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용인고 용두용미 학생들.
또래학습으로 함께 배우는 학생들
질문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
가르치며 개념이해, 복습 가능
질문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
가르치며 개념이해, 복습 가능
“중학교 때 조금 놀았다. 고교에 올라오자 놀았던 흔적이 보였다. 친구들은 모두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게 많았다. 막막했다.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면서 2학년에 올라갔다. 어느 날, 나를 닮은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해보려고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은 눈치였다. 그 친구와 함께 또래학습동아리에서 멘토-멘티로 연을 맺고 공부를 시작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 저동고(교장 김성근) 3학년 차혁준군(또래학습 영어부장)이 학교 또래학습동아리(JHPT, Jeodong High school Peer Tutoring)에서 멘티 이재현군과 공부하게 된 사연이다. 두 남학생은 말로는 “친하지 않다”고 멋쩍어하지만 사실은 ‘절친’이다. 이들을 친한 친구로 만들어준 건 부족한 영어공부였다. 함께 공부하면서 짜증날 때도 많았다. 2010년에 조직된 동아리는 학생들 스스로 멘토와 멘티를 정하고, 교수학습지도안까지 만들어 공부하는 시스템이었다. 차군 역시 지도안부터 문제까지 매번 직접 만들었지만 차군이 볼 때 이군은 마지못해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수록 더 정성을 들였다. 올 것 같지 않았지만 주말에 집으로 와서 함께 공부하자는 제안도 했다. 어느 날, 안 오겠거니 했던 친구가 찾아왔다. 이군은 “혁준이한테 고마운 게 있었다”고 했다. “잘 몰랐는데 혁준이가 직접 문제도 만들고 프린트까지 해 오더라고요. 더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성격과 성적수준을 잘 알고 있었다. 차군은 “또래학습에 잘 맞는 성격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선생님한테 질문하는 거 어려워하고, 자존심도 센 친구들한테 잘 맞죠. 재현이도 그런 경향이 있거든요. 선생님이었으면 안 물어보고 넘어갔을 텐데 친구니까 편하게 질문하는 거죠.”
두 학생이 속한 동아리에는 현재 30여명 이 활동중이다.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꾸려가지만 학교 쪽의 배려도 크다. 출석체크, 공간내주기 등 동아리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뿐 아니라 필요한 문제집도 구입해준다. 두 남학생처럼 친구도 있지만 보통 선후배 관계로 멘티와 멘토가 짝을 짓는다.
2학년 정다솜양은 지난 1년 동안 3학년 서문지영양과 수학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서로 존댓말을 쓸 정도로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이는 돈독해졌다. 정양은 “지영 언니가 직접 손으로 쓴 교재로 공부했다”며 고마워했다. 덕분에 어려워하던 함수를 깨쳤다. 요즘도 자율학습을 하다가 모르는 게 생기면 언니를 찾는다. 서문양의 후배사랑은 내리사랑이다. 서문양은 “1학년 때 영어를 잘하는 선배가 교재를 직접 만들어서 가르쳐줬는데 나도 후배한테 이렇게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배운 걸 복습도 할 수 있고, 리더십도 길러진 것 같아요. 앞으로 초등학교 교사가 꿈인데 꿈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3학년 성예은양(또래학습수학부장)도 지난 1년 동안 2학년 임연지양의 개인교사 구실을 톡톡히 했다. 두 사람은 진학, 진로 문제에 대해서도 조언을 주고 구하는 사이다. 지난해 말, 성양은 가르친 보람을 제대로 느꼈다. “고3 올라가니까 아무래도 막막하고 두려웠거든요. 근데 연지가 힘이 되는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사실 학교생활을 하면 경쟁하는 분위기 때문에 삭막해지거든요. 저는 동생이 있긴 하지만 이 활동을 통해서 제2의 동생이 생긴 것 같아요.” 성양은 “또래학습을 하려면 서로 간에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서로 시간이 없는 입장에서 짬을 낸 거잖아요. 갑자기 못할 것 같다고 하면 안 되죠. 연지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그 믿음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여기저기서 무한경쟁을 외치지만 ‘함께 공부’의 즐거움을 배우며 즐거운 경쟁을 하는 학교 사례도 늘고 있다. 부산 용인고(교장 박만제)는 전교생 1300여명 가운데 770여명이 또래교사제에 참여한다. 지난 2010년에 시작한 이 동아리 제도의 이름은 ‘용두용미’다. 함께 용이 되자는 의미다. 이상열 교무기획부장 교사는 “보통 동아리 활동이 잘하는 학생들 위주로 구성되게 마련인데 상대적으로 성적이 낮은 학생들도 함께 공부하면서 ‘상생’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용두용미는 한 학급에 한 쌍씩 1:1 시스템으로 꾸려가다 작년부터는 1:3 체제로 바꿔 운영된다. 이 교사는 “이렇게 하면 그룹 안에서 소외되는 친구가 누구인지도 알 수 있고, 한 사람이 이 활동에 손을 놓더라도 나머지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중학교 때까지 혼자 공부하는 습성이 몸에 배 있던 학생들은 이런 동아리가 낯설었다. 2학년 김강영군은 “처음에는 ‘이런 걸 왜 하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친구와 팀을 꾸려 공부를 해보니 재미가 붙었다. 멘토로서 도움도 받았다. “제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거나 무심코 넘어간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효과는 멘토만 느끼는 건 아니다. 2학년 전용현군은 “친구라서 부담이 없고, 늘 옆에 있으니까 편하다”며 “학원에 가면 짜여진 시스템 속에서 공부를 하지만 멘토 시스템에서는 나한테 맞춤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멘티는 멘토의 공부 의욕을 다져준다. 2학년 이재민군은 “멘티들이 ‘내 멘토 성적 잘 나왔다’고 말해줄 때는 나도 모르게 뿌듯하고, 나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또래교사제는 학교 문화를 바꿔놓기도 한다. 서로 어색함을 벗지 못한 학기 초, 소외되기 쉬운 학생들에게 친구를 사귀게 해주는 계기도 마련한다. 2학년 홍영기군은 “학교가 있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진학을 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모르는 친구였고 그래서 당황스러웠는데 동아리 덕분에 친구 그룹이 형성됐다”고 했다.
