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침묵의 카르텔 깨자 (상) 16살 가해학생, 태우의 고백
징계뒤엔 반성 대신 ‘응징’
“누가 일렀는지 눈에 보여”
징계뒤엔 반성 대신 ‘응징’
“누가 일렀는지 눈에 보여”
“요즘 학교폭력 기사 보고 깜짝 놀랐어요. 때리고, 돈 뜯고, 셔틀 이런 게 다 제 이야기더라고요. 그런데 바보도 아니고 왜 걸렸나 싶어요.”
서울의 한 중학교 졸업을 앞둔 임태우(가명·16)군이 학교 친구들을 때리거나 돈을 뜯기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초등학교 때는 그저 “축구 잘하는 아이”였으나, “친구 하는 걸 따라” 다른 학생들에게 ‘삥’을 뜯거나 때리기 시작했다. 주로 ‘만만한 애’가 대상이었으며, 교실·복도에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했다. 때리는 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장난’일 때는 세워놓고 발로 찼고, ‘정말 화가 날 때’는 온몸을 닥치는 대로 때렸다. 화나는 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선생님이 뭐라고 하거나, 애들이 ‘찌질’하게 굴 때 화가 나요. 자는데 떠들 때, 지나가면서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것도 싫고요.”
1주일에 5만원씩 용돈을 받지만, 친구들과 놀려면 돈이 부족하다. 부족한 돈은 삥을 뜯는다. 특별히 쓸 일이 있으면 기한을 주고 돈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특별히 돈 쓸 일’은 주로 옷을 사는 일이다. 지난해 가을에는 친구가 이르는 바람에 100만원을 물어주고 무기한 등교정지 징계를 받았다. 선생님에게 이른 학생은 임군의 ‘왼팔’이라고 했다. 임군의 ‘왼팔’은 ‘조금 찌질한 애’였지만 임군과 친해지려 애썼고, 임군도 누가 ‘왼팔’을 괴롭히면 가서 때려주기도 했다. 왼팔을 ‘장난’으로 때린 적은 있지만 ‘진심’으로 때린 적은 없었다. “어떻게 제 얘길 할 수 있어요? 배신이죠. 그래서 때려줬어요.”
학교폭력으로 징계를 받은 적은 많았다. 그러나 반성한 적은 없었다. 손팻말을 들고 정문 앞에 서 있는 교내봉사는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었고, 선생님한테 맞을 때는 ‘아프다’고 생각했고, 등교정지 처분을 받은 뒤에는 집에서 내내 잤다. 한달간 상담교사에게 상담을 받기도 했지만, ‘혼자 떠드는’ 상담교사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 징계를 받은 중학교 1학년 때는 “엄마한테 미안해서 안 해야지” 생각했지만, 곧 이른 아이들을 응징하러 다녔다. “누가 일렀는지 눈에 보여요. 돈을 많이 뜯기거나 맞은 애들 중 제 눈을 피하거나, 교무실에 자주 왔다 갔다 하는 애들이요.” 선도처분은 임군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지 못했다.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도 안 걸리면 되잖아요.” 학교 쪽은 지난해 말에는 “졸업장 줄 테니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임군에게 말했다.
임군은 다른 학생을 괴롭힐 때면 ‘싫겠다, 짜증나겠다, 나쁜 짓이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나면 잘 못 참아요”, “저는 돈이 필요해요”라는 말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피해 학생의 기사를 읽고도 “자살한 애가 바보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함께 노는 친구들은 절대 때리거나 돈을 뜯지 않는다. ‘친구 사이의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 학생은 임군에겐 ‘그냥 지나가는 애’였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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