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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레고놀이하듯 철자 조립해 봐!”

등록 2012-06-11 13:41

이번 대회 우승자 스닉다양과 한국 대표 서지원양, 참관 기회를 얻은 한국 예선전 수상자들이 인사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한 모습.  윤선생영어교실 제공
이번 대회 우승자 스닉다양과 한국 대표 서지원양, 참관 기회를 얻은 한국 예선전 수상자들이 인사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한 모습. 윤선생영어교실 제공
‘2012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비’ 현장을 가다
한국 대표 서지원양 선전했지만 준결승 진출은 못해
어원을 알면 언어는 물론 세계의 문화도 접할 수 있어
손으로 팔뚝에 철자를 열심히 적는 아이, 철자를 하나하나 말할 때마다 박수를 치며 답하는 아이, 머리를 잡아 쥐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철자를 맞히는 아이…. 그야말로 ‘철자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현장의 모습이다.

‘2012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비’(Scripps National Spelling Bee 이하 SNSB) 대회가 미국 현지시각으로 5월29일부터 6월1일까지 워싱턴 디시(D.C)에서 열렸다. SNSB는 스크립스사가 매년 개최하는 대회다. 출제자가 출제 단어를 발음하면 이를 듣고 참가자가 철자를 기록하는 지필시험과 또박또박 발음하는 말하기시험으로 진행된다. 말하기시험의 경우, 라운드마다 철자를 바르게 말한 정답자는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고 오답자는 탈락하며 최종까지 남은 참가자가 우승자가 된다. 특히 결승전은 <이에스피엔>(ESPN) 채널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다.

참가자들은 출제자의 발음을 듣고 단어의 뜻과 어원, 예문 등을 물어보고 자신의 발음이 맞는지 출제자에게 확인할 수 있다. 쉬운 단어부터 그리스어, 프랑스어, 라틴어, 아프리카어 등 다양한 어원의 낯선 단어들이 출제된다. 이 때문에 단순히 암기를 해서는 끝까지 살아남기가 힘들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더라도 출제자의 발음을 듣고 자신의 발음과 비교해가며 단어를 유추해내야 한다.

이번 대회는 미국 각 주 출신 외 10여개국 278명이 참가한 가운데 1라운드 지필고사에 이어 2, 3라운드 말하기 시험으로 진행됐다. 다양한 국가에서 출전한 만큼 참가자도 각양각색이었다. 옆에 앉은 참가자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참가자,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얘기하거나 반대로 자신 있는 목소리로 여유 있게 대답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한국 대표 서지원양이 말하기시험에서 출제자의 단어를 듣고 철자를 발음하고 있다. 윤선생영어교실 제공
한국 대표 서지원양이 말하기시험에서 출제자의 단어를 듣고 철자를 발음하고 있다. 윤선생영어교실 제공
한국 대표로는 서지원(화홍중 3)양이 윤선생영어교실의 후원을 받아 올해로 4번째로 출전했다. 이번 대회 최연장자로 마지막 우승 도전이었던 그는 작년에 1점차로 준결승에 오르지 못했던 터라 기대를 한껏 높였다. 서양은 예선 2, 3라운드에서 ‘eutaxy(질서·규율)’, ‘Dimetrodon(디메트로돈-공룡의 일종)’이라는 까다로운 단어를 모두 맞히며 선전했으나 안타깝게도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지원 양은 “말하기 시험에 나온 단어들은 원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무조건 어원이나 정의 등을 물어봐야 한다. 질문을 하면서 확인을 하고 풀어야 정확하다. 이번 시험은 지필고사도 어려웠고 애들 수준은 전과 비슷한데 문제는 그때보다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 처음 참가한 재 카네티(10)는 경쟁하는 걸 좋아해서 SNSB에 도전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를 둔 그는 준결승에 진출한 최연소자였다. 경쟁을 즐겨서인지 대회 내내 당차고 밝은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그는 평소 많은 시간을 투자해 공부한다며 “단어 맞히기 게임도 많이 하고 단어리스트를 보며 사전을 찾아보고 공부한다. 평소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찾아본다”고 말했다.

준결승에 진출한 50명의 참가자가 6라운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총 9명이 결승에 진출해 우승을 겨뤘다.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어려운 단어들이 출제됐고 탈락자도 속출했다. 아이들은 예기치 못한 출제 단어에 당황해하거나 2분의 제한시간을 모두 채우며 고전했다. 하지만 몰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출제자의 발음과 자신의 발음을 비교해가며 몇 번이고 고쳐서 발음해보고 신중히 대답했다. 틀린 단어를 이야기해서 떨어지는 참가자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탈락자가 나오자 남은 참가자와 모든 관객이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쳐주며 격려했다.

이번 대회의 최종 우승은 인도계 스닉다 낸더파티(14)양에게 돌아갔다. 스닉다양은 역시 인도계인 스투티 미쉬라(14)양과 12라운드까지 팽팽한 접전을 벌인 끝에 ‘guetapens(덫·올가미)’라는 챔피언 단어를 맞히며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인도계 출전자가 5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게 됐다. 스닉다양은 우승소감을 묻자 “기적”이라고 답하며 “최선을 다해 단어를 맞힌 것뿐 우승하게 될 줄은 생각 못했다”고 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의 메인코치라며 아버지가 준비한 단어집을 가지고 평일엔 6시간, 주말에는 10~11시간 동안 공부했다고 밝혔다. 또한 “평소 책을 많이 읽는데 단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 읽으면서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찾아보고 특히 영어의 어원을 공부하면서 전세계 문화까지 접할 수 있어서 좋다”고 얘기했다.

스크립스사에서는 이 대회가 암기가 목적이 아니라고 했는데, 과연 외우지 않고 어원이나 발음으로만 단어 유추가 가능할까. 이에 대해 출제자인 자크 베일리 박사는 “출제 단어의 수가 워낙 많아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암기가 전혀 필요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단어의 패턴과 어원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단어를 알 수 있다”며 “이미 알고 있는 단어에서 중복되는 패턴을 모아서 공부해야 한다. 준결승, 결승 때는 예외적인 단어가 나오니까 그런 단어까지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철자를 연결해 단어를 만드는 게 “레고를 맞추듯 부품을 알고 거기서 맞춰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이 단어가 언제 어떻게 영어가 됐는지 어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가령, ‘tele-’란 단어는 전달한다는 의미가 있고 여기서 파생되는 단어들 ‘television’, ‘telephone’ 등 쉬운 단어부터 시작해서 단어를 그냥 보고 넘어가지 말고 분석하는 습관을 가지는 게 좋다. 또 어원과 연결 지어서 외우면 더 쉽게, 많은 단어를 알 수 있게 된다. 보통 그리스어는 연결해주는 철자가 ‘o’가 많고 라틴어는 ‘i’가 많다. 단어의 어원을 공부하며 언어의 폭도 넓히고 나아가 다른 나라의 문화, 역사까지 배우며 세상에 대한 눈이 넓어질 수 있는 기회도 되는 것이다.

한편, 스크립스사는 이번 대회가 미국에서 진행하는 마지막 대회라고 밝혔다. 내년부터는 국제대회로 성격이 바뀌어 워싱턴이 아닌 전세계 국가를 돌며 치러질 계획이다. 각 국가에서 예선을 치러 3명의 대표를 뽑은 뒤 팀별 대항으로 진행되며 60여개국이 참가할 예정이다.

워싱턴/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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