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한 부모들의 노력은 대부분 실패한다.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를 더 많이 한 만큼 성공이 아니라 실패 확률이 높아지니 묘한 일이다. 실패한 부모들은 보통 아이들을 원망하지만 한참 잘못 짚었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바로 아이의 공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주변을 헤매니 성공할 턱이 없지 않은가.
■ 부모들의, 정말 다른 반응과 결말
갑자기 아이의 수학 성적이 크게 떨어졌다. 과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먼저 아이를 존중하는 반응부터 알아보자. 우선 아이의 기분을 잘 살펴야 한다. 성적이 떨어져 의기소침해 있는 아이의 기분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면 부모의 반응이 달라진다. 화가 나기보다는 일단 아이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성적 하락이라는 결과보다는 그 배경과 원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 성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러저러한 사정을 파악하는 만큼, 우울했던 부모 마음도 밝아진다. 희망이 생기고 대안도 떠오르기 마련이다. 결국 성적이 떨어진 아이를 부모는 위로하고 그런 부모가 고마워서라도 아이는 다음 시험에서 만회하겠다는 의욕을 다진다. 이렇듯 아이를 존중하는 부모의 반응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
그렇다면 정반대로 부모의 감정을 앞세우는 반응이 어떤 결말을 낳게 되는지 알아보자. 아이보다는 자신의 기분에 쉽게 사로잡히는 부모의 감정은 정말 엉망이 된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지금까지 자신이 쏟은 노력까지 생각하면 아이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단 이렇게 부모 마음이 부정적으로 기울면 아이의 감정이나 기분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그저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 마음을 짓밟고 행복을 앗아간 ‘원수’ 같은 존재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왜 성적이 떨어졌는지 생각해볼 겨를도 관심도 없는 부모는 이내 부정적인 예측에 빠져든다. ‘이 성적으로 인서울이나 하겠어?’ 우울한 기분에 불안한 마음까지 겹치면 아이를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미는 상황이 연출된다. 결국 부모는 아이에게 책임 추궁을 하고, 처음에는 죄인처럼 묵묵히 고개 숙였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빳빳이 고개를 드는 순간 비극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오로지 자신의 생각과 감정만을 앞세운 부모의 정서폭력에 시달리다가 결국 복수를 꿈꾸게 되는 아이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복수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아무리 진지하게 비극을 예고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여전히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순수한 의도만을 강변하는 부모들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 시대적 착각과 재해석
아이의 처지와 감정을 존중하면 희극이요 부모의 감정과 욕심을 앞세우면 비극이라고 했다. 자신을 존중하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보통 상승작용을 일으켜 부모의 정성과 노력이 아이의 잠재력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반면 자신을 무시하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는 부모의 관심과 투자가 아이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까지는 동의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이 중요하다는, 이 시대의 통념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부모의 경제력은 아이를 존중하기보다는 부모가 욕심을 부리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부모의 정보력은 아이의 감정보다는 부모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무기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사실도 숨겨진다. 경제력과 정보력을 무기로 아이를 가정 밖 경쟁의 장으로 내몬 부모들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아이들은 경제력이 있는 부모보다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존중하는 부모를 좋아한다. 정보력이 뛰어난 부모보다 자신들의 처지와 이야기에 공감하는 부모들을 훨씬 좋아한다. 부모가 정보력을 발휘하여 사교육 기관을 찾고 경제력으로 구매하여 아이에게 억지 소비를 강요하는 부모 앞에서 요즘 아이들은 절망한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아니라 아이 혼자 세상을 살아간다면 모르겠다. 그렇다면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이 아이에게 경쟁에 유리한 환경과 조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살아간다.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이 아이와의 관계에서 보통 어떻게 작용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경제력과 정보력이 있기에 아이를 무시하기 쉬운 부모의 정성과 노력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부모력의 핵심은 경제력과 정보력이 아니다. 그저 유리한 환경일 뿐이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나 할까. 유리한 환경에서 아이들의 공부의욕은 시들어간다. 부모력의 핵심은 분명 아이를 존중하는 마음, 아이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감력’이다.
■ 부모로서의 약속과 부모의 성장
경제력과 정보력이 뛰어난 부모, 그러나 아이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불안감과 욕심을 앞세우는 부모를 둔 아이들 열 명의 심층 인터뷰를 여과 없이 방송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반향이 일어날 것이다. 자녀교육의 성패는 바로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와 그런 태도를 결정하는 부모의 인격에 있다. 그렇다고 부모의 인격 개조를 해법으로 내놓은 것은 결코 아니다. 부모로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그간 아이 중심이 아니라 부모 중심으로, 부모권력을 앞세워 아이를 지배해온 과거를 반성하고 가정의 민주화를 선언하기 바란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신뢰한다는 대목을 선언에 포함시키자.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도 최소한 부모만큼은 희망을 잃지 않고 아이를 지지하고 격려할 것이라고 약속하자. 아무리 사소한 감정이라도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리라 맹세하자. 부모가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는 일, 이미 오랜 습관으로 굳어진,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부모로서의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쉽고 어렵고를 떠나 부모와 아이 사이의 긍정적인 관계야말로 가장 중요한 성공의 핵심변수임이 분명하다면 다른 선택이 없지 않은가.
부모는 가만히 있고 아이만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은 이제 깨끗이 포기하자. 돈만 내면 부모의 마음에 들도록 아이를 변화시켜주겠다는 온갖 제안에도 더는 현혹되지 말자. 부모와 아이 사이를 새롭게 정의하고, 선언하고, 약속하는 것을 미루지 말자. 그리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면 되지 않겠는가. 완벽한 변신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하겠다는 약속 또한 아이들에게 하면 되지 않겠는가.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부족하지만 노력할 것을 약속하는 부모를 얕잡아볼 아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가 간절히 희망하는 부모의 모습을 약속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라면, 비록 경제력과 정보력은 부족하더라도 개천의 용이 되는 아이를 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모의 약속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부모 자신의 삶을 좀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촉진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자. 따로 떨어진 아이 교육, 부모 교육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를 개선하고 강화시키는 부모와 아이의 동반 성장이라는 관점이 절실하다.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 <박재원의 부모효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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