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학교폭력 가해자였던 이들은 “사춘기 시절에는 누구나 방황할 수 있다. 다만, 물리적인 폭력만큼은 안 된다”고 강조한다. 최지수(춘천여고) 학생수습기자
나는 한때 가해자였다
외로움·소외감에서 비롯된 방황
혼내더라도 관심줬던 교사 생각나
외로움·소외감에서 비롯된 방황
혼내더라도 관심줬던 교사 생각나
경기도 용인시 한 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김아무개씨한테는 야무진 목표가 있다. 지금 전공하는 디자인 분야에서 성공해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김씨는 실업계고를 나와 대학 진학을 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힘들 때마다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 장학재단은 김씨가 받았던 도움을 누군가한테 되돌려주고 싶다는 뜻을 담은 꿈이다. 목표가 생기기까지는 꽤 많은 곡절이 있었다.
김씨는 한때 ‘좀 노는’ 학생이었다. 중학교 1학년. 동대문구에서 노원구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른바 ‘물이 좋지 않은’ 학교로의 전학이었다. 좀 논다 싶은 친구들이 텃세를 부렸고, 그들과 싸우면서 정이 들었다. 때론 서클이라 불리는 그룹들 사이의 갈등으로 폭력싸움도 벌어졌다. 김씨한테 폭행을 당한 친구들은 사실 김씨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친구들이었다. 모여 놀았던 이유는 외롭기 때문이었다. 그룹에 속한 친구들은 가정 형편도 비슷했고, 마음 둘 곳도 마땅치 않았다. 남학생들이 서열을 따졌다면 김씨처럼 여학생들은 평등한 관계로 몰려다니면서 서로가 서로한테 기댔다.
변화는 지역사회교육전문가 고정원씨를 만나면서 찾아왔다. 학교 교육복지실에 있던 고씨는 특별한 어른이었다. 어느 날 김씨한테서 담배 냄새가 나자 구강청정제를 내밀었다. “가그린 하고 들어가라. 다른 사람들이 입냄새 맡으면 얼마나 싫겠냐.” 친구들과 가출을 해도 집에 들어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걱정하고 있을 부모님한테 연락을 해서 아이의 마음상태를 이해시켰다.
“‘선생님 노상 까고(길에서 술먹는 행위) 싶어요’라고 말하니까 나와서 사주신 적도 있었어요.”
김씨와 친구들한테 필요했던 건 ‘관심’이었다. 마음을 열어주는 누군가가 생기니 차츰 변화했다. 흡연과 음주, 폭력이 눈에 띄게 줄었다. 고민이 생기면 선생님한테 도움을 청했다. 잘한 일이 있으면 달려가 칭찬을 받고 싶어졌다. 선생님은 아이들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막연히 뭔가 하고 싶다는 얘기를 던지면 메모를 해가며 뭐부터 하면 좋을지 계획을 세우도록 도와줬다. ‘내가 말썽을 피우면 선생님이 실망하고, 곤란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나쁜 짓을 줄여갔다.
중3 때 담임교사 역시 김씨한테 관심이 많았다. 유독 김씨한테만 엄격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마침 회장도 맡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책임이 주어지자 스스로 변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혼내셨던 것도 관심의 일부였던 것 같아요. 무관심한 선생님들은 저를 거들떠도 안 봤거든요.”
김씨는 방황하는 학생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가장 후회하는 건 욱하는 마음에 친구를 때렸던 겁니다. 폭력은 맞는 사람에겐 수치심을 주지만 때리는 사람에겐 평생의 죄책감을 주거든요.”
“잘못한 사람한테, 싫은 사람한테는 누구나 때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제가 당해보니까 알겠더군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부산에 사는 최아무개(20)씨는 방황했던 학창시절에 대해 질문하자 겸연쩍은 듯 이렇게 답했다. 초등 6학년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다른 친구들과 자신의 뒷담화를 나누는 걸 듣게 됐다. 배신감에 화가 나 친구를 때렸다. 방황이 시작됐다. 이른바 ‘잘나가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녔다. 돈이 필요하면 ‘삥을 뜯었다’(돈이나 물건을 강요하는 행위).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들이 보이면 때리는 일이 잦아졌다.
최씨가 친구들한테 폭력을 행사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아토피가 심했다. 덩치가 컸다.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 위축된 마음을 다른 사람을 때리며 풀었다. “방어하고 싶었던 거죠. 다른 친구를 험담하고 때리면 내가 아닌 그 친구한테 관심이 쏠리니까 그런 행동을 했던 것 같아요.”
중1. 전학을 갔다. 새로운 학교에는 아는 친구가 없었지만 소문이 돌아 모두 최씨를 외면했다. 계속해서 움츠러들었다. 그러던 중 한 여학생과 시비가 붙었다. 시비는 큰 싸움으로 번졌다. 학교에선 처벌의 의미로 교내 봉사활동을 시키거나 정학, 심하게는 전학을 보냈다. 한번 낙인이 찍히면 학교생활이 힘들었다.
“명백히 그 친구의 잘못이었지만 나쁜 이미지가 쌓여 있었기 때문에 죄를 뒤집어쓰게 됐어요. 그 친구의 오빠를 비롯해서 학교 선배들의 폭행과 괴롭힘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결국에는 엄마의 추천에 따라 대안학교로 갔습니다.”
대안학교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처벌에 대해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처벌이 아닌 ‘일’을 준다는 점이었다.
“한 남학생과 욕설을 퍼붓고 주먹을 휘두르는 등 싸움을 벌인 적이 있었어요. 며칠 뒤 합당한 ‘일’을 받았습니다. 저는 싸운 학생에 대한 관찰일지를 썼어요. 당시 조용한 에이디에이치디(ADHD·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였던 남학생을 이해해보자는 뜻에서 주의력 결핍과 관련한 책도 읽게 했죠. 그 친구한테는 농촌봉사활동에 참여하라는 벌이 주어졌습니다.”
최씨는 “이전 학교에서도 담임교사나 상담교사 등이 학교폭력 가해자한테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했지만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는 교내 봉사활동을 하듯이 “그냥 잘못을 했으니 처벌을 받아라”라는 식의 벌이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아이들은 ‘그냥 잘못을 했으니 몸으로 때우면 된다’는 식으로 처벌을 받았다”고 했다. “대안학교 처벌이 의미 있었던 이유는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근본적으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일단,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적합한 일을 시키니까 일을 할 때도 처벌을 받을 때처럼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송재윤(안양 부흥고) 최주희(김해 대청고) 학생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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