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공부는 문제해결 활동이다

등록 2012-07-09 11:23수정 2012-07-09 11:25

이한 변호사의 제대로 공부법
법을 공부하지 않은 어떤 사람이 지금 멋진 사무실에 앉아 있다. 이 사무실에는 현재까지 한국에서 출간된 모든 법 서적과 논문, 판례집과 법령집이 구비되어 있고 따로 필요한 것은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제 이 사무실에 누군가 들어와서 복잡한 법률 상담을 받고 싶어 한다. 상담을 해줄 수가 있는가? 없다. 물론 관련된 모든 정보를 즉시 복사해서 늘어놓는 일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수행(performance)의 능력은 없다. 수영 교본에 실린 내용을 줄줄 암송하지만 수영은 못하는 경우와 같다.

공부란 바로 수행하는 법, 즉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란 퀴즈가 아니다. 그래서 ‘동떨어진 하나의 질문’에 ‘동떨어진 하나의 답’을 대응시켜 암송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한글을 발명한 조선시대 왕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살펴보자. ‘세종대왕’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지목하면 끝난다. 그리고 참고서에서 이 답을 암송하여 종이에 쏟아내는 방식은 ‘고구려 왕 중에 가장 넓은 영토 확장을 이룩한 왕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인간의 삶과 세계의 작동 원리에 관한 어떤 규칙도, 규칙을 적용하는 능력도 깔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경제가 어려울 때 부자들 세금을 깎아주면 경기가 살아나는가?”라는 질문은 어떤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경기가 좋았다가 나빠졌다 다시 좋아지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불경기 때 국가의 재정정책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을 통계적으로 검증하는 방식도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적용된 규칙들은 “그리스의 경제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정부가 돈을 쓰지 말고, 기업이 사람들을 대량으로 해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우리의 흥미를 강하게 끄는 인간의 삶과 세계의 작동에 관련된 질문인 것이다.

따라서 공부란, 지식을 검색하고 확인하거나 머리에 그대로 담아놓는 일이 아니다. 어떤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는 것을 준비하는 활동은 ‘시험준비 활동’이나 ‘자격취득 활동’이라고 달리 표현해야 마땅하다. 그런 활동들은 한 개인의 인생에서 필요할 때가 있고, 사회적으로도 유용한 기능을 가지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을 공부의 대표주자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점을 명심하면 다음 질문에 대한 답도 분명해진다.

“사람은 왜 공부하는가?” 풀고 싶은 문제가 있는데, 그걸 풀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는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지식의 공백’에서 발생한다.

훌륭한 교사는 학생을 도발시키는 ‘지식의 공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작은 문제도 강렬한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공부를 하다 보면, 문제가 계속 수준을 높이며 변하게 되어 큰 문제도 다룰 수 있게 된다. 인간과 세상에 관한 원리들은 표면적인 것부터 심층적인 것까지 서로 연결되면서 구성되기 때문이다.

‘오토바이의 엔진이 계속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수리 지침도 엔진의 작동원리를 깔고 있다. 그리고 오토바이 엔진의 작동원리는 동력기계의 작동원리 일반에 디디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에너지 변환의 원리 일반을 밑바탕에 두고 있다. 이렇게 연결된 원리들을 이해하고 익히거나 만들어내며 조금씩 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를 경험하는 것, 이것을 공부의 기본 구조로 봐야 한다. <이것이 공부다>·<너의 의무를 묻는다> 저자

<한겨레 인기기사>

‘종북몰이’ 군변단체 우후죽순…MB정부 4년새 국고지원 8.5배
도종환 시 ‘교과서 퇴출’ 위기…국회의원이라서?
‘과부제조기’ 배치에 들끓는 오키나와
“책 던지며 나가라던 엄마, 이젠 존댓말 써요”
[화보] 문재인, 폼은 야구선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