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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조성만 투신…죽음의 행렬 보며 “무조건 살아라” / 박정기

등록 2012-02-16 20:16

1988년 5월15일 서울 명동성당 가톨릭교육관 옥상에서 할복한 서울대생 조성만씨가 투신하는 장면(왼쪽)으로 창간 사흘째인 5월17일치 <한겨레>에 실렸다. 17일 저녁 어머니 김복성씨가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오열하고 있다.(오른쪽)
1988년 5월15일 서울 명동성당 가톨릭교육관 옥상에서 할복한 서울대생 조성만씨가 투신하는 장면(왼쪽)으로 창간 사흘째인 5월17일치 <한겨레>에 실렸다. 17일 저녁 어머니 김복성씨가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오열하고 있다.(오른쪽)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52
88올림픽을 넉달 앞둔 5월15일, 박정기는 서울 아현동 아들 종부의 집에 있다가 다급한 연락을 받고 아내 정차순과 함께 백병원으로 향했다. 또 한 명의 대학생이 위급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아뜩했다.

이날 민가협과 유가협 회원들은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양심수 전원 석방’, ‘수배자 전원 해제’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었다. 가톨릭회관엔 박계동·여익구 등이 피신해 있었다. 농민복을 입고 교육관 옥상에 올라선 서울대생 조성만은 확성기의 사이렌을 울린 뒤 구호를 외쳤다.

“공동올림픽 개최하여 조국통일 앞당기자!”

“민주인사 가둬놓고 민주화가 웬 말이냐!”

“분단 고착화하는 미국놈들 물러가라!”

곧이어 그는 할복 항거한 뒤 명동성당 바닥을 향해 몸을 던졌다. 현장을 목격한 회원들은 울부짖고 실신하며 쓰러졌다.

박정기는 분신 같은 사건이 터지면 조인식 사무국장의 연락을 받고 허둥지둥 달려가곤 했다. 그는 유가협에 가입한 뒤에야 많은 학생과 노동자 등이 막내(종철)처럼 목숨을 잃고 의문사로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언론에 한 줄도 실리지 않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나간 사건도 많았다. 특히 노태우의 6공화국이 들어선 88년 한 해 동안 누군가 죽지 않는 달이 거의 없었다.

새해가 되자마자 경남 마산의 택시기사 이대건이 분신했고, 두 달 뒤 인천 경기교통의 김장수 노조위원장이 분신했다. 같은 달 대선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던 중 김길호 농민이 목숨을 잃었다. 4월엔 고려피혁의 최윤범 노조위원장이 분신했다. 그가 분신한 다음날 이광호씨가 불에 타 숨졌고, 5월엔 연세대생 고정희가 강남성모병원에서 의문사했다. 그리고 고정희가 운명한 지 이틀 만에 또 한 명의 대학생 조성만이 생명을 잃은 것이다.


모두 24명의 학생·노동자·농민…대중이 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의해 사라졌다. 박정기는 죽음의 행렬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그때부터 학생과 노동자들을 만나면 “무조건 살아야 한다”는 말을 되뇌었다. 그런데도 텔레비전을 켜면 온통 올림픽 열기로 들떠 있었다. 그가 보는 세상과 방송 화면 속의 세상은 딴판이었다. 방송을 볼 때면 분통이 터졌다.

백병원에 도착한 박정기는 조성만의 유서를 읽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척박한 땅, 한반도에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이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이 글을 드립니다. …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아버님 어머님 얼굴. 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척박한 팔레스티나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한 인간이 고행 전에 느낀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박정기는 유서의 마지막 구절을 다 읽지도 못한 채 눈시울을 붉혔다. 조성만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신부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전주중앙성당에서 문정현 신부를 만난 뒤 농민들과 함께하는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가 닮고 싶었던 이는 오로지 ‘길 위의 신부’ 문정현이었다. 부모의 바람을 따라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했지만, 오랜 설득 끝에 졸업 뒤 가톨릭신학대 입학을 허락받았다.

조성만이 삶의 마지막 장소로 명동성당을 선택한 것은 소외된 이들의 친구였던 예수의 삶을 저버린 보수적인 가톨릭 신앙에 대한 항거였다. 교회와 성당에 예수는 없었다. 입으로는 예수를 말하면서도 예수를 세 번 부정한 유다의 길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에게 그는 온몸으로 호소했다. 그가 꿈꾼 세상은 인간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착취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인간의 존엄성이 바탕이 되는 세상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조성만은 일기장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되풀이 썼다.

“사랑 때문이다. 내가 현재 존재하는 가장 큰 밑받침은 인간을 사랑하려는 못난 인간의 한 가닥 희망 때문이다. … 나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조성만은 박종철이 알고 지내던 김세진의 가까운 친구였다. 세 학생의 운명을 생각하니 박정기는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유서에서 조성만은 ‘한반도 통일’, ‘미군 철수’, ‘군사정권 반대’,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등을 요구했다. 박정기는 조성만의 죽음을 계기로 분단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훗날 유가협 회장이 된 뒤 통일선봉대 단장으로 국토대장정을 이끌게 된 것은 조성만의 뜻을 잇기 위해서였다.

조성만의 어머니 김복성은 아들이 떠난 뒤 유가협 회원이 되어 박정기와 함께 활동했고, 공무원인 아버지 조찬배는 95년 은퇴한 뒤 활동에 참여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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