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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고향길 향하자마자 빨치산에 붙잡혀 가야산으로 / 박정기

등록 2011-12-11 19:52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6월 해인대학 2학년 여름방학을 맞은 박정기는 해인사를 점령한 빨치산부대에 초모당해 가야산 속으로 끌려갔다. 사진은 전쟁 당시 지리산 일대 민가 곳곳에 붙어 있던 빨치산 귀순 권고 안내문.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6월 해인대학 2학년 여름방학을 맞은 박정기는 해인사를 점령한 빨치산부대에 초모당해 가야산 속으로 끌려갔다. 사진은 전쟁 당시 지리산 일대 민가 곳곳에 붙어 있던 빨치산 귀순 권고 안내문.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1953년 6월 여름방학을 맞아 박정기는 부산 집으로 향했다. 정덕기 등 일행 셋과 함께 짐을 꾸리고 해인대학 원당암을 나섰다. 저녁 8시 산사의 밤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정류소는 절 입구에 있었다. 정류소 인근 홍도여관에 짐을 풀 예정이었다. 여관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갑자기 턱밑에서 낮고 날카로운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손 들어!”

곧이어 옆구리로 무엇이 쑤욱 들어왔다. 처음엔 몽둥이인 줄 알았다. 곁눈질로 보니 총이었다. 어둠 속에서 빨치산 대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일행은 빨치산의 명령에 따라 해인사 경내로 발길을 되돌렸다.

박정기는 보따리를 쥐고 있었다. 보따리 속엔 주로 수업 교재로 쓰는 책이 있었다. 그는 보따리를 잃지 않을 방도를 궁리했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을 지날 때 낮은 돌다리가 나왔다. 그는 몰래 보따리를 돌다리 밑에 던졌다.

해인사 점령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경내에 초소가 하나 있었는데 금세 제압당했다. 빨치산 부대는 절 마당에 봉홧불을 피우고 깃발을 세웠다. 경내가 환해졌다. 빨치산 대원들 수는 서른 남짓이었다. 해인사를 장악한 대원들은 밥을 지어 먹고 주먹밥을 만들었다. 승려와 교수, 학생 들은 법당으로 몰아넣었다.

법당 안에서 선택된 사람들이 한명씩 밖으로 나갔다. 박정기와 정덕기도 뽑혔다. 인솔자를 따라 밖으로 나오니 절 마당에 짐꾸러미 수십개가 쌓여 있었다. 차출된 사람들이 하나씩 짐을 들었다. 박정기도 짐 하나를 둘러멨다. 무거운 쌀자루였다.

연행된 이들은 교수·승려·대학생·고등학생들로 열한명이었다. 주로 젊은 사람들이었다.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총을 들어 보이며 경고했다.

“누구든 대열에서 이탈하면 이 총알이 사정없이 날아가는 기야.”


말이 떨어지자마자 행군이 시작되었다. 대열은 가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야산 중턱에서 지리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맑은 날씨였고 하늘엔 별이 떠 있었다. 연행자는 두셋씩 앞뒤로 걸었고, 그 뒤로 빨치산이 총을 들고 감시했다.

산봉우리 하나를 타넘은 뒤에 대열이 멈춰섰다. 관목과 넝쿨이 있는 숲 한가운데였다. 연행자들은 짐을 부리고 기다렸다. 빨치산 대원 몇이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았다. 어둠 속에서 달빛이 숲 속을 비췄다. 박정기는 달을 바라보았다. 인생이 무상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고향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제 절 아랫마을 청년들이 자신을 초대한 이유가 정보를 캐내기 위한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징용도 면하고 징집도 피했는데 이번엔 꼼짝없이 걸렸구나. 이대로 지리산까지 따라가면 빨치산이 되는 것인가? 나는 종가의 종손이다. 우리 가문의 족보를 지켜야 되는데…, 내가 죽으면 우리 가문은 여기서 끝이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종손으로서 책임감이 그를 붙들었다. 해인사에서 출발할 때부터 그의 머릿속은 대열에서 탈출할 생각뿐이었다.

그는 곧 정신을 수습했다. 아버지처럼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가 대학 다니느라 원당암에 머무는 동안 아버지 박영복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는 사건이 벌어진 뒤에야 전해 들었다.

고향 월평리에 빨치산 부대가 내려왔던 것이다. 마침 외출에서 돌아오던 박영복은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자마자 생포되었다. 빨치산은 오래전 일을 추궁했다. 마을 출신 일본군 장교가 한명 있었다. 그가 장교가 되었을 때 마을에 잔치가 열렸다. 그때 이장인 박영복이 잔치를 준비했다. 박영복은 빨치산들이 방심한 사이 결박을 풀고 울타리 쪽으로 튀었다. 순식간에 울타리를 타넘었다. 총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빗맞았다. 어둠이 든 때라 정확히 겨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네를 벗어난 박영복은 친척 집 뒤꼍의 대밭에 은신했다. 빨치산은 집에 불을 질렀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불을 껐다. 수백년 역사가 서린 집이 사라졌다. 이때 선조들에게 물려받아 보관하던 벼루·고서화 등 두 궤짝의 유물도 모두 사라졌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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