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년 만에 교단으로 돌아온 필자(왼쪽 넷째)는 전공인 도서관 사서 업무를 맡아 한국도서관협회 총회 등에 참가했다. 사진은 1976년 5월 서울 남산의 국립중앙도서관을 대신해 워커힐 호텔 등에서 분산개최된 국제도서관협회연맹 총회 때 한국 대표단과 함께한 모습.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100
1998년 9월 광주기계공고로 복직한 나는 다시 도서실 사서로서 한국도서관협회의 회의에 참석했다. 10년 만에 회의 가게 된 국립중앙도서관은 그사이 서울 남산에서 서초동으로 옮긴 상태였다. 오랜만에 중앙도서관을 찾아가려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애초 국립중앙도서관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서울 소공동에서 국립도서관으로 개관했다. 이후 74년 말 남산으로 이전했는데 그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씨가 설립한 육영재단에서 70년 남산에 어린이회관을 지었다. 전국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공간인데 남산 중턱 높은 곳에 있어서 찾아오기 힘들다는 이유로 1년 만에 이전 계획을 세웠다. 유신정권 치하에서 대통령이 직접 두산의 연강 박두병 초대 회장을 불러 “어린이회관을 인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분부(?)를 했지만 거절당하자 결국 74년 12월 국립중앙도서관에 건물을 넘겼다. 대신 어린이회관은 광진구에 거액을 들여 신축해 옮겼다. 어린이 전용으로 지은 건물이 국립중앙도서관이 된 것이다.
76년 서울에서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 세미나가 열렸는데, 전세계에서 온 외국 도서관인들에게 남산의 국립도서관을 차마 보여주기 민망해서인지 다른 여러 곳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나는 그때 목포여고에서 근무하며 한국도서관협회 이사로 참석했는데, 그 무렵 동숭동에서 관악 캠퍼스로 옮긴 서울대를 중심으로 워커힐 호텔과 서울 시내 공공도서관들을 돌아다닌 기억이 난다.
한 나라의 지식문화정책의 핵심이라 할 도서관의 입지를 정치적 목적에 따라 편의적으로 결정하는 군부독재 정권의 실상을 드러낸 ‘부끄러운 사연’이 아닐 수 없다. 남산 시절의 옛 중앙도서관을 떠올리면 새삼 우리의 도서관 정책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 무렵 잊혀지지 않은 기억은 오랫동안 몰고 다니던 승용차와 헤어진 일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유난히 정이 가고 분신처럼 느껴져 버리기 아쉬운 물건이 있듯이 내겐 ‘스텔라’가 그랬다.
78년 4월에 1종 운전면허를 땄으니 그 시절 비교적 일찍 운전을 하게 된 편이었다. 맨 처음에는 포니를 타고 다녔고 스텔라가 두번째 ‘애마’였다. 광주의 지역 방송사 프로그램 출연과 퇴근 뒤 여러 교육행사에 바쁘게 오가야 했던 내게 차는 매우 유용했다. 더욱이 89년 해직 이후 학교 방문, 전국 회의와 대회 참가 등으로 분주했던 시기에는 언제나 인쇄물이 많아 싣고 다니는 데 필수적이었다. 전교조 탄압과 감시가 심했던 때여서 긴급하거나 보안이 필요한 상황에서 긴요한 구실을 종종 했다.
스텔라를 몰기 시작한 지 10년이 되던 해인 98년 무렵, 차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운전할 때 잘 달리기는 하지만 마치 트럭이나 탱크를 몰고 가는 것처럼 소음이 심하게 났다. 자동차 정비소에 수리를 부탁해도 기종이 오래돼 부품이 없다고 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폐차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직접 스텔라를 몰고 광주 외곽에 있는 폐차장을 찾았다. 폐차하기 위한 확인과 절차를 마치고 폐차장 직원의 말대로 차를 한쪽에 세워두고 나왔다. 그런데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몇번이나 뒤돌아봤는지 모른다. 다시 시내로 들어왔을 때까지도 차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결국 나는 폐차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스텔라가 두고 왔던 그 자리에 의젓한 모습 그대로 있었다. 그 잠깐 사이 다시 보니 반갑고 다행스러웠다. 나는 운전대도 닦아주고 몸체도 만져주며 잘 가라는 마지막 인사를 또 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지난 10년간 나와 함께 전국을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고비고비 갖가지 일들을 겪었던 분신을 떠나보내자니 마음이 휑했다. 마치 가족의 일원을 버려두고 가는 느낌이었다. 보고 또 쳐다보고를 했다.
스텔라를 보내고 돌아오면서 ‘인간만이 아니라 유정무정 두두물물이 모두 하나의 생명이다’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절로 깨달아졌다. 비록 쇳덩어리 기계일망정 인연은 ‘모두가 다 하나이구나’ 하는 것을 온몸으로 절실하게 느꼈던 소중한 체험이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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