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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휠체어 탄 안옥이가 일깨운 건강과 자립 / 정해숙

등록 2011-10-06 20:04

하반신 마비의 장애를 딛고 ‘부름의 전화 장애인자립생활협회’를 세워 장애인 자원봉사 활동을 해온 김안옥 회장(앞줄 가운데 신부)은 필자의 전교조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후원자다. 98년 1월 광주관광호텔에서 열린 김 회장과 김대만씨의 결혼식 때 축사를 한 뒤 찍은 기념사진.
하반신 마비의 장애를 딛고 ‘부름의 전화 장애인자립생활협회’를 세워 장애인 자원봉사 활동을 해온 김안옥 회장(앞줄 가운데 신부)은 필자의 전교조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후원자다. 98년 1월 광주관광호텔에서 열린 김 회장과 김대만씨의 결혼식 때 축사를 한 뒤 찍은 기념사진.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102
나이를 먹어가면서 종종 ‘건강함’에 대해 생각해본다. 오랜 기간 만남을 이어오며 내게 건강함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준 이들과의 소중한 인연 덕분이다.

김안옥을 처음 만난 것은 1980년 5·18 직후였다. 언로가 막혀 있던 시절 백영흠 목사님이 머물던 안거에서 지인들과 함께 예배도 보고 설교도 들으며 시대의 아픔을 토로하던 때였다. 뜻밖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20대 후반의 여성 환자가 백 목사님 댁 근처에 살고 있었다. 안옥이는 어지럼증 탓에 끝날 때까지 앉아 있기 힘들어하면서도 백 목사님 댁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그때부터 안옥이와 나는 서로 딸과 양어머니처럼 생각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안옥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여고 다니던 17살 때였다고 한다. 여러 사람이 다쳤는데 피를 흘리거나 외상이 심한 사람들은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그는 맨나중까지 남겨졌다. 출혈도 없고 상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일어나질 못했다. 알고 보니 척추를 다쳤던 것이다. 여러차례 수술을 했지만 결국 휠체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집으로 방문했을 때 그는 백지장같이 핼쑥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사고당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몸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런데 안옥이의 방에는 유독 책이 많이 꽂혀 있었다. 동네 아이들에게 방을 개방해 마음대로 와서 책을 볼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로 아이들을 맞았다. 한창 재잘거릴 나이인 아이들도 그 방에 들어올 때는 조심스레 문을 여닫았고, 들어와서도 무릎 꿇고 앉아 얌전히 책을 읽었다. 비록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아이들에겐 친근한 이웃 누나이면서 한편으로는 조심성을 익히게 하는 어른이었던 셈이다.

안옥이는 한때 자살을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몸이 차츰 회복될 무렵 부모님이 6개월 사이로 돌아가시면서 마음이 약해졌던 것이다. 형제자매들의 정성 어린 돌봄 덕분에 마음을 다잡은 그는 1986년 ‘부름의 전화 장애인자립생활협회’를 세우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부름의 전화는 장애인 자원봉사 단체로 광주에 사는 노인과 장애인에게 자원봉사를 통한 사회와의 소통 기회를 주고, 장애인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는 활동을 목표로 삼았다. 차량 이동 서비스와 문화체험 나들이를 하고, 장애인 가정에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을 주로 한다.

휠체어에도 제대로 앉아 있기 힘들던 중증장애인이 부모를 여읜 슬픔도 딛고 남을 돕는 모습은 내게 ‘건강함이란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80년대 중반 안옥이는 이사하면서 아파트 시공업자에게 특별주문을 해 휠체어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집안의 문턱을 모두 없앴다. 이후로 그는 늘 외지에서 손님이 오면 음식점으로 가지 말고 자기 집으로 모시고 오라고 했다. “제가 아파서 지금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만 받고 살았는데 저도 남에게 베풀고 싶어요. 된장국이라도 끓여 대접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나도 손님이 오면 안옥이가 휠체어를 밀며 부엌을 들락거려 손수 만든 특별메뉴를 맛보곤 했다.

안옥이는 자립심이 무척 강해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하더니 번역일을 할 정도로 실력을 쌓았다. 번역일을 하면서 만난 대학원생의 집요한 청혼을 받은 끝에 결혼도 하게 됐다.

결혼식 날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휠체어 타고 입장하는 신부는 꼭 천사의 모습이었다. 축사를 하려는 순간, 나는 불의의 사고 이후 그때까지 안옥이가 겪어온 숱한 어려움과 고통의 시간들이 떠올라 목이 메었다. 신랑 김대만군도 보기 드문 멋있는 청년이었고, 장애인과 결혼하는 맏아들의 결정을 받아들인 시부모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결혼식에는 ‘이티(ET) 할아버지’로 불렸던 채규철 선생도 참석해 축하해주었다. 채 선생은 60년대 중반 덴마크 유학 때 협동조합 운동에 매료돼 훗날 장기려 박사와 함께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바탕이 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들었다. 그 역시 60년대 말 교통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2m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력이 저하됐지만 끝내 극복해낸 강한 의지의 인물이었다. 대안교육과 사회복지운동에 헌신한 채 선생은 종종 헬렌 켈러의 말을 들려주었다. “3일간 눈을 뜰 수 있다면 첫째 날은 부모님과 앤 설리번 선생님과 하루 종일 눈을 마주치며 보고 싶다. 둘째 날은 산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의 장엄한 모습과 풀잎에 맺혀 있는 진주 같은 이슬을 보며 꽃이 만발한 잔디밭에서 힘껏 뛰어놀고 싶다. 셋째 날은 네온사인이 화려한 거리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마음껏 윈도쇼핑 하고 집에 돌아와 3일간이라도 눈을 뜰 수 있게 해준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눈을 감고 싶다.”

장애와 건강의 참뜻에 대해 날로 생각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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