지난 3월19일, 경기도 파주시 송화초(교장 윤송근) 6학년 학생들 구유진, 서하연, 조수민, 김우경, 조례영양과 광일중(교장 박병립) 학생들 우다훈(2년)군, 최다인(3년), 김진이(3년), 이여진(3년), 장수민(2년)양이 송화초에 모였다. 광일중 학생들은 송화초 졸업생들로 지난해 3월부터 등교하는 토요일 오후에 후배들을 만나 수학을 가르쳤다. 이런 방식의 초-중 연계 학력향상 멘토링제에 참여한 학생은 광일중 멘토 13명, 송화초 멘티 32명(5~6학년)이다. 송화초 윤송근 교장은 “보통 초등학교 고학년생들이 중학교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데 선배들을 통해 초등과 중등이 연계도 하고, 협력해서 공부하면서 인성교육도 시켜주자는 뜻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멘토들은 초등학교 후배를 가르쳐본다는 사실에 흥미로움을 느껴 활동을 시작했다. 광일중 3학년 최다인양은 “후배들을 가르쳐주는 것도 의미가 깊고, 이런 경험을 통해 진로 탐색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학기 초, 멘토들에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막막했다. 광일중 3학년 김진이양은 “또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방법을 잘 몰랐고, 어색했다”고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김양은 송화초 6학년 조례영양의 성적을 올려준 고마운 선생님이 됐다.
또래학습의 주체가 초등, 중등 학생이기 때문에 교사의 구실도 중요했다. 송화초 류지연 교사는 커리큘럼, 문제 등을 함께 만들어나갔다. 처음에는 문제풀이식의 공부를 시도했지만 하다 보니 문제를 푸는 데만 급급할 일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류 교사는 “또래학습에서는 한 문제를 풀어도 제대로 푸는 과정을 함께 알아가는 게 좋다는 걸 나도 배웠다”며 “문제해결력을 기르게 해주는 문제를 내고 놀이하듯 공부해봤다”고 했다. 덕분에 중학생들은 서술형 수학문제를 푸는 힘도 키웠다.
나이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선배들은 수학에 두려움을 갖는 후배들 마음을 잘 안다. 광일중 김진이양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께 손을 들고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잘 안다”고 했다. 송화초 6학년 김우경양은 “보통 학원에서는 선생님이 설명하고 마는데 여기서는 언니들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서 모르는 걸 물어볼 때 창피하지도 않다”고 했다.
많은 학생들이 또래학습이 가르치는 학생한테는 복습의 효과, 배우는 학생한테는 성적향상의 기회를 준다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얻는 건 돈독한 우애다. 특히 또래끼리 공부를 직접 체험한 학생들은 이런 방식의 공부를 통해 형제, 자매를 얻은 느낌이라고 입을 모은다. 저동고 차혁준군은 “친구 재현이랑 공부를 하면서 재현이가 형 역할을 해줄 때가 있어 좋다”고 했다. “저도 모르게 예민해질 때 재현이가 ‘사내아이가 뭐 그런 걸로 그러냐’고 말을 해줘요.(웃음) 공부도 공부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았고, 협동해서 공부하는 즐거움도 배웠습니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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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저동고 JHPT 학생들.
파주 광일중 학생이 송화초 학생에게 수학 문제를 가르쳐주는 모습.
파주 송화초, 광일중 학생들이 초-중 연계 학력향상 멘토링제에 참여한 뒤 종강식을 열고 찍은 단체사진.
지난 19일 파주 송화초 교실에서 광일중 학생이 후배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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