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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종철아 말 좀 하그래이” 주검 확인 뒤 혼절한 아내 / 박정기

등록 2011-12-20 19:54수정 2011-12-20 20:52

1987년 1월15일치 석간 <중앙일보> 사회면에 ‘박종철군 사망 사건’ 관련 기사가 처음으로 실렸다. 검찰에서 흘러나온 단서를 듣고, 경찰병원 영안실 후문으로 찾아온 기자에게 형 박종부씨가 확인해준 내용이었다.
1987년 1월15일치 석간 <중앙일보> 사회면에 ‘박종철군 사망 사건’ 관련 기사가 처음으로 실렸다. 검찰에서 흘러나온 단서를 듣고, 경찰병원 영안실 후문으로 찾아온 기자에게 형 박종부씨가 확인해준 내용이었다.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12
 1987년 1월15일 박은숙은 어머니 정차순과 함께 부산 집을 나섰다. 딸은 어머니에게 청심환부터 삼키게 했다. 집 앞에 경찰이 대기하고 있었다. 경찰관을 보자 어머니가 깜짝 놀랐다.

 “은숙아, 뭔 일인지 얘기해라. 이 사람들 누고? 갸가 또 데모하다 잽히갔노? 왜 이라는데?”

 두 사람을 태운 차가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박은숙은 영안실에 도착할 때까지 어머니에게 동생의 죽음을 알릴 수 없었다.

 비슷한 시각 남영동 대공분실을 나온 박정기는 종부와 함께 경찰병원으로 향했다. 박정기가 영안실에 도착했을 때 아내와 딸은 이미 병원에 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병원에 도착한 이후의 일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대공분실에서 겪은 일도 그랬다. 그의 증언은 장소와 시간 등이 불일치했다. 아들이 죽은 사실을 알게 된 이후의 일들은 특히 더 그랬다. 자식을 잃은 그가 보고 듣고 말한 것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병원에 들어선 정차순은 딸이 영안실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니 와 이기로 가나? 이기 어디누? 영안실에 와 델꼬 가노?”

 박은숙은 울먹거리며 영안실에 들어섰다. 정차순은 비로소 막내 종철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철아~ 철아~’ 부르며 아들을 찾았다. 넋을 잃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병원에 메아리쳤다. 박종철의 몸은 또 어딘가로 가기 위해 영안실 건물 안에 있었다.

 아들에게 가려는 정차순을 박정기가 막아섰다. 그는 ‘잘못하면 가족들이 다 죽는다’는 공포감에 아내를 만류했다. 정차순은 아들을 향해 여러 차례 달려들었고, 그때마다 박정기가 가로막았다. 그러나 아들을 찾는 아내를 끝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정차순은 울음을 멈추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종철아, 니 와 여깄나? 학교 안 가고 예서 뭐하나? 어무이 왔대이. 말 좀 하그래이.”

 그는 아들의 주검을 보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박종부는 어머니를 부축해 응급실로 향했다. 박은숙은 아버지를 붙잡고 소리쳤다.

 “아버지, 아버지, 어떻게 된 거야? 종철이가 와 죽었어? 저 사람들은 누군겨? 저 사람들이 종철일 죽였어?”

 박정기는 대답할 수 없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말을 들었을 뿐, 아무것도 몰랐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만 명백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 자신마저 쓰러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차순에 이어 박정기도 오랜 기다림 끝에 비로소 아들을 만났다. 아들은 억울한 죽음도 잊은 듯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철아! 철아! 우리 철이 맞나? 애비가 왔대이.”

 아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주검 앞에서 목이 메었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불렀다.

 혼절한 어머니를 응급실 병상에 모신 뒤 박종부는 밖으로 빠져나왔다.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그는 담배를 꺼내 물고 후문 쪽으로 갔다. 영안실 안팎은 유가족 외엔 형사들뿐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안에 유가족 계십니까?”

 후문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는 경찰들을 살피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중앙일보> 기자라고 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박종부가 후문으로 다가가 대답했다.

 “제가 유족입니다.”

 강철로 된 문 틈새로 두 사람은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말을 주고받았다. 질문은 주로 취재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내는 친형입니다.” “1965년생입니다.” “죽었습니다.” “대공분실입니다.”

 이 사건을 맨먼저 취재한 것은 ‘중앙일보’ 사회부의 신성호 기자였다. 그는 15일 아침 출입처인 서소문 검찰청사를 돌며 ‘오전 점검’을 하던 중 한 검찰 간부가 던진 말에서 단서를 잡았다.

 “경찰 큰일 났어.”

 그는 간부의 말을 예사롭지 않게 여기고 탐문을 시작했다. 여러 명의 검찰 간부들을 만나며 ‘큰일’을 수소문했다. 그는 대공분실에서 심문 도중 사망 사건이 벌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피해자의 이름을 알아내야 했다. 그는 서울대 담당 기자 김두우를 통해 서울대생 박종철의 이름을 찾아냈다. 부산 지역기자를 통해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우고 서울로 갔다는 내용도 확인했다.

 이 기사는 5공화국의 보도지침 검열망을 용케도 뚫고 그날 오후 3시30분 발행된 석간 <중앙일보>에 실렸다. 사회면의 2단 기사로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경찰은 박군의 사인을 쇼크사라고 발표했으나 검찰은 박군이 수사관의 가혹행위로 인해 숨졌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중이다.”

 이 기사는 ‘가혹행위’, 즉 고문사 의혹을 남겨 다른 언론들의 후속 취재로 이어졌고 <에이피>(AP), <아에프페>(AFP) 등 외신을 타고 전세계로 퍼졌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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