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5일 저녁 분당고 학생들이 방과후 프로그램인 통합논술교과서 수업에 참여한 모습이다.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 진화한다 ②
교사는 프로젝트학습 등 시도
강사, 대안적 읽기·쓰기 지도
설명회 열어 시범강의로 채택
교사는 프로젝트학습 등 시도
강사, 대안적 읽기·쓰기 지도
설명회 열어 시범강의로 채택
2011년 학교 현장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학교급별로 차이점이 뚜렷하다. 초등에서는 특기적성 등을 비롯해 진로찾기 관련 내용이 두드러진다. 중등 이상으로 올라가면 입시 관련 프로그램들이 등장한다. 특히, 고교생들한테 방과후학교는 비교과 영역을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한편으로는 정규수업 때 진도를 나가느라 풀지 못했던 다양한 궁금증도 풀고, 대안적인 공부도 해보는 시간이다. <함께하는 교육>이 비교과 영역의 수업들을 개설한 경기 성남 분당고 사례를 만나봤다.
“이번에는 입학사정관 구술·면접 문제들을 만나볼 겁니다. 보면 알겠지만 주제들이 굉장히 일상적입니다. ‘여러분한테 어떤 꿈이 있는데 부모님이 반대할 경우 어떻게 행동할 건가요?’ 이 주제로 자기 생각을 말해봅시다.”
이슬 강사의 설명에 곧 두 학생이 자기 의견을 발표한다.
“저는 제가 갖고 있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서 부모님을 설득하겠어요.”
2학년 강수인양의 말에 이 강사가 질문을 덧붙인다.
“수인이가 조곤조곤 자기 생각을 잘 말했어. 근데 그래도 안 된다고 한다면?”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강양이 곧 대답을 이어갔다.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이 있으니까 안 된다고 하시는 거겠죠.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이 뭔지 말씀을 듣고, 그 직업이 왜 저한테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대고 설득해보겠어요.”
지난 11월15일 저녁 6시30분. 분당고의 한 교실에 15명의 학생이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인 ‘통합논술교과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다. 이 강사는 강양을 중심으로 15명 모두한테 입을 열고 자기 생각을 발표할 기회를 줬다. 이 수업의 문패는 ‘논술’이지만 이 수업은 읽기, 쓰기, 말하기 등 통합적인 사고 능력을 기르게 돕는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강사는 “논술 수업이지만 글만 쓰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을 입으로 말하게 하는 시간을 많이 준다”며 “생각한 것을 말로 풀고, 논리를 다져야 글도 논리적이 된다”고 했다.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는 교사들이 진행하는 교과심화반도 있다. 이 수업은 흔히 ‘문제해결학습’이라고 불리는 프로젝트 수업으로 꾸려간다. 학생들이 과학, 역사 등 각 과목에 해당하는 연구과제를 정하고, 탐구계획을 세워서 결과를 도출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대학 전공 공부를 한다고 보면 된다. 박성만 교사(교육과정지원부장)는 “예를 들어, 정규수업 때 과학에 대해 공부했으면 방과후에서는 과학 분야에서 주제를 정해서 연구를 하고, 학기말에 논문을 내듯이 연구 성과를 정리해 발표한다”며 “아이들 수준에서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당고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이렇게 외부 강사가 진행하는 논술 관련 수업과 각 교과 담당 교사들이 진행하는 교과심화반 양대 산맥으로 나뉜다. 이 수업들은 흔히 보충수업이라고 부르는 교과를 보충해주는 수업이 끝나고 저녁을 먹은 뒤에 열린다.
성격은 다르지만 두 유형의 프로그램은 모두 교과 연동성이 높으면서도 교과를 심화한 ‘비교과 영역’에 해당한다. 비교과 영역은 대학 진학 때 교과 영역과 함께 중요한 평가요소로 삼는 부분이다. 박 교사는 “요즘 입시에서는 생활기록부 교과 영역과 비교과 영역이 모두 중요하다”며 “예를 들어, 물리 점수가 잘 나와도 비교과에서 과제 연구, 동아리 활동, 과학 논술 등을 못하면 진학이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에 학교 안에서 비교과를 소화해주려고 한다”고 했다.
