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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아시아 3개국 어린이, 그림책 공동저자로 손잡다

등록 2012-08-27 14:07

‘빛’을 주제로 그린 그림들을 놓고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학생들의 모습.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제공
‘빛’을 주제로 그린 그림들을 놓고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학생들의 모습.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제공
한·일·중 어린이 동화교류 2012
‘빛’ 주제로 그림 한 장씩 그려 한 권의 책 완성
스토리 엮는 과정에서 소통, 배려의 의미 배워
“자, 제목에 대한 다양한 안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 나온 안을 놓고 자기 생각을 말해볼까요?”

그림책 작가 정유정씨가 후보로 올라온 네 개의 제목을 적은 메모지를 들어 보였다. 학생 열 명이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서울 덕의초 5년 박규민양이 먼저 손을 들었다.

“‘빛의 힘’이란 제목은 지루한 과학책 느낌이 듭니다. 저는 ‘큰손이의 손 줄이기 대모험’을 추천합니다. 제목에서 판타지 느낌이 들어서 좋습니다.”

중국 시안 진위안 소학교 6년 린천위양도 질세라 손을 들었다. “맞아요. ‘빛의 힘’이 과학책처럼 느껴진다는 데 저도 동의합니다. 근데 ‘큰손이의 손 줄이기 대모험’이라고 하면 저희가 쓴 이야기의 내용이 제목에서 다 드러날 것 같습니다.”

10분쯤 지났을까? 열 명의 학생으로 이뤄진 이 조에서는 박수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은 회의 끝에 ‘큰손이의 대모험’을 결정했다.

한국, 일본, 중국의 초등학생 10명으로 이뤄진 이 조의 이름은 케이제이시(KJC). 학생들은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의 이니셜을 붙여 조 이름을 만들었다”고 했다.

지난 8월21일 서울 올림픽파크텔 대연회장에서는 케이제이시 조원들처럼 약 10명의 3개국 초등학생들로 이뤄진 10개의 조가 모여 그림을 그리고 회의를 하느라 바빴다. 이들은 한·일·중 어린이 동화교류 2012(주최 교육과학기술부, 주관 서울특별시교육청,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세 나라 초등학생들이었다. 총 100명(한국 34명, 중국 33명, 일본 33명)의 학생이 참여한 이 행사는 아시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문화 행사로 8월17일부터 23일까지 6박7일 동안 경주와 서울에서 열렸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있는 학생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제공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있는 학생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제공

2002년에 시작한 이 행사는 3국의 어린이들에게 문화체험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매년 일본에서 열리다가 2010년부터는 3개국이 돌아가며 열기로 합의했다. 작년에는 중국에 이어 올해는 한국에서 열렸다. 올해는 특히 10주년을 맞는 해라 지난 10년 동안의 활동기록, 사진, 보고서, 동화책 등을 기념하는 특별 기념전시도 열렸다. 참가자들은 올해 5월 나라별로 교육청 등의 단위에서 추천을 받아 행사에 참여하게 된 각국의 학생들이다.

