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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종철이 지키려했던 선배 박종운을 ‘새 아들로’ / 박정기

등록 2012-03-08 20:16

1988년 12월21일 서울 양평동에 있던 한겨레신문사 편집국에서 박정기(오른쪽부터)·정차순씨 부부가 박종철군 체포의 빌미가 됐던 서울대 선배 박종운(왼쪽)씨를 처음으로 만나고 있다. 1985년 10월 민주화추진위 사건(깃발사건)으로 도피해온 박종운씨는 수배가 해제되자 박군 부모를 찾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8년 12월21일 서울 양평동에 있던 한겨레신문사 편집국에서 박정기(오른쪽부터)·정차순씨 부부가 박종철군 체포의 빌미가 됐던 서울대 선배 박종운(왼쪽)씨를 처음으로 만나고 있다. 1985년 10월 민주화추진위 사건(깃발사건)으로 도피해온 박종운씨는 수배가 해제되자 박군 부모를 찾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67
1989년 1월14일 박종철 2주기 추모식을 앞두고 박정기는 1년 전 1주기 때를 떠올렸다. 박정기는 종철의 체포 빌미가 됐던 대학 선배 박종운이 보내온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편지와 함께 도착한 목도리는 그와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매만졌다. 그동안 박종운의 소식을 듣긴 했지만 직접 쓴 편지를 읽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아현동에 사는 박종운의 친형이 부산 집으로 찾아온 적도 있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박종운의 형으로서 정중히 사죄합니다.”

박정기는 만류했다.

“아니, 무슨 말씀인교? 그럴 필요 없습니더. 그아들이 양심을 거역한 일이 무에 있습니껴? 추호도 그런 마음 품지 마이소.”

박정기는 아들의 일로 그의 가족이 죄책감을 갖지 않길 바랐다.

“철이를 죽인 건 독재자인데 왜 우리에게 사죄합니까? 그라지 마십시오.”

형을 돌려보낸 뒤 박정기는 ‘박종운도 내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는 박종운이 언젠가 자유로운 몸이 되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정기는 박종철 2주기 추모식에 앞서 88년 12월21일 서울 양평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박종운을 만났다. 4년간의 수배가 해제된 즈음이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종운씨를 만나보시겠습니까? 저희가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박정기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우리가 못 만날 이유가 없지예.”

그는 정차순과 함께 신문사로 찾아갔다. 박종운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떠난 아들을 대신해 또 한 명의 자식으로 맞이하리라고 다짐했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박종운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절로 눈물이 쏟아졌다. 집 떠난 아들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는 박종운을 끌어안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를 안으며 박정기는 속으로 말했다.

‘이젠 됐다. 그래, 이젠 됐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이 말만 그의 마음속에서 되풀이되었다. 박종운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부족하지만 앞으로 제가 철이를 대신하겠습니다.”

박정기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박종운은 이날부터 박정기의 새 가족이 되었다. 그는 명절이면 빠짐없이 찾아와 자식 노릇을 대신 했다. 박정기는 1997년에 펴내 <철아,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에서 박종운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박종운이 같은 사람이 좀더 이 사회에 많았으면 하는 욕심을 부린다. 어수선한 사회에서 삶을 살고 염증이 나도록 그 꼴들을 보고 비양심적인 사람이 너무 많았으니 말이다. 사기, 뇌물, 비자금, 정치 술수의 꼴을 보다가도 그래도 주위에 이러한 착한 젊은이들이 있다고 자부하고 보면 내가 부자이구나 하는 마음에 늘 자랑을 한다.”

박종운은 박종철기념사업회 운영위원을 맡아 일했다. 하지만 그는 2000년 갑자기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한나라당 후보로 부천시 오정구에 출마했고, 원혜영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아버지로서 두 아들의 엇갈리는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착잡했다.

유가족들은 2주기 추모식 다음날인 1월15일 임시총회를 열었다. 이날 회의엔 쉽게 풀 수 없는 난제가 놓여 있었다. 농성을 시작한 이후 늘어난 의문사 유가족들을 유가협의 회원으로 받아들일지 여부였다. 그동안 유가협 회원은 노동운동·학생운동·통일운동에 헌신한 이들의 유가족에 한정하고 있었다. 기독교회관을 찾아온 의문사 유가족들은 유가협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며칠 전부터 박정기와 이소선은 회원들에게 의문사 유가족들을 회원으로 맞이해야 한다며 설득을 해왔다. 회의가 시작되자 이소선이 입을 열었다.

“저분들도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의 유가족들 아입니까?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박정기가 대답했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비록 민주화운동을 하지 않은 분도 있지만 국가의 폭력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분들 아인교. 그라고 지금껏 의문사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더. 이분들 또한 공권력에 매 맞아 가며 많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까? 새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습니데이.”

하지만 다른 생각을 지닌 분도 있었다.

“죽음에 의문이 있다고 다 유가협 식구가 되면 천 명, 만 명이 넘어설 것입니다. 의문사 유가족이라고 다 가입할 수는 없잖습니까? 민주화운동을 하다 떠난 분으로 한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박정기는 그 말도 설득력이 없진 않다고 생각했다. 유가협 회원의 범위를 무한정 넓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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