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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찾아서] ‘강경대 치사사건’ 첫 공판서 유가협 울분 폭발 / 박정기

등록 2012-04-08 19:59

1991년 7월4일 서울서부지원에서 열린 ‘강경대군 폭행치사’ 전경 4명에 대한 첫 공판이 법정 소란을 이유로 휴정하자 유가협 회원들이 법정 출입문을 열어달라며 항의하고 있다. 이날의 소란을 이유로 박정기씨와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는 구속되고 회원들 몇명은 수배당했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991년 7월4일 서울서부지원에서 열린 ‘강경대군 폭행치사’ 전경 4명에 대한 첫 공판이 법정 소란을 이유로 휴정하자 유가협 회원들이 법정 출입문을 열어달라며 항의하고 있다. 이날의 소란을 이유로 박정기씨와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는 구속되고 회원들 몇명은 수배당했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88
1991년 6월3일 문교부 장관 출신의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가 한국외대에 강연하러 갔다가 학생들이 던진 달걀과 밀가루를 뒤집어썼다. 이 장면은 언론에 고스란히 보도되었고, 노태우 정권은 공안정국 공세를 강화하며 민주세력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6월8일 인천에서 삼미켄하노동조합 홍보부장 이진희에 이어 6월15일엔 인천 공성교통의 택시운전사 석광주가 분신했다. ‘5월 투쟁’은 6월29일 명동성당에서 농성해온 서준식 등이 수감되면서 막을 내렸다.

‘5월 투쟁’ 기간에 희생된 생명은 모두 13명이었다. 열사들의 장례위원장을 맡았다는 이유로 문익환 유가협 후원회장은 또다시 옥에 갇혔다. 한울삶엔 새로운 얼굴들이 함께했다. 강민조(강경대의 아버지), 김종분(김귀정의 어머니) 등 13명 열사의 유가족들은 대부분 유가협에 가입했다. 감당키 어려운 비극을 겪는 동안 그네들에게 맨 먼저 다가와주고 마지막까지 고통을 함께 나눈 이들이 유가협이었다.

7월4일, 당시 덕수궁 옆에 있던 서울서부지원에서 강경대 치사사건의 주범인 전경들에 대한 1차 공판이 열렸다. 박정기와 유가협 회원들은 방청객으로 참여했다. 이날 한울삶을 나설 때 간사 박래군과 정미경은 회원들에게 ‘자제’할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워낙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깊은 유가족들이 법정에서 강경대를 쇠파이프로 때려죽인 전경들을 보고 흥분할까봐 우려한 까닭이다.

재판정은 기자들로 가득했다. 이날 재판엔 사당의원(원장 김록호)에 입원중이던 오영자(박선영의 어머니)도 목발을 짚고 찾아왔다. 그는 5월 투쟁 기간 여러 차례 백골단에게 두들겨맞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다른 유가족들도 온몸에 든 멍이 아직 가시지 않았을 때였다.

피고 쪽 변호사가 변론을 시작했다. 그는 전경들에게 물었다.

“강경대씨가 화염병을 던진 걸 봤습니까?”

“강경대씨가 화염병을 던지고 도망치려 했습니까?”

경찰 관계자와 변호인은 강경대가 시위에서 화염병을 던진 점을 부각했다. 정당한 시위대 해산 과정에서 발생한 우연한 사고로 몰아가고 있었다. 경찰들이 한결같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강경대의 누나 강선미가 신발을 벗어 판사들이 앉아 있는 법대를 향해 던졌다.

“이따위 엉터리 재판 당장 중지하시오!”

“경대는 화염병을 들고 있지 않았습니다.”

유가협 회원들도 일제히 일어나 항의했다.

“살인자를 옹호하지 말라.”

“진상을 왜곡하지 말라.”

유가협 회원들은 교도관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판사들이 앉아 있는 법대를 향해 뛰쳐나갔다. 법대를 점거한 뒤엔 명패를 내던지고 집기를 부쉈다. 이소선은 태극기를 들어 내던졌고, 오영자는 한쪽 목발을 들어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법대 위의 법전과 사건 기록부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법정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박정기는 분노한 회원들을 말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판사는 휴정을 선언했다. 재판은 오후 4시에 다시 열렸다.

재판이 끝난 뒤 박정기는 이오순(송광영의 어머니)·오영자 등과 함께 곧장 광주로 향했다. 이튿날 망월동 묘역에서 열린 이한열 4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뒤 부산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오후였다. 현관문을 열자 처제가 낯빛이 파랗게 질린 채 말했다.

“아니, 어찌 여기를 온다요? 지금 을매나 난리인데 이러고 돌아다녀요?”

“무신 소린교?”

“티브이에서 소란 피우는 모습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야단났어요.”

서울지검은 법원에서 소동을 일으킨 유가협 회원들을 엄단하겠다며 주범으로 박정기와 강민조를 지목했다. 그리고 이오순·오영자와 민가협 회원 이중주를 구속하겠다고 발표했다.

박정기는 급힌 부산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심야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며 그는 전날 법정에서 벌어진 일을 생각했다. 그가 한 일이라곤 자신을 제지하던 교도관에게 합죽선을 휘두른 일이 전부였다. 이마저 휴정한 뒤 벌어진 일이었고 그는 곧바로 찰과상을 입은 교도관에게 사과했다. 소동을 부린 일도 없고, 오히려 어머니들을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수배를 피할 것인가, 아니면 조사에 응할 것인가? 박정기는 5년 전 서울 성동구치소에 수감됐던 아들 종철을 만나러 다니던 날들이 떠올랐다. 저녁 근무를 마치고 완행기차를 타면 새벽녘 서울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구치소에 도착해 맨 먼저 면회를 기다렸다. 일주일에 두세 번 아들을 만났다. 그와 아내는 아들이 하루라도 빨리 나오길 바라며 부처님께 기도했다. 그땐 기껏 반성문 한 장 쓰는 일이 무슨 대수라고, 그리 고집을 부리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반성문을 쓰라는 말에 버럭 화를 내던 철이가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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