스사고 / 정해숙

등록 2011-09-27 21:20수정 2011-10-04 10:35

1996년 11월10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전국교사결의대회와 전국노동자대회가 연이어 열려 ‘노동법 민주적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대회
를 마치고 귀가하던 서부 경남지부 교사들의 버스가 전복되는 참사를 당했으나 전교조는 강한 결속력으로 희생자를 위로했다.
1996년 11월10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전국교사결의대회와 전국노동자대회가 연이어 열려 ‘노동법 민주적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대회 를 마치고 귀가하던 서부 경남지부 교사들의 버스가 전복되는 참사를 당했으나 전교조는 강한 결속력으로 희생자를 위로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95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에서 교원의 노동기본권과 관련한 논의가 우리의 요구와 멀어지자 11월5일부터 나는 위원장으로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전 조합원 비상총회도 열었다. 11월10일에는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전국교사결의대회와 전국노동자대회가 연이어 열릴 예정이었다. 단식 닷새째인 교사대회 전날 나는 몸이 좋지 않아 링거를 맞아야 했다. 몸을 추스르고 대회에 나섰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대회사를 하는데 자꾸 마른기침이 나와 애를 먹었다. 대회가 끝난 뒤에야 도착한 이영주 경남지부장은 “교사대회 시간에 맞춰 참석하려 했는데 차가 막혔다”며 안타까워했다. 곧이어 열린 노동자대회는 노동법 개정을 결의하는 열기가 뜨거웠다.

나는 노동자대회가 끝나자마자 녹색병원(원장 김록호)에 입원했다. 단식 이후 회복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대회를 끝내고 돌아가던 경남지부 동지들이 탄 버스가 사고가 났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몰라 애를 태우고 있는데 한참 뒤 진주·함양·고성지역의 동지들을 태운 버스가 늦은 밤 전복돼 2명이 사망하고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다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운전기사가 졸다가 굽잇길을 발견하고 뒤늦게 핸들을 급히 돌리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곧바로 병실을 나와 진주로 내려갔다.

류경렬 조합원의 딸인 초등학교 5학년 류타원양과 박문곤 선생님(삼천포공고)이 사고 현장에서 숨졌고, 43명의 부상자 중 1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류경렬 선생님도 뇌를 다쳐 세 차례에 걸쳐 수술을 해야 할 정도였다. 부상당한 선생님들은 여러 병원에 나뉘어 입원해 있었다. 교사대회와 노동자대회에 최대한 참석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참여한 조합원들이 많았다. 어린 초등학생의 희생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왔다.

박문곤 선생님은 외아들이었다. 장례식장을 찾으니 어머님이 통곡을 하셨다. “내가 내 아들을 죽였어요. 아침에 일찍 출발한다고 시간에 맞춰 깨워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바로 안 일어나기에 다시 깨웠는데 그때 깨우지 말고 그대로 자게 놔두었으면 좋았을걸…내가 깨워서 갔다 오다가 그런 사고로 죽었어요. 내가 죽였어요.” 계속 통곡하시는 어머님께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전교조와 민주노총은 곧바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을 위원장으로, 나를 부위원장으로, 이부영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을 집행위원장으로 정했다. 전교조는 12일 진주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12월로 예정된 위원장단과 지부장 선거를 이듬해 3월로 연기하고, 11월30일까지를 추모기간으로 정함과 동시에 사고대책에 온 힘을 기울이기로 했다. 나는 여러 차례 진주에 내려가 입원해 있는 동지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위로했다.

전국유치원위원장을 맡아 열심히 활동하던 조재순 선생님은 오른쪽 팔을 잘라내야 했다. 특히 사고 당시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로 사고 현장을 그대로 본 상황이어서 정신적 충격도 매우 컸다. 이귀순 선생님은 오른쪽 어깨부터 손까지 으깨져 8시간 가까이 수술을 했는데 이후 칠판 글씨를 다시 쓰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다고 한다.

초등의 박해관 선생님은 발목 아래로 완전히 부서져 3시간에 걸친 수술을 했으나 계속 악화돼 병원에서는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대체의학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오래된 전통 간장을 먹였는데 정말로 썩어가던 부위가 아물어 의사도 무척 놀라워했다고 한다. 다행히 절단은 하지 않았지만 목발은 짚어야 했다. 척추와 갈비뼈를 다친 황금성 선생님은 ‘하반신 마비’가 될 정도는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다쳐 누워 계신 선생님들이 굉장히 밝은 표정으로 맞이해준다는 것이었다. 서로 격려하며 오히려 사고가 난 것은 자기들의 불찰이었다고 미안해했다. 운전기사가 졸음운전을 하지 않게 미리 확인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해 조직에 염려를 끼치게 됐다며, 빨리 회복해 학교에 갈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사고 버스는 종합보험에 가입은 했으나 얼마 동안 보험료를 내지 않아 보험회사 쪽에서는 보상을 못 해준다고 했다. 예기치 못한 엄청난 사고에 조직 전체는 신속하게 움직였고, 조합원들은 한마음이 되었다. 사고 50여일 만에 12억원가량의 성금이 모였다. 충북 청주의 오황균 선생님은 초등학교 다니는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적금을 넣고 있었는데 곧 만기가 될 적금을 해약해 100만원을 성금으로 내놨다. 인천의 선생님도 가족회의를 열어 40만원을 보내오는가 하면, 후원회를 별도로 조직한 지회도 있었다. 주위 단체들은 전교조의 일사불란한 결속력에 놀라워했다. 물론 다른 단체들의 도움도 컸다. 나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남지부 사고에 보여준 동지애에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경남지부 사고의 아픔은 정말 침묵으로 대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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