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7일 이화미디어고 학생들이 서울시교육청의 창의·인성 교육 활성화 세부 추진계획에 따라 만든 창작오페라 <하늘에서 잘못 떨어진 별>을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올렸다. 이화미디어고 제공
자발적 기획·진행, 창의적 결과로
인프라 구축과 교사 수급 절실
인프라 구축과 교사 수급 절실
내년부터 창의적 체험활동이 모든 학교 및 학년의 교육과정에 전면 도입된다. 창체활동은 입시 위주의 교과 운영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도록 장려하고 비교과 활동을 큰 폭으로 넓힌다는 취지로 2009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도입됐다.
창체활동은 자율·봉사·진로·동아리활동으로 분류된다. 2010년에 시범학교를 지정해 운영한 뒤, 2011년에 초등학교 1~2학년, 중·고등학교 1학년을 시작으로 2013년에 모든 학교와 학년에 적용될 예정이다. 보통 1주일에 2시간 정도가 창체시간으로 배당되는데, 체험활동의 교육적 효과가 높게 평가되고 대학에서도 입시 자료로 폭넓게 활용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창체활동에 관심이 높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창의·인성 모델학교를 지정하고, 창의적 체험활동경진대회를 후원하는 등 창체활동이 교육현장에 빠르게 정착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수 사례도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시행초기라 개선할 점이 많다.
학교 현장에서는 창체시간이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된다는 지적이 많다. 황아무개(경기도 ㅇ고)군은 “지난 학기엔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교과내용과는 관계없는 내용으로 강연을 했고, 지금은 진로 관련 영상을 일괄적으로 틀어준다”며 “학생들은 그냥 자는 시간 아니면 학원 숙제 시간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황군은 “창체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얻는 이익이 없기 때문에 다들 무관심하다”며 “선생님들도 그냥 학교에서 시키니까 형식적으로만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박아무개(충남 ㄱ고)양도 “따로 창체시간을 위한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는데 학생들은 쉬는 시간 정도로 생각한다”며 “교사가 만들어준 동아리에 가위바위보 해서 들어가는 시스템이라 상설 동아리처럼 우리가 주체적으로 뭔가 한다는 느낌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 양 역시 교사나 학생이 모두 의욕이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짚었고, 자습 시간을 주는 경우도 많아 창체의 원래 취지와는 매우 동떨어지게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이런 지적에 교사들도 답답해한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는 정아무개 교사는 “교사들도 창체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전문성도 떨어지고 창체시간을 진행할 지역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활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 교사는 “그러다보니 수업시수가 부족한 교사들이 시간 채우기로 창체시간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창체활동의 취지와 의도가 실제 교육현장에서 이뤄지는 활동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고 털어놨다.
참교육학부모회 박범이 수석부회장은 창의적체험활동이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까닭을 “교육과정이 입시 위주로 짜인 상황에서 교사나 학생이 창체에 몰입할 만한 시간이 없다”는 점을 가장 먼저 꼽았고, “준비된 또는 준비하는 교사도 많지 않다는 점”을 그다음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창의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그것을 보충할 만한 물리적 시간이 교사에게 없다는 뜻이다. 박 수석부회장은 “학부모들은 창체시간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거나 오히려 창체시간에 국영수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판적 의견이 많이 나오는 가운데 서울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등학교(이하 이화미디어고)에서는 창체시간에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해 눈길을 모았다. 이화미디어고는 지난해 1학년을 대상으로 창체프로그램을 개설해 성과를 인정받았다. 11명의 교사가 ‘오감을 깨우는 창조적 글쓰기’, ‘올 댓 매스’(All That Math), ‘예비 금융전문가 FP 되기’, ‘쇼핑몰 창업하기’ 등의 창체과목을 지도한다. 교사가 교육목표, 중점지도사항, 프로젝트 지도계획, 평가계획 등을 제시하면 학생은 원하는 과목을 선택한 뒤 스스로 주제를 잡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그 결과물로 학기말에 공모전을 열어 시상도 한다.
예를 들어 ‘쇼핑몰 창업하기’를 듣는 학생들은 창업아이템을 스스로 잡고 동기와 기대효과, 사용기술과 시장규모를 고려해 상품화계획 등을 짜는 식이다. 2학년 권후인양은 지난 학기에 ‘디자인 비즈쿨’ 반에서 떡을 튀겨 꿀이나 초콜릿 등을 발라 파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기획해 우수상을 받았다. 권양은 “창체시간에 주요 교과 이외에 새롭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할 수 있어 좋았다”며 “지난해 2학기에 경제신문 만들기 활동을 하며 관련 지식을 쌓은 것도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화미디어고에서 창체활동을 총괄하고 교사회의와 토론을 주관하는 임경묵 창의인성부장은 “예전에도 열정이 있는 일부 교사들은 자신이 관심을 둔 분야, 예를 들어 연극, 발명, 스포츠 등을 교육과정으로 진행했다”며 “이제 창체활동시간이 제도적으로 그 시간을 보장해주게 돼 환영한다”고 말했다. 임 교사는 특히 “프로젝트 수업은 지도 개념이 아니라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으로 탐구활동이 주가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어 임 교사는 “일부 창체프로그램들은 이미 짜인 프로그램에 맞춰 학생은 몸만 들어가 체험만 하는 꼴이기 때문에 창의력을 키울 수 없다”며 “답이 이미 나와 있는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창의성을 키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창체활동이 각 학교에 정착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먼저 지역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문산여고 김홍수 교사는 “창체활동을 담당할 교사가 부족해 교내에서만 하기 어렵다”며 “그렇다고 외부활동을 하자니 비용이 발생하게 돼 학생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지역 단체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무료로 지원하거나 특성화된 활동 위주로 지역공동학급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문산여고처럼 환경 관련 노하우가 있다면 다른 학교 학생들을 초청해 창의적체험활동을 수행하도록 하는 식이다. 임 교사도 “수익자 부담으로 할 수 있는 활동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며 “지속적인 교육활동이 이뤄질 수 있게 유관단체와 전문가가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시급히 해결할 문제는 창체활동을 담당할 교사 수급이다. 이화미디어고는 특성화학교로 학급당 학생수가 25명으로 일반 고등학교보다 적지만 교사 수급면에선 어려움이 많다. 현재 1학년 대상으론 11개 과목이 개설돼 있지만 2학년 대상으로는 1개 과정밖에 개설돼 있지 않다. 임 교사는 “집중이수제 탓에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앞으로 교사 수급이 원활해진다면 2·3학년까지 확대하려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정종법 기자 mizzle@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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