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1일 전국을 돌며 한국전쟁을 비롯한 분단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생명평화 탁발순례’에 나서기에 앞서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이 지리산 노고단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필자는 생명평화학교 교장을 맡아 힘을 보탰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106
2003년 11월 창립한 ‘지리산 생명평화결사’(결사)는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는 뜻을 내세웠다. ‘생명평화 등불’로 불리는 회원은 “내 안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가 함께 있음을 알고, 한반도의 평화지대화, 나아가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한 길에 자신의 온 신명을 다한다”는 다짐을 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는다. 결사는 생명평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생명평화 탁발순례’와 생명평화 등불을 꺼뜨리지 않고 지켜가기 위한 수행과 학습의 장인 ‘생명평화학교’를 주요 활동으로 삼았다.
결사가 창립될 무렵인 11월12일 청화 큰스님이 조실로 계셨던 전남 곡성군 옥과의 성륜사에서 열반에 드셨다. 영결식 준비 등으로 한참 분주하던 때 결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생명평화학교 교장은 전교조 전 위원장이 맡는 것이 좋겠다는 논의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렵다는 의사를 전했으나 결사 창립에 맞춰 예정된 기자회견에서 각 영역의 책임자를 발표해야 한다며 다시 연락이 왔다. 거듭된 요구에 수락은 했으나 큰스님 영결 기간이어서 결사 창립식에 참석할 수는 없었다.
중요한 사업인 탁발순례는 2004년 3월1일 노고단에서 고사를 지내며 출발할 예정이었다. 그 며칠 전 도법 스님은 고사 때 격려하는 말을 해달라고 청했다. 그런데 하필 같은 날 성륜사에서도 입제 법회가 있었다. 신도회장을 맡고 있던 터라 노고단에 가기 어렵다 했더니 스님은 “노고단에서 하는 행사에 노고(老姑)가 안 해주면 누가 합니까? 회향 때 참석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하며 먼저 일어나 나가버렸다. ‘생명평화를 지키는 일이 우리 사회에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인데…’ 하는 생각에 눈 쌓인 노고단까지 올라가 행사에 참석했다. 그렇게 5년간의 탁발순례 첫 걸음이 시작되었다.
맨 처음 지리산 순례길에 하동 악양 일대를 돌 때였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순례 보고를 겸한 행사가 있었다.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현 경남도지사), 가수 김원중 그리고 지역민들과 탁발순례팀 등 많은 분들이 참석했다. 섬진강 시인으로 이름난 김용택 선생님은 자작시와 함께 가르치던 초등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쓴 작품 중에서 뽑아 온 몇 편의 시를 낭송해주기도 했다.
김두관 지사는 1990년대 중반 남해군수 시절에 전교조 남해지회 행사에 퇴근 뒤 참석해 격려해줬다. 행사에 올 때는 “전교조가 비합법 단체여서 관용차를 타지 않고 택시로 온다”며 소박한 모습을 보였다. 또 연말에는 자투리 예산을 모아 전국의 강사를 초청해 지역주민들을 위한 교양강좌를 열어 나를 강사로 초청하기도 했다.
2004년 9월 초에는 생태유아공동체 주관으로 울산대공원 일대를 순례했는데, 나도 참여했다. 유치원 원장들이 많은 유치원생들을 이끌고 함께했는데 아이들마다 어깨에 ‘생명평화’ 띠를 두르고 있었다. 탁발순례의 뜻도 좋지만 아이들에게 어깨띠를 두르게 한다는 게 어른으로서 너무나 부끄러웠다. 이날 집회에서 나는 “유치원 교육을 통해 일생 동안 실천해야 할 공부를 가르치고 또 배운다. ‘거짓말하지 말자. 음식을 먹을 때는 손을 깨끗이 씻고 먹는다. 친구를 때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우리 아이들이 어깨띠를 두를 정도가 되어버려 부끄럽고 마음이 아프다”는 심정을 이야기했다. 생태유아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임재택 부산대 교수는 전교조의 조재순·김영연 선생님 등과 함께 국회든 토론회 자리든, 서울이든 지방이든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2009년 9월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 이사장으로 활동을 하면서 이사로 함께한 이기웅 열화당 대표를 만났다.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는 이 대표는 파주출판도시를 기획하여 시작할 때 ‘안중근 의사’를 파주 출판도시의 감리사로 모셨는데 남다른 깊은 뜻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도올 김용옥님의 <교육방송>(EBS) 강의 중 “정부는 파주도시에 국립중앙도서관을 신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발언에 공감이 갔다.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는 2009년 초대 정동채 이사장(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추진한 도시문화에 대한 국제 세미나와 청화 큰스님 어록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제는 이기웅 이사장이 뒤를 이어 수고하고 있다. 그는 영혼도서관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정신의 유골’인 자서전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자 영혼도서관 설립을 추진하려는 이 이사장님의 바람이 성취되기를 기원한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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