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를 보면 등장인물들이 무공을 연마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지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잘못된 방법으로 수련해서 몸이 상하는 것이다. 공부에도 주화입마가 있다. 첫 번째 주화입마는 반복 훈련을 하지 않아 생긴다. 단계를 밟아 나아가지 못하고 ‘어렵다’는 느낌만 가득 경험하는 것이다. 두 번째 주화입마는 배운 것을 제대로 매듭짓지 못해서 발생한다. 그러면 접한 것은 많아 박식하다는 평은 듣는데 문제 해결에 아는 것을 체계적으로 동원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능동적으로 문제 해결에 착수할 엄두를 못 낸다. 이 두 번째 주화입마를 피하기 위해선 ‘매듭짓기’가 필요하다.
인간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어서 모든 것을 다 외우지 못한다. 세밀한 내용까지 척척 머리에서 불러올 수 있는 지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 당연히 외부의 자료를 자유롭게 참조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필요한 자료들을 처음부터 다시 훑어나가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첫째로 실마리를 제대로 잡지 못해서 시간 낭비를 하게 된다. 자동차 정비공이 A라는 희귀한 문제를 가진 차를 고생해서 고쳤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이 정비공에게 A+B라는 문제를 가진 차를 고쳐야 하는 상황이 왔다. 정비공이 A문제 해결의 경험을 제대로 정리해 두었다면, 그는 그 자료를 찾아보고 이 문제의 일부분이 A문제의 구조와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 B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해두지 않았다면? 그는 새로운 문제가 A+B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조차 파악하지 못할지 모른다.
둘째로 나뭇잎에 정신이 팔려 숲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향이 생긴다. 문제를 풀 때 사람은 ‘작업 기억’을 가동해서 생각한다. 그런데 작업 기억에서 한 번에 올려놓을 수 있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보통 일곱 가지가 한계라고 한다. 일곱 자리가 넘는 휴대전화 번호를 수첩에서 찾고 나서 기억에 의존해 번호를 누르려고 하는 짧은 사이에 “뭐…뭐였더라?”고 했던 경험을 생각해보라. 그러나 일곱 개의 단순 정보가 아니라, 일곱 개의 꾸러미를 대신 올려놓는다면? 매우 복잡한 문제도 고민할 수 있게 된다. 꾸러미 안에 들어 있는 세부적인 내용이 필요할 때는, 정리해둔 것을 언제든 간단히 펼쳐 보면 되니 생각을 핵심적인 부분에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기계적으로 출현하지 않는다. 실마리를 잡고 끈질기고 깊이 있게 천착해야 나올 수 있다. 필요한 규칙들을 동원하고 새로 규칙을 만들어서 밀고 나가 봐야 한다. 이렇게 이미 익힌 지식에서 아이디어의 단초를 제대로 끌어내려면, 배운 것을 어떤 형식으로든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시험 기간이 끝나면 곧 잊어버릴 세부 정보를 달달 외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해 배운 바를 ‘장악’한 게 아니다. 진정한 장악은, 배우고 익힌 것을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활용할 도구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렇게 ‘도구’로 변모시킨 지식은 그 세부내용이 아니라 핵심 구조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반면에 매번 필요한 규칙과 정보를 자신에게 유용한 형태로 다시 묶어야 한다면, 문제 해결에 착수하는 일 자체가 당연히 엄청나게 번거롭게 느껴질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배우고 익힌 것을 산만하게 흩어진 정보 조각이 아니라, 문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도구로 곁에 두려면, 평상시에 ‘매듭을 짓는’ 습관이 들어야 한다.
이한 <이것이 공부다>·<너의 의무를 묻는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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