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시교육청에서 열린 ‘서울학생인권조례 공포 기자회견’에서 한상희 학생생활교육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건국대 교수)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학생인권조례’ 계속되는 논란
경기와 광주에 이어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됐지만 반대의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근 학교폭력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논란이 점점 더 복잡하게 전개되는 모양새다.
■ 미숙한 10대들이 인권 오용 vs 부작용에 대한 견제 장치 있다 조례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학생 인권을 빌미로 일탈행위를 정당화하려 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미숙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상임대표는 “선생님한테 대드는 것을 표현의 자유로 생각하는 아이들한테는 아직 성숙된 인권 의식이 없다”며 “학교는 공공질서와 사회질서를 배우는 곳인데 인권을 오용하는 소수를 보면서 다수의 아이들이 인권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시행되는 조례가 △임신 또는 출산,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집회·시위의 자유 등을 보장한 것을 두고, 보수 단체들이 “동성애자를 양산하고, 청소년의 임신을 조장한다”거나 “학생들이 정치 집단화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것도 미숙한 학생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것이란 이유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은숙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회장은 “미혼모나 동성애 부분이 보수언론에 의해 부각됐을 뿐,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유엔이 정한 아동권리협약에도 포함된 내용”이라며 “인권 존중이라는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가치는 외면하고 지엽적인 이유로 정치적인 반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에 공포된 조례가 학생 권리에 대한 제약을 가능하게 하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대선 서울 선사고 교사는 “소지품 검사나 휴대폰 소지 금지도 학생들의 동의를 구하고 교사가 실시할 수 있도록 돼있는데 이건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라며 “다만 학생들이 조례를 읽기보다 언론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고 있어, 학기 초에 있을 일시적인 혼란은 교육청 차원의 공통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무력화한다 vs 과거의 생활지도 방식은 이미 무력화됐다 지난해 12월 대구에서 왕따를 못 견딘 학생의 자살로 불거진 학교폭력 문제는 조례에 반대하는 쪽에 힘을 실어준 계기가 됐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학교폭력이나 학생 간 갈등에 교사가 적극적인 예방자로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조례는 오히려 생활지도권을 지닌 교사의 손발을 묶고 있다”며 “간접체벌까지 금지하는 조례로 인해 학생들이 ‘교사가 날 벌 줄 수 없다’는 해방감을 느끼게 되면 교사는 학생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교사의 생활지도권 약화는 해묵은 문제로, 오히려 조례가 새로운 생활지도의 방식을 모색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배경내 학생인권조례제정 서울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지금까지 생활지도는 학교의 기준으로 학생을 굴복시키는 과정에서 정당성이나 동의를 받지 못했다”며 “학칙 제정에 학생 참여를 의무화한 조례가 시행되면 민주적 정당성과 자발성을 토대로한 생활교육이 가능해진다”라고 말했다. 박종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학생생활국장은 “통제와 권위에 기댄 방식이 아닌 과거와 크게 달라진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반영한 새로운 생활지도의 방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학교 사정에 맞는 학칙 정하면 된다 vs 학교는 인권 존중하는 학칙 못 만든다 학생 생활과 관련한 사항을 개별 학교가 아닌 시·도 조례로 정하는 것이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반대 쪽 논리도 견고하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조례는 학교규칙을 일률적으로 규제하여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보장한 학교의 자율성 및 학교 구성원의 학칙제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범희 경기 흥덕고 교장은 “교장·교감이 귀고리 지름은 얼마까지 되느냐를 교육청에 물어볼 정도로 우리 학교가 학생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의 학칙을 제정할 생산적인 논의구조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학교의 관행에 비춰보면 인권 존중이라는 큰틀을 조례로 정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명선 김민경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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