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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반성문은 학생 아닌 어른이 써야 한다’는 깨달음 / 정해숙

등록 2011-10-03 20:19수정 2011-10-04 16:20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99
1998년 9월 복직과 함께 발령받은 광주기계공고(현 광주공고)는 규모가 굉장히 큰 학교였다. 학생 수는 주간반만 3000여명, 야간반도 1000여명이었다. 매주 토요일 직원회의를 했는데, 교직원이 200명이 넘어 회의 때마다 모르는 선생님과 인사를 나눌 정도였다.

기계공고는 70년대 중반 이후 산업체 학교 육성 정책에 따라 전국적으로 설립된 학교 중 하나였다. 그 무렵 명칭을 공업고에서 기계공고로 바꾼 곳이 많았다. 기계공고 교장선생님은 청와대와 직접 통화를 할 정도로 박정희 정권 말기 정책적으로 지원을 했다.

99년 봄 새학년이 시작되었다. 내가 사서를 맡고 있는 2층 도서실에서는 교문에서 교실까지 오가는 사람들이나 드나드는 차량들 모습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그런데 5월 즈음 하얀 경찰차가 학교에 자주 들어왔다. 마침 상담실장이 도서실을 방문했기에 같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 우리 학교에는 경찰차가 하루에 적어도 한두번씩은 오는 것 같아요. 왜 그런가요?” “그건 학생들끼리 싸우다 맞은 학생이 신고를 해서 그래요. 어떤 때는 선생님한테 맞았다고 고발하기도 해요. 신고를 받으면 경찰은 출동을 안 할 수 없잖아요. 와서 확인해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도 많아 그냥 되돌아가기도 하지요. 학교가 크고 학생 수도 많다 보니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선생님들이 다 확인하기도 어렵고 감당하기도 힘들어요.”

“그래요. 그럼 2학년 기계과 담임선생님은 몇 번이나 고발당했을까요?” 내가 질문한 이유가 있었다. 교무실에서 도서실로 오려면 2학년 기계과 교실을 지나는데, 그때마다 30대 후반쯤인 담임선생님은 회초리를 들고 있었다. 그 선생님이 수업하는 교실 앞에서도 무릎 꿇고 앉아 있는 학생들 모습을 자주 보았다. “아, 그 선생님은 고발당한 적이 없어요.” “왜요?” “그 선생님은 학생들이 존경합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기계과 선생님은 비록 회초리는 늘 들고 다녀도 자신의 감정에 의해 학생들을 때려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잘못한 학생이 있으면 반드시 그 학생에게 잘못이 있음을 확인시킨 뒤 벌을 준다고 했다. 학생이 인정한 다음에야 “너의 잘못으로 인해 학급에 지장을 줬다. 그럼 친구들 앞에서 반성할 기회를 가져야 되지 않겠냐!” 하며 무릎을 꿇게 하거나 밖에서 손을 들고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애들은 정말 건강하네요.” 상담실장의 설명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어른들은 쉽게 “요즘 애들은…왜 저 모양인가”라며 아이들 탓을 하지만 실상은 달랐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10여년 만에 교단에 돌아온 까닭에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부터 낯설었다. 노래하는 것, 말하는 것 등 아이들의 호흡이 얼마나 빨라졌는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무한 속도경쟁의 시대가 됐음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확연히 느꼈다. 하지만 나는 학생들의 건강한 모습을 보며 ‘반성문은 어른들이 써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잊지 못할 아이도 있었다. 하루는 도서실 청소를 맡아 하는 2학년 토목과의 담임선생님이 “지도 좀 잘해 주세요”라며 몇명을 가리켜 부탁했다. 그 학생들 중에는 나도 평소에 눈길이 가던 아이가 있었다. 다른 애들보다 나이가 조금 위로 보였는데 늘 운동화 뒤꿈치를 구겨 신고 다녔다. ‘아, 저 학생 습관이 잘못 들었구나’ 그렇게만 생각하던 어느날 유난히 눈에 거슬려 그 학생을 불러 세웠다. “너는 왜 운동화를 그렇게 구부려 신지?” 그래도 말없이 뒷머리만 긁적이던 그 아이는 “지금 똑바로 신어 봐라!” 하며 채근을 했더니 그제야 머뭇거리며 답을 했다. “동생 운동화여서 좀 작아요.” “왜 동생 것을 신고 왔냐? 동생은 어쩌라고.” “제가 큰아들인데, 엄마가 돈이 없으니까 저만 새 운동화를 사줬어요.” “그래…그런데?” “동생은 중학교 3학년이어서 등교를 빨리 하는데요. 저보다 일찍 일어나서 새 운동화를 신고 가버려요.” “그래서 발이 안 들어갔구나.” “예. 억지로 신을 수는 있는데 발이 아파요.” “그럼 동생보고 신발이 작으니 네 신발을 신고 가지 말라고 했어야지?” “동생이 새 운동화를 신고 싶어해서 차마 말을 못했어요.” 지금도 눈물이 나오는 대목이다.

아이들의 겉모습만 보고 ‘문제가 많은 애다, 아니다’를 구분하는 어른들의 선입견을 새삼 확인한 경험이었다. 착하고 건강한 아이들과 함께하며 감동적인 일화가 많았던 광주기계공고에서의 복직생활은 짧았지만 참 즐거웠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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