올해 행사는 3개국 학생들이 6박7일 동안 경주와 서울에서 다양한 문화체험을 한 뒤, 10인 1조를 꾸려 함께 그림책을 완성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주제는 ‘빛’이었다. 20일까지 학생들은 ‘빛’에 얽힌 3국의 전통설화를 살펴본 뒤 경주와 서울에서 문화체험을 하고, 각자 ‘빛’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그 뒤 스케치한 그림 열 장을 펼쳐놓고 스토리를 엮는 회의를 거쳤다. 21일인 이날은 스케치한 그림에 색칠을 하고, 제목을 짓는 시간으로 꾸려졌다. 각자 그린 그림들을 엮어서 한 편의 스토리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회의와 토론 등은 필수였다. 조별로 인솔단, 반리더, 통역가, 전문 그림책 작가 등이 배치돼 학생들의 작품 완성을 도왔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기획행정실 김종훈 실장은 “세 나라 어린이들이 모여서 협동학습의 의미도 배우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이라며 “행사가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데도 지루해하지 않고 반응들이 뜨겁다”고 현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케이제이시 조원들이 쓴 그림책은 희망적인 내용이었다. 일본 지바현 이치카와 시립 나카고쿠분 소학교 5년 이와키 겐키군은 “신라 전설처럼 알에서 주인공이 태어났는데 태어나보니 두꺼운 왼팔을 가진 아이였다”며 “그 아이가 두꺼운 왼팔을 제대로 되돌려놓기 위해 마술사와 함께 미션을 수행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겐키군은 주인공이 알에서 태어나는 장면을 그림으로 묘사해 색칠하느라 바빴다. 중국에서 온 린천위양은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어린이도서관을 방문해 책을 펼쳐보는 일본과 중국의 학생들.(오른쪽 위) 전문 그림책 작가와 함께 그림책 표지 안을 놓고 자세를 취한 일본 학생.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제공
우리나라 어린이도서관을 방문해 책을 펼쳐보는 일본과 중국의 학생들.(오른쪽 위) 전문 그림책 작가와 함께 그림책 표지 안을 놓고 자세를 취한 일본 학생.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제공

행사는 3국 학생들한테 서로의 문화를 엿보고 소통할 기회를 제대로 마련해주는 시간이었다. 대구 매곡초 6년 박경태군과 일본 오사카 시립 맛타 초등학교 모리 유스케군은 이 행사를 통해 ‘절친’이 됐다. 두 사람 모두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고,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본 경험도 없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각각 한국과 일본 친구를 사귀고 서로의 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한국을 처음 방문하면서 나름의 문화충격을 받은 친구도 있었다. 겐키군은 “경주에서 서울로 올 때 케이티엑스(KTX)를 탔는데 정말 엄청나게 빨라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한국 친구들을 보면서 놀란 것도 있습니다. 일본에선 밥을 먹을 때 밥그릇을 들고 먹는데 한국 친구들은 상에 놓고 먹더라구요. 신기했습니다.”

대전 오류초 6년 김범수군은 “요새 일본, 중국과 정치적으로 어색한 관계이기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도 어색하겠다 싶었는데 그림책 만드는 활동을 하면서 그런 편견도 깰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행사의 주요 프로그램인 그림책 공동작업은 문화와 예술을 통한 협동학습 모델을 보여주기도 했다. 학생 열 명이 함께 완성하는 동화책 작업을 보고 놀라는 이들도 많았다. ‘희망의 빛’이란 이름의 조를 도왔던 그림책 작가 한태희씨는 “주어진 글이나 장면 없이 ‘빛’을 주제로 각자 그림을 그리라고 했고, 그걸 보고 스토리 구성을 짜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잘해서 놀랐다”고 했다. 이 조의 이야기는 조원 가운데 한 사람인 한국 학생 박경태군을 주인공으로 삼아 경태가 희망의 빛을 찾아간다는 스토리로 이뤄졌다. 주인공이 된 경태군은 “각자 그린 그림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묶인다니 내가 참여를 했지만 참 신기하다”고 했다.

그림책 작가 박미옥씨는 “아이들끼리 난상토론을 하면서 열 장의 그림을 맞추는 걸 보고 놀랐다”며 “스토리를 짜임새 있게 만드는 과정이면서도 양보와 조율, 협력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림책 작가 정유정씨는 “열 명의 친구가 자신이 쓴 이야기와 다른 친구들이 쓴 이야기를 더해서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인데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성격, 문화적 다름 등을 이해하고, 의견을 조율하고, 토론하는 법을 배워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행사 활동에서 중요한 건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면서 내가 가진 생각이나 요소들을 변경할 수도 있다는 걸 배우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까 제목 지을 때도 아이들은 상대가 다치지 않게 의견 조율을 해야 한다는 걸 배웠을 겁니다.”

이날 학생들이 만든 그림들은 그림책으로 인쇄, 제본이 되어 참여한 학생들 각자의 손에 쥐여졌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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