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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텃밭 가꾸며 돌봄과 배려 몸으로 익혀요~

등록 2012-07-09 11:27

지난 5월22일 서울사당초등학교 학생들이 텃밭에 여러 가지 모종을 심고 있다.  사당초등학교 제공
지난 5월22일 서울사당초등학교 학생들이 텃밭에 여러 가지 모종을 심고 있다. 사당초등학교 제공
즐거운 학교에선 폭력도 설 자리 없어
생태교육 확산 위해 교사연수 필요해
“가지야, 지금은 한 개밖에 없지만 나중에 크면 더 많아질 거야. 더 무럭무럭 자라거라.” 김승태(서울 사당초2)군은 “가지가 한 개밖에 달려 있지 않은 가지나무가 불쌍하다”며 ‘가지나무가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관찰일지에 편지 형식으로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지난 2일 아직 첫 수업이 시작되기 전인 오전 8시45분께 서울 사당초등학교 텃밭에 모인 아이들의 손길은 잡초를 뽑느라고 분주했다. 보통 1교시가 시작하기 전까지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물도 주고 잡초도 뽑곤 하는데, 이날은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린 뒤라 물을 주진 않고 잡초만 뽑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일찍 등교해 텃밭을 돌본다는 윤성주(초4)양은 “학교에서 처음으로 식물을 심고 물을 줘 봤다”며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키우면 뿌듯하고, 내가 키워서 그런지 정이 많이 간다”고 밝혔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손을 씻고 교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 2학년5반 아이들이 텃밭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이용해 텃밭을 돌보고 관찰일지도 쓰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은 텃밭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학년에 배당된 텃밭 앞에 앉아 관찰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2학년쯤 되면 야외활동 시간에 웃고 장난치고 떠들며 뛰어다니기 십상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예상과 달리 차분히 앉아 진지하고 꼼꼼하게 식물을 살피고 있었다. 밭이랑 사이로 걸을 때도 혹시나 식물을 밟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조심 걸어 다녔다. 전옥출 교감은 “아이들은 농작물을 잘 기를 수 있도록 스스로 규칙을 만든다”며 “뛰어다니면 식물이 밟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텃밭에서는 뛰지 않기로 서로 규칙을 정해놨다”고 설명했다.

사당초등학교는 지난 5월에 서울시교육청과 관악구청의 지원을 받아 체육관 뒤 100여평의 땅을 텃밭(사당 한우리 농장)으로 조성했다. 원하는 작물을 학년별로 신청받아 키우기 시작해 현재는 옥수수, 땅콩, 상추, 가지, 방울토마토, 깻잎 등 20여종을 재배하고 있다. 또 텃밭에서 나온 채소를 급식 때 나눠주고 있어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맛보는 즐거움도 누리고 있었다. 상추와 가지를 먹어봤다는 최민우(초4)군은 “처음엔 가지가 못생겨서 별로 맛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재배해 먹으니까 엄마가 시장에서 사와 만들어준 것보다 더 맛있었다”고 말했다.

전 교감은 “텃밭 가꾸기는 생명을 살리는 교육이기 때문에 인성 교육에 좋다”며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기 때문에 자율성도 더불어 길러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2학년5반 담임인 김영민 교사는 “아침에 물을 주고 수시로 커가는 걸 지켜보기 때문에 아이들은 돌봄과 배려를 몸으로 익힌다”며 “특히 상추가 아이 한 명당 한 포기씩 배당돼 있어 각별하게 애정을 쏟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텃밭 일구기가 교육적으로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쉬는 시간이 되자 몇몇 아이가 텃밭으로 달려가 작물들을 유심히 살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농작물의 종류에 따라 키우는 방식이 달라 어려움도 있었다. 특히 기르던 고구마가 썩었을 땐 아이들이 무척 속상해했다. 윤상중 교장은 “전문 기술은 없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며 계속 텃밭을 일구고 있다”며 “생태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텃밭 관련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윤 교장은 “생태 감수성을 키우는 텃밭이 널리 보급되고 꾸준히 관리되기 위해서 교사 연수를 꼭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사당초등학교는 학교 터가 넓어 텃밭을 따로 일구기에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도심에 있는 초등학교 가운데에는 텃밭에 할애할 땅이 마땅치 않아 실행하지 못하는 학교가 많다. 서울 한복판인 장충동에 위치한 충무초등학교는 그런 예였다. 그러나 이재관 교장의 결단으로 지난해 학교 텃밭(충무꿈동산)이 열매를 맺었다. 이 교장은 “잡초 우거진 잔디밭을 과감히 엎어서 밭으로 만들었다”며 “잔디밭 가운데 있던 수십년 된 향나무 두 그루도 그늘이 지면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는 생각에 과감히 잘라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 교장은 “자투리땅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며 “학교를 돌아다니며 빈 공간만 보이면 ‘어떤 작물을 심는 게 좋을까’란 생각을 항상 한다”고 말했다.

실제 충무초등학교 곳곳에서 온갖 작물과 야생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교 둘레 담장과 운동장 사이 공간에 토란, 상추, 까치콩, 참깨, 우엉, 당근, 완두콩, 부추, 고추, 가지, 옥수수, 호박 등이 자라는 텃밭이 조성돼 있었고, 학교 건물 주위로는 울금, 천궁, 달리아, 당귀, 야콘 등 수십 종의 야생화가 보였다. 마치 학교 전체가 텃밭 같았다. 이 교장은 “처음엔 ‘학교를 예쁘게 만들고 아이들에게 볼거리를 주고, 체험학습도 시켜야겠다’란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보살피고 가꾸는 활동이 인성 교육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 보살피고 함께 가꾸는 분위기가 학교 안에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그 근거로 이 교장은 “실제 아이들이 텃밭을 소재로 대화하는 경우가 많고, 누군가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너도나도 도움을 주려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며 “잎사귀 하나라도 함부로 따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생명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보게 된다”고 밝혔다. 이하경(충무초4)양의 관찰일지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양은 한 방송사에서 텃밭 취재를 나와 아이 3명에게 강낭콩에 물을 줘 보라고 시키며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 식물이 물을 맞으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강낭콩아 미안해’라고 사과하고 싶다”고 썼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이 교장은 지난 4월26일 농림수산식품부가 주최하고 ㈔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가 주관한 ‘식생활교육을 통한 학교폭력예방 모색’을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하기도 했다. 그는 “학교생활이 재미있어야 싸우지 않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겨 학교폭력이 예방된다”며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교실에 앉아 수업을 받기보다는 나가서 활동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학교생활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텃밭 가꾸기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학교 안을 안내하며 “웬만한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식물을 키우기 쉽지 않다”며 “하루에 한 번씩 자라는 상황을 보고 가꾸고 텃밭과 더불어 하루를 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나 식물이나 들이는 정성만큼 자란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았다.

정종법 기자 mizzle@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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