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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직업적성검사는 보조 자료…무조건 믿어서는 안돼

등록 2012-09-03 14:57

검사는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범인을 심문해야 하기 때문에 동적인 직업이다. 판사는 사무실에서 각종 소장의 내용과 법전, 판례 등을 살펴보므로 정적인 직업이다. 같은 법조인이라도 이처럼 직업 성격에 차이가 많다. 사진은 2010년 2월 사형제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사건 선고를 위해 재판관들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검사는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범인을 심문해야 하기 때문에 동적인 직업이다. 판사는 사무실에서 각종 소장의 내용과 법전, 판례 등을 살펴보므로 정적인 직업이다. 같은 법조인이라도 이처럼 직업 성격에 차이가 많다. 사진은 2010년 2월 사형제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사건 선고를 위해 재판관들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김상호 박사의 ‘톡 까놓고 진로 톡’
지능 평가 치중…IQ 높은 사람이 직무 능력 있는 것으로 나와
검사·판사·변호사 같은 법조인이지만 요구되는 성향 모두 달라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난 직업적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 하지만 공들인 만큼 큰 성과를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현실에 비범한 재주를 가진 천재도 많지 않으며, 특정한 적성을 요구하는 직업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직업은 평범한 직업능력을 요구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여 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음악, 미술, 수학, 언어 등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복잡한 직업적성검사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재능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재능을 매장시키려는 부모님은 없다. 미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은 직업진로에 큰 고민 없이 미대에 가며, 운동신경과 체력이 좋은 학생이 운동을 좋아하면 스포츠 관련 학과·직업을 선택한다. 따라서 꼭 적성검사를 해보지 않더라도 보통사람과 다른 능력은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런데도 왜 많은 사람들이 적성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할까?

문제는 타고난 적성이 사람마다 큰 차이가 없다는 데 있다. 대부분 사람들의 타고난 적성이나 능력이라는 것은 ‘도토리 키 재기’와 같다. 그래서 직업적 적성은 실제 직업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학생들과 진로전문가들에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직업인들에게 적성이란 ‘잔소리’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직업은 다양한 적성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성적이고 꼼꼼한 변호사, 활동적이나 덜렁대는 변호사, 자신만 아는 이기적 성향의 변호사, 의협심과 이타심 많은 정의로운 변호사, 언어능력이 좋은 말 잘하는 변호사 등 다양한 직업적성 소유자들이 동일한 직업 속에 존재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여기서 발견되는 한 가지 사실은 직업적성 검사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자기만의 생존 전략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발표능력은 없지만 성실함으로 부족한 적성을 보완하는 사람,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타인에게서 빌려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등 다양한 생존 전략이 부족한 적성을 보완할 수 있다. 따라서 평범한 직업인에게 적성 찾기란 큰 의미는 없다.

그럼에도 적성검사는 적성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도구이다. 그렇다면 적성검사를 통해서 적성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필자는 적성검사는 적성을 찾기 위한 ‘불완전한 보조도구’라고 말하고 싶다.

자기응답 방식 검사…오류 많아

첫째, 적성검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아이큐(IQ)가 높은 사람이 모든 직무에 대한 적성이 높게 나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교육학자인 하워드 가드너는 기존의 적성검사들이 인지적인 능력만을 측정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 다양한 인간의 능력을 고려한 다중지능이론을 만들었다.) 결과가 적성검사 결과인지 지능검사 결과인지 의심받을 정도다. 적성검사는 인간의 지능적 능력을 검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이큐가 높은 사람이 전반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고 다양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나온다. 적성검사의 또다른 문제점은 직업에 있어서 중요성이 증가되고 있는 창의력, 문제해결능력, 대인관계능력, 공감능력 등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검사 과정이 자기응답 방식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답을 하게 되므로 오차가 많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흥미검사 및 진로탐색검사는 문제가 된다. 제한된 정보와 경험을 가진 검사 대상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정확히 체크하여 답을 한다고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계속하여 성장하는 학생 시기에는 더 그러하다. 게다가 붕어빵 교육을 받는 현실에서라면? 내 직업 적성을 파악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 해보는 거다. 직접은 고사하고 간접 경험도 해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적성을 알 수 있을까? 적성이라는 것은 ‘경험적 특성’으로 파악되는 부분이 많으므로 간접 검사로는 한계가 많다.

셋째, 내 적성이 정확히 파악되었다고 해도 적성과 연계된 직업이나 학과를 신뢰할 수 없는 경우가 꽤 된다. 적성과 추천 직업의 불일치는 한국직업사전에 수록된 수천(2003년 기준 4540개) 종류의 직업에 대한 직무분석을 철저하게 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검사, 판사, 변호사, 법무사 등은 모두 법조인이지만 요구되는 성향이 다르다. 판사는 자신의 방에서 각종 소장의 내용과 법전, 판례 등을 살펴보므로 정적인 직업이다. 반면 검사는 사건 현장 조사부터 범인 심문 등의 업무도 수행해야 하는 동적인 직업이다. 이렇게 변수가 많다 보니 적성검사지에 적혀 나오는 예상 직업이 빗나갈 때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적성과 추천 학과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다. 적성검사를 통해 단순하게 일반화된 결과를 가지고 매우 다양한 특성을 가진 학과와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다 보면 많은 오류가 나온다. 얼마 전 스포츠마케팅학과 교수를 만나 식사 중에 이런 질문을 했다. “체육 관련 학과는 외향적인 성격이 필요하죠?” 교수의 대답은 “종목마다 다 달라요!”였다.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사격, 농구, 육상, 골프, 축구 등 종목마다 특성이 다르므로 요구되는 적성도 상이한 게 당연하다.

MBTI는 미국 현실에 맞아

넷째, 상당수 적성검사는 자신의 나라에 맞게 만들어진 적성검사 방법이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듯 직업과 연결되는 적성이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의 회계사와 미국의 회계사는 하는 일이 상당부분 다르다. 요즘 많이 거론되는 엠비티아이(MBTI)에 따른 직업 선택은 미국 현실에 맞게 설정된 것이지 우리 현실에 맞게 설정된 건 아니다.

다섯째, 무엇보다 적성은 변화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훌륭한 검사 방법이라 해도 현 상태의 적성을 살펴볼 뿐이지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까지 알아내지는 못한다. 개인의 적성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이 요구하는 적성도 변한다. 사회변화, 기술융합 등이 직업 세계에 변화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과거의 농부라면 반복적인 일을 참고 잘 수행하는 근면함이 중요한 적성이었지만 지금의 농부는 농작물 재배기술 습득이나 판로 개척에 소질이 있어야 한다. 요즘같이 기술융합의 속도가 빠른 경우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따라서 내가 가진 흥미, 능력, 적성이 조사 당시의 직업 또는 학과와 일치할지라도 졸업 후 취업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김상호 박사의 ‘톡 까놓고 진로 톡’
김상호 박사의 ‘톡 까놓고 진로 톡’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인간이 만든 적성검사 또한 불완전해서 심리학자나 교육학자들의 연구와 노력으로 탐색 문항이 발전해가고 있으며, 흥미검사, 직업적성검사, 진로탐색검사, 종합능력검사, 적성탐색검사 등 대상과 목적, 방법 등에 따라 여러 검사로 분화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하여 인간의 능력이나 적성을 유형화시키고 체계화시키는 작업이 분명 진일보하였지만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다. 따라서 적성검사는 보조적 자료일 뿐 절대적인 자료로 활용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직업진로자격연구실 연구원

김상호 <톡 까놓고 직업 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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