“체험활동보고서 등을 통해 학생이 어떤 활동을 얼마나 했는지 등은 어느 학교나 기록합니다. 하지만 학생이 비교과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그것을 글로 적어볼 수 있게 돕는 수업은 별로 없죠. 그런 부분들을 도우려면 학교 안에서 심화된 내용의 수업을 개설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비교과 영역 프로그램 개설은 교육 수요자인 학부모와 학생의 요구이기도 했다. 교사들이 진행하는 심화반은 경쟁률이 5:1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박 교사는 “이 수업을 들으려면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며 “일종의 소규모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거쳐야 하는데 학업계획서도 평가하고, 교과활동을 얼마나 성실하게 했는지 등도 본다”고 했다.
언론사에 위탁해 외부 강사가 진행하는 통합논술교과서 수업도 학부모와 학생이 꼼꼼하게 따져 선택한 수업이다. 지난 8월, 학교 쪽에서는 학부모 공개설명회를 열어 직접 강사가 시범강의를 보여주고, 학부모와 학생한테 수업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박 교사는 “특히 통합논술교과서가 인기가 높았던 건 기출문제를 먼저 들이대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며 “글쓰기의 기초가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 왜 재미있는지부터 알고 가는 수업이기 때문에 앞으로 긴 레이스를 해야 하는 1, 2학년 학생들한테 흥미를 준 것 같다”고 했다.
외부 강사가 진행하는 비교과 영역 수업의 또다른 특징은 언론사 위탁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개별 강사를 채용하는 방식이 아닌 신뢰도 있는 언론사 프로그램과 강사를 채택한 덕에 교사들은 교사들만의 수업에 열중할 수 있다. 박 교사는 “교사 입장에서는 교과심화 수업에 집중할 여력이 생긴다”며 “일단 논술 등의 비교과는 믿을 만한 곳에 맡겨 놓으니까 교사 입장에서는 별도로 논술을 가르쳐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고, 우리 학교의 고유한 특징인 프로젝트 수업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교사들이 논술을 중심으로 수업을 하려면 어려움이 많거든요. 말이 논술이지 논술을 전문으로 배운 교사도 없을뿐더러 정규수업은 교육과정 안에서 해야 하니까 논술까지 하는 게 녹록지 않죠. 거기다 국어 선생님의 경우는 수업이 많은 날은 5시간 정도 하세요. 체력적으로도 힘든 일이죠. 예전에 외부 강사 등을 섭외해본 적도 있었는데 논술을 너무 실용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시더군요. 논술이 왜 필요한지 당위성만 강조하니까 아이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위탁해 운영하는 논술 수업에서 학생들이 한 달 평균 내는 수업료는 약 5만원이다. 국가 지원이 50% 정도 나온다고 치면 2만5000원 수준의 수업료를 내는 셈이다. 박 교사는 “보통 이 동네 논술학원 비용이 한 달에 40만원이 넘어가는데 그런 것과 비교하면 수업료도 무척 싼 편”이라고 했다.
비교과 영역을 보충하고 싶다는 수요자의 요구에서 시작한 방과후 수업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정규수업 때 해보지 못했던 대안적인 공부의 기회도 얻게 해준다. 정규수업 때 진도 나가기 바쁜 탓에 못했던 토론, 발표, 글쓰기 등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2학년 김진솔양은 “꿈이 스튜어디스인데 발표가 중요한 직업이라 면접 준비도 하고, 나중에 진로 관련해서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수업을 듣는다”며 “의견을 말할 기회와 시간이 주어져 좋고, 다양한 분야의 배경지식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이 강사는 “단순히 수업을 하거나 논제를 주고 글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수업을 하고, 영상을 본 뒤 토론을 하거나 지금 뜨겁게 관심을 끄는 시사이슈를 소개하고, 토론을 한 뒤 글쓰기를 한다”며 “어떻게 보면 학생들 입장에서는 정규수업에서 다 못했던 대안적인 공부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지난 8월 분당고에서는 방과후 프로그램 채택 전 학부모와 학생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사진은 설명회에 참석한 학생들과 학부모. 분당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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