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대성 교사의 북 내비게이션
8. 지나칠 수 없는 몇 개의 분야 - ①만화
8. 지나칠 수 없는 몇 개의 분야 - ①만화
<만화의 이해>
스콧 매클라우드, 김낙호 옮김, 비즈앤비즈 <쥐 Ⅰ, Ⅱ>
아트 슈피겔만, 권희종·권희섭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사계절 초등학교에 다닐 때 전쟁이 나면 국회의사당 지붕 돔이 열리고 마징가 제트가 출동한다는 말을 믿었다. 불가능이 없다고 믿던 시절이었으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때 그 시절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준 것이 바로 만화다. 사소한 일에 즐거워하고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만화를 읽는다. 그렇지 않으면 나이가 들면서 빠른 속도로 현실에 적응하고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간다. 만화는 읽는 재미에 보는 즐거움까지 기쁨이 두 배다.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웹툰 보기가 5위 안에 들어간다는 조사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즐긴다는 증거이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만화에 대한 접근 방법도 진화해서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만화를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형태의 만화책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재미와 즐거움을 선물한다. 한때 만화가 단순하고 저급한 대상으로 취급당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는 만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만화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대상이든 그 사물의 형태나 사건의 성격을 과장된 표현 또는 생략된 표현으로 웃음의 소재나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회화’다. 하지만 이 정의에는 만화에서 중요한 요소인 글이 빠져 있다. 또한 과장되지 않은 만화, 웃음과 풍자를 다루지 않은 만화를 포함하지 못한다. <만화의 이해>에서 스콧 매클라우드는 만화를 ‘수용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미학적 반응을 일으키기 위하여, 의도된 순서로 병렬된 그림 및 기타 형상들’이라고 재정의한다. 이 말에는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만화에 대한 폭넓은 고민이 담겨 있다. 만화를 예술의 한 형식으로 바라보면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이 떠오른다. 만화가 어떤 형식의 예술이며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진지하게 분석하고 있는 이 책은 ‘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설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만화를 분석한 만화책이다. 만화는 현실에서 멀어질수록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사실적인 것에서 아이콘화한 것으로, 특정한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표현할 때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렇다고 해서 만화가 현실과 무관한 공상의 세계만을 다루는 건 아니다. 다른 예술에서 표현하기 힘든 방법으로 만화 특유의 상상력을 만들어낸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생략이야말로 만화의 묘미이며 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단순한 몇 개의 선으로 여백을 독자 스스로 채우게 하는 마술을 펼친다. 특히 저자는 보여주기와 말하기의 조화를 강조한다. 만화는 회화의 한 형식이 아니라 글과 그림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다른 어떤 예술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미적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이 책 또한 만화에 대한 이론과 미학적 접근을 만화라는 형식으로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만화는 ‘발상(목적), 형식, 작품, 구조, 기술, 겉모습’의 여섯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고 한다. 저자는 모든 만화를 몇 가지 이론으로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만화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만화에 대한 근본적인 형식과 내용을 탐구하고 있다. 만화책 한 권 완성하는 데 8년이 걸렸다면 독자들은 믿을까? 왠지 시간이 주는 무게와 진지함은 만화라는 형식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 Ⅰ, Ⅱ>는 이런 편견을 깨뜨린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끔찍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이 만화책은 내용은 물론 소재와 방법까지도 충격적이다. 이 책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쥐로, 나치는 고양이로, 폴란드인은 돼지로, 미국인은 개로, 프랑스인은 개구리로, 소련인은 곰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장면과 내용은 다큐멘터리식 현실 해석과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편집 등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고 있다. 아버지 블라덱의 회상 형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지만 아들 슈피겔만과의 현재도 중요한 이야기의 흐름이다. 과거와 현실이 교차하면서 보여주는 끔찍한 역사는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만화는 때때로 현실보다 더욱 생생한 장면을 만들어내고 과거를 되살려내기도 한다. <십시일반>처럼 인권 현실을 보여주는 만화, 강풀의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같은 감동적인 창작만화, 허영만의 <식객>, <꼴> 시리즈처럼 글과 그림이 조화를 이룬 좋은 만화도 많이 있지만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은 대한민국 청소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재미있게 읽힌다. 답답하고 우울한 현실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청소년이 어디 있겠는가.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미술학원을 중심으로 대학을 가기 위한 미술이 따로 존재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제목처럼 울기엔 조금 애매한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히 포장되어 있다. 초등학생처럼 엉엉 울어버릴 수도 없는 현실에서 우리가 걸어야 할 길과 고민해야 하는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무엇이든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격려와 위로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데서부터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듯 만화는 공상의 세계부터 치열한 현실까지 폭넓은 분야를 담아낸다. 만화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통해 무한한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즐길 수 있다. 학습을 위한 도구로서 만화를 활용한 학습만화가 유행하고 있지만 만화는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을 준다. 언제든 가장 손쉽게 그리고 즐겁게 펼쳐볼 수 있는 만화는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
