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대 전교조 위원장 임무를 무사히 마친 필자는 1998년 6월 김대중 정부의 미복직 해직교사 임용조처에 따라 10년 만에 교단으로 복직했다. 그해 9월1일 광주기계공고로 첫 출근을 한 필자는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과 학생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사진 <문화방송> 화면 갈무리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98
1997년 3월말로 김귀식 위원장, 이수호 수석부위원장의 새 집행부에 자리를 물려준 나는 전교조 본부나 광주지부 행사에 가끔 참여하면서 모처럼 조용히 지냈다. 그러던 98년 3월 중순께 갑자기 급성간염 증세가 나타났다. 평소 건강해서 병원을 잘 안 가는 편이어서 그때도 웬만하면 참아보려 했다. 커피처럼 진한 소변색을 확인하고도 병원에 가지 않고 버텼는데 다음날은 손이 가려워지고 이후 손가락까지 가렵기 시작했다. 증세가 하나씩 더 늘어나자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사흘 만에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깜짝 놀라며 급성간염이니 빨리 입원하라고 했다. “이 정도면 큰 병원에 가야 할 증세인데 제가 좀 치료를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입원하시지요” 해서 다음날 아침 일찍 입원했다. 평소 약도 잘 안 먹는데 매일 하루 세 번씩 약을 챙겨 먹어야 했고, 링거 주사를 맞으며 한달간 입원 생활을 했다.
4월초 원주에서 강원도지부 조합원인 서해남-주순영 선생님의 주례를 해주기로 약속해 놓은 터라 내심 걱정이었다.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주례를 맡는다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 같아 두 선생님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선뜻 내키지 않아 아침마다 전화기만 들었다 놓았다 했다. 새출발하는 두 젊은이들에게 주례까지 말썽을 부리며 바꾸라고 얘기를 한다는 것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망설이기를 사흘, 결혼식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아 어떻게든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의사 선생님께 주례하러 간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한 이틀 어디 좀 다녀와야겠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절대 안정해야 한다”고 했다. 너무나 완강한 반대에 결국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럼 전날 미리 가셔서 하룻밤 쉬고 주례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어렵사리 허락을 받고 무사히 주례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내 담당 주치의 김봉한 선생은 평소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병원에 찾아가서 보니 마침 간 전문이었다. 퇴원할 때 그는 ‘뉴스타트’에 대해 알려주었다. 재미 의학자 이상구 박사에 의해 전해진 각종 질병의 예방법이면서 치료법이다. 뉴스타트는 8가지 천연자연치료법의 영문 앞자리를 따서 만든 합성어로, 의사는 내게 단어마다 뜻하는 것을 일일이 적어 주었다. 영양(N)·운동(E)·물(W)·햇빛(S)·절제(T)·공기(A)·휴식(R)·신뢰(T)라며 이런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 했다. “급성간염은 치료는 쉽게 되지만 잘못하면 재발이 됩니다. 재발되면 간경화가 되고 그 상태가 더 진전되면 간암이 되니 절대 무리하지 마십시오.” 그러면서 “설사 방이 더럽더라도 깨끗이 청소하려고만 하지 말고 때로는 먼지를 입으로 훅 불고 그냥 앉아서 쉬라”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입원했을 때 문병을 와 주신 백우 스님이 추천한 야채수프도 1년 동안 꾸준히 먹었다.
퇴원한 지 두어달 만인 98년 6월 복직 통지서를 받았다. 김대중 정부 첫해에, 94년 일괄복직 때 빠진 해직교사들에 대한 조건 없는 복직 조처가 이뤄진 것이다. 해직기간에 다른 사업을 했던 선생님들, 생계를 위해 학원에 종사하다 중간에 그만둘 수 없어 복직을 미뤘던 분들, 간부로서 전교조 상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분 등이었다. 광주에서는 나와 윤영규 초대 위원장, 이효영 선생님 등 몇명이 복직 대상자였다.
복직을 위해 종합진단서를 제출하고자 신체검사를 했더니 간염 보균자라며 재검사하라는 연락이 왔다. 다행히 간염 보균자이기는 하지만 전염성이 없는 균이어서 괜찮다는 판정이 나왔다. 9월1일자로 광주기계공고(현 광주공업고등학교)에 복직했다. 윤영규 선생님은 충장중학교였다.
전해듣기로, 전직 전교조 위원장인 나와 윤 선생님을 두고 학교마다 받아들이기를 부담스러워했단다. 그래서 ‘나를 받아주는 교장 선생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복직 전날 광주기계공고로 인사를 하러 갔다. 가서 보니 전남여고 때 나와 같이 수학을 담당했던 김재근 선생님이 교장이었다. “제가 우리 학교에 오시도록 했습니다.” 참 반갑고 고마웠다.
복직 첫날 출근을 하니 기계공고 전교조 조합원을 비롯한 선생님들이 교문 앞에 나와서 꽃다발도 건네주며 환영해 주었다. 감사함과 미안함이 함께 밀려와 마음이 복잡했다. 거의 10년 만의 복직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교장 선생님은 친절하게 이것저것 배려를 많이 해주었다. “수업은 하지 마시고 도서관을 맡아 자유롭게 근무해 주세요.” “아니요, 저 수업하겠습니다.” 복직 이후 한 학기 동안은 선생님들이 출장 갈 때 빈 시간을 메우는 보충수업만 담당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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