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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찾아서] 부검 통해 드러난 고문사…경찰은 회유·협박 / 박정기

등록 2011-12-21 19:54

1987년 1월19일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탁 치니 억 하며 쓰러져 숨졌다’는 내용의 수사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그는 이듬해 1월 고문 은폐를 주도한 혐의로 결국 구속됐다.
1987년 1월19일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탁 치니 억 하며 쓰러져 숨졌다’는 내용의 수사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그는 이듬해 1월 고문 은폐를 주도한 혐의로 결국 구속됐다.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13
1987년 1월15일 오후 6시가 넘은 시각, 박정기의 동생 박월길과 박종부는 부검을 참관하기 위해 한양대병원으로 이동했다. 부검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최환 검사의 숨은 노력 덕분이었다. 경찰은 14일 밤을 넘기지 않고 박종철의 주검을 화장할 계획이었다. 고문사를 직감한 최환은 외압을 물리치고 사체보존명령을 내렸다. 사건의 지휘는 그날 밤 당직이었던 안상수 검사가 맡았다.

경찰은 처음엔 주검을 내놓지 않으며 “쇼크사로 판정난 사체를 무엇 때문에 부검하려 하느냐?”며 버텼고, 나중엔 부검 장소를 경찰병원에서 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병원에서 부검을 하면 왜곡될 여지가 높았다. 결국 부검 장소는 최환의 제안에 따라 한양대병원으로 결정되었다. 1월15일 오후 부검팀이 구성되었다.

박종부는 부검을 막기 위한 경찰의 회유와 협박에 시달렸다. 아버지도 부검에 반대했다. 박정기가 반대한 이유는 죽은 자식을 왜 또 죽이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부검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박종부는 아버지 몰래 부검 현장으로 갔다. 부검을 앞두고 안상수 검사가 말했다.

“친형이 보는 것보다 삼촌이 참관하는 게 낫겠습니다.”

박월길이 참관인으로 들어가고 박종부는 건물 바깥에서 기다렸다. 부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의 황적준 박사, 한양대 박동호 교수, 박월길이 참석한 가운데 저녁 7시30분부터 9시까지 이뤄졌다. 부검을 마친 뒤 황적준은 안상수에게 말했다.

“질식사입니다. 물고문 같습니다.”

삼촌 박월길이 부검을 참관하고 나오자 박종부가 담배를 내밀었다. 박월길이 참담한 심정으로 말했다.

“저놈들이 종철이를 죽였어!”

고문사가 확실했다. 박월길이 말을 이었다.

“온몸에 피멍 자국이 많아. 두피에도 피멍이 있고, 두들겨맞은 흔적이 많아.”

예상한 대로였다. 대공분실에서 고문이 없을 수 없었다.

“상처 부위를 보니 전기고문이 있었던 거 같아.”

박월길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는 부검 결과와 달리 전기고문이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황적준은 이때부터 경찰의 집요한 회유와 협박에 시달렸다.

“급한 불(기자회견)부터 끕시다.” “보고서를 ‘심장쇼크사’로 작성해 주시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경찰은 허위 보고서 작성을 요구했다. 황적준은 정의와 타협 사이에서 갈등했다. 박종철의 죽음이 고문사가 될지, 쇼크사가 될지는 이제 그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황적준은 16일 하루 내내 고민하다 그날 밤 잠자는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정의로운 아빠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는 17일 아침 아내에게 “정의의 편에 서서 감정서를 작성하겠다”고 말했다. 1년 뒤 그는 그때 부검 과정에서 받았던 경찰의 회유와 협박 내용을 고스란히 기록한 일기장을 언론에 공개한다. 이로 인해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구속된다.

1월14일 오전 경찰의 요청으로 대공분실 509호 현장을 가장 먼저 목격했던 중앙대병원 내과전문의 오연상도 16일 언론을 통해 용기있는 증언을 한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조사실에 도착했을 당시 박군은 바지만 입은 채 웃옷이 벗겨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약간 비좁은 조사실 바닥에는 물기가 있었다.”

그의 증언은 박종철의 사인이 심장쇼크사가 아닌 물고문임을 추측할 수 있게 했다. 그는 그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상을 받았고, 올해의 인물로도 선정되었다. 의사들의 용기있는 증언으로 박종철이 고문사한 사실은 더이상 감출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경찰은 자체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론이 부풀어오르자 1월19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직접 발표했다.

“(1월14일) 10시51분경부터 심문을 시작, 박종운군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하고 소리 지르며 쓰러져 중앙대 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했다.”

그날 경찰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의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표현은 맨 처음 박정기 앞에서 재연할 때 했던 말 그대로였다. 고문 사실을 감추기 위한 이 말은 이때부터 시대의 유행어가 되었다. 누구도 이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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