류대성 용인 흥덕고 교사, <국어 원리 교과서>
<청소년, 책의 숲에서 길을 찾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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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매클라우드, 김낙호 옮김, 비즈앤비즈 <쥐 Ⅰ, Ⅱ>
아트 슈피겔만, 권희종·권희섭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사계절 초등학교에 다닐 때 전쟁이 나면 국회의사당 지붕 돔이 열리고 마징가 제트가 출동한다는 말을 믿었다. 불가능이 없다고 믿던 시절이었으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때 그 시절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준 것이 바로 만화다. 사소한 일에 즐거워하고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만화를 읽는다. 그렇지 않으면 나이가 들면서 빠른 속도로 현실에 적응하고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간다. 만화는 읽는 재미에 보는 즐거움까지 기쁨이 두 배다.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웹툰 보기가 5위 안에 들어간다는 조사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즐긴다는 증거이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만화에 대한 접근 방법도 진화해서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만화를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형태의 만화책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재미와 즐거움을 선물한다. 한때 만화가 단순하고 저급한 대상으로 취급당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는 만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만화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대상이든 그 사물의 형태나 사건의 성격을 과장된 표현 또는 생략된 표현으로 웃음의 소재나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회화’다. 하지만 이 정의에는 만화에서 중요한 요소인 글이 빠져 있다. 또한 과장되지 않은 만화, 웃음과 풍자를 다루지 않은 만화를 포함하지 못한다. <만화의 이해>에서 스콧 매클라우드는 만화를 ‘수용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미학적 반응을 일으키기 위하여, 의도된 순서로 병렬된 그림 및 기타 형상들’이라고 재정의한다. 이 말에는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만화에 대한 폭넓은 고민이 담겨 있다. 만화를 예술의 한 형식으로 바라보면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이 떠오른다. 만화가 어떤 형식의 예술이며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진지하게 분석하고 있는 이 책은 ‘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설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만화를 분석한 만화책이다. 만화는 현실에서 멀어질수록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사실적인 것에서 아이콘화한 것으로, 특정한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표현할 때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렇다고 해서 만화가 현실과 무관한 공상의 세계만을 다루는 건 아니다. 다른 예술에서 표현하기 힘든 방법으로 만화 특유의 상상력을 만들어낸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생략이야말로 만화의 묘미이며 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단순한 몇 개의 선으로 여백을 독자 스스로 채우게 하는 마술을 펼친다. 특히 저자는 보여주기와 말하기의 조화를 강조한다. 만화는 회화의 한 형식이 아니라 글과 그림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다른 어떤 예술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미적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이 책 또한 만화에 대한 이론과 미학적 접근을 만화라는 형식으로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만화는 ‘발상(목적), 형식, 작품, 구조, 기술, 겉모습’의 여섯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고 한다. 저자는 모든 만화를 몇 가지 이론으로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만화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만화에 대한 근본적인 형식과 내용을 탐구하고 있다. 만화책 한 권 완성하는 데 8년이 걸렸다면 독자들은 믿을까? 왠지 시간이 주는 무게와 진지함은 만화라는 형식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 Ⅰ, Ⅱ>는 이런 편견을 깨뜨린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끔찍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이 만화책은 내용은 물론 소재와 방법까지도 충격적이다. 이 책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쥐로, 나치는 고양이로, 폴란드인은 돼지로, 미국인은 개로, 프랑스인은 개구리로, 소련인은 곰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장면과 내용은 다큐멘터리식 현실 해석과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편집 등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고 있다. 아버지 블라덱의 회상 형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지만 아들 슈피겔만과의 현재도 중요한 이야기의 흐름이다. 과거와 현실이 교차하면서 보여주는 끔찍한 역사는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만화는 때때로 현실보다 더욱 생생한 장면을 만들어내고 과거를 되살려내기도 한다. <십시일반>처럼 인권 현실을 보여주는 만화, 강풀의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같은 감동적인 창작만화, 허영만의 <식객>, <꼴> 시리즈처럼 글과 그림이 조화를 이룬 좋은 만화도 많이 있지만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은 대한민국 청소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재미있게 읽힌다. 답답하고 우울한 현실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청소년이 어디 있겠는가.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미술학원을 중심으로 대학을 가기 위한 미술이 따로 존재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제목처럼 울기엔 조금 애매한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히 포장되어 있다. 초등학생처럼 엉엉 울어버릴 수도 없는 현실에서 우리가 걸어야 할 길과 고민해야 하는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무엇이든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격려와 위로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데서부터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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