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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참된 사학 모범 보인 ‘나무 할아버지’ 채현국 이사장' / 정해숙

등록 2011-09-28 19:43수정 2014-01-05 16:16

2009년 2월 열린 경남 양산 효암고 교장 취임식에서 채현국(맨오른쪽) 효암학원 이사장이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인 류경렬(가운데) 교장을 소개하고 있다. 채 이사장의 부친 채기업 선생은 일제 때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한 민족기업가로서 1988년 <한겨레> 창간 초기 첫 부음기사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사진 효암고 제공
2009년 2월 열린 경남 양산 효암고 교장 취임식에서 채현국(맨오른쪽) 효암학원 이사장이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인 류경렬(가운데) 교장을 소개하고 있다. 채 이사장의 부친 채기업 선생은 일제 때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한 민족기업가로서 1988년 <한겨레> 창간 초기 첫 부음기사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사진 효암고 제공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96
1996년 11월10일의 경남지부 버스 사고는 전교조가 결성 이후에 겪은 최대의 아픔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직이 결속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내게도 엄청난 충격이자 슬픔이었다.

사고 직후인 11월12일, ‘위원장 선거를 다음해 3월로 연기한다’는 결정을 한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나는 위원장 사의를 표명했다. 12월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렇게 큰 사고를 당한 사실에 위원장으로서 조합원들에게 미안하고, 또 우리를 지지해준 단체와 국민들에게도 염려를 끼친 점이 몹시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위원장 임기가 관성에 의해 3개월 연장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연장된 3개월을 최대한 활용해 조직이 새롭게 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원래 임기인 12월31일까지 사고 수습 등 임무를 수행하고, 연장된 3개월은 조직이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중집위원들은 내 의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나는 동지들이 다쳐 누워 있는 병실을 방문할 때마다 웃으며 위로했지만 너무나 마음이 아팠고, 회의에서 사고를 떠올리며 얘기하자니 머리가 아찔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중집위원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을 왜 몰랐겠는가. 특히 사고를 당한 이영주 경남지부장은 얼마나 기가 막혔겠으며,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나 있었겠는가. 이 지부장은 가족들도 부상을 당한 상황이었지만 지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느라 돌볼 겨를도 없었다.

사고 수습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려 수시로 회의를 열었는데 12월 들어 연기된 차기 집행부 선거 때까지 비상대책위를 구성하는 문제가 논의되었다. 당산동 본부 사무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중집위원들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또다시 내게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앞서 여러 차례 같은 요청을 거절했던 나로서는 ‘더이상은 못하겠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동네 개들이 짖으면 방문을 열어볼 필요가 없지만 늙은 개가 짖기 시작하면 반드시 문을 열어봐야 된다는 옛말이 있어요. 나이 많은 내가 정말 더이상 할 수 없다는 말을 간곡하게 지금 몇번째 하고 있습니까. 두번째 위원장을 맡을 때도 어렵게 수락해 지금까지 해왔는데…, 비상대책위원장은 새롭게 선임해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식당 문을 닫을 즈음이어서 서둘러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도종환 충북지부장이 갑자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배신자’라는 노래에 ‘정해숙 선생님이 수락 안 한다’는 내용으로 가사를 바꿔 골목이 떠나갈 정도로 소리쳐 불렀다. 역시 시인에게는 남다른 끼가 있음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경남지부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분이 있다. 경남 양산의 학교법인 효암학원 채현국 이사장님이다. 합법화 이전부터 전교조 경남지부 행사 때마다 참여해 선생님들을 격려해준 분이어서 나도 여러번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사장님은 경남지부 사고 때 어린 딸 타원이를 잃고 자신도 크게 다친 류경렬 선생님을 2008년 재단 산하의 효암고교 교감으로 임명했다. 류 선생님은 진주 제일여고에서 해직됐다가 공립고교로 복직해 사고 당시엔 진주 지수중에 근무하고 있었다. 지난해 2월 교장으로 승진한 류 선생님의 취임식 때도 채 이사장님은 이런 인사말을 했다고 한다. “류 선생님이 전교조 출신이어서 교장으로 임용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류 선생님이 교감 시절에 얼마나 일을 잘했습니까. 그 능력을 높이 산 것입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효암재단은 올 3월 전교조 조합원인 박종현 선생님에게 교감 연수를 받게 해서 산하 개운중학 교감으로 발령을 냈다. 지난 4월 효암고교 기숙사 신축 개관식에도 초청받아 참석했는데 재단 소속 학교 교사들 중 전교조 조합원이 50%가 넘었다. 사립학교법을 악용하는 기숙형 사립고의 비리 사례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효암재단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운영을 제대로 하고 있어 놀랐다. 기숙사에는 학생들이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분위기로 잘 갖춰져 있었다. 단위학교든 기업이든 어느 현장에서든 책임자의 지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한 사례였다.

지금도 소탈한 모습으로 학교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채 이사장님의 재밌는 일화를 한토막 전해들었다. 늘 작업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쓴 채 나무를 손질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하루는 산하 중학교의 한 학생이 물었다.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응, 나 나무 손질하는 할아버지다.” “그런데 왜 우리 선생님들이 할아버지한테 인사를 잘해요?” “그건 선생님들이 훌륭하시니까 그렇지.”

오직 학생들을 위한 교육에 헌신하는 모범적인 사학재단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채 이사장님과 효암재단을 소개하는 홍보대사를 자청하고 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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