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나 자사고 등에 진학하는 게 이른바 ‘SKY’대 합격을 보장하지 않는다. 사진은 서울대 정문 모습.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공부 거부감 적거나 성격적으로 경쟁심 강한 아이들은 소수
부모가 경쟁보다 자녀의 행복 우선시할 때 성공 가능성 높아
부모가 경쟁보다 자녀의 행복 우선시할 때 성공 가능성 높아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실낱같은 희망이 생긴 고1 맘입니다.’ 얼마 전 입시 과열 지역에 사는 한 부모로부터 받은 메일의 내용이다. 사연인즉, 외고에 지원하려다가 내신 불이익 걱정에 자사고로 수정, 그러나 추첨에 떨어져 결국 일반고에 진학했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자사고로 전학을 한 후 문제가 생겼다. 학교 성적이 크게 떨어져 절망에 빠진 것이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현재 상황은 절망적이다. 이미 낙오자가 됐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누구를 위한 특목고인가
매년 대학 입시 철이 마무리되고 명문대 진학실적이 발표되면 소위 SKY 합격률이 높은 신흥 입시 명문고가 학부모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입시 명문고 진학에 목숨을 건 부모들에게 특목고 진학에 성공했지만 명문대 진학에는 실패한 사례를 얘기하는 것은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반대로 특목고가 아닌 일반고를 거쳐 명문대에 진학한 사례를 소개하는 것은 약 올리기가 된다.
하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대입도 아닌 고입 경쟁으로 너무도 빨리 좌절하는, 눈물 나는 사연들을 많이 목격한 탓이다. 자사고에 진학했지만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는 학생, 서울의 유명 외고에 진학했지만 투신자살하고 만 사례, 성적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시험문제를 훔친 경우를 말이다. 명문고 진학에만 성공하면 명문대 진학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에게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중위권이나 하위권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외고 진학은 진지하게 재고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대부분 거부반응을 보인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 성취감이 아니라 의무감에 찌들어 공부 피로감이 극에 달해 있는 아이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경쟁 스트레스로 인해 쉽게 슬럼프에 빠져 도저히 제대로 공부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두 번 성적이 부진하면 스스로 무너지기 십상인 아이들도 허다하다. 물론 부모들의 바람에 부응하여 갈수록 경쟁력이 강해지는 학생, 즉 경쟁에 유리한 학생들도 있지만 그리 많지 않은 게 문제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과도한 경쟁 스트레스와 기대 이하의 성적에 발목이 잡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정말 내 새끼라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조언을 하지만 대다수의 부모들이 외면했다. 눈앞에 성공이 보이는데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길로 돌아가라는 말에 반감을 드러내기 십상이다. 하지만 한 학기가 지난 후 다시 찾아온 부모들은 몹시 난감한 표정으로 말한다. “선생님 말이 맞는 거 같네요.” 그러면서 붙여준 별명이 대치동 박보살! 실패 예측 전문가라는 생각에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성장 프레임으로 아이를 바라보자
경쟁 프레임에 갇혀 있는 부모들을 설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보다는 실패하고 좌절해 결국 불행해질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매우 높음에도 바늘구멍 같은 가능성만을 보려고 한다. 다분히 맹목적이다.
물론 대한민국 부모들이 왜 그런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무한 경쟁의 희생자들이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경쟁 심리에 푹 빠져 있는 부모들이 맞이할 ‘불행’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프레임과 함께 현실적인 대안이 절실하다.
다행히 경쟁의식에 매몰되지 않고 성공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부모들이 경쟁보다는 아이의 성장과 행복이 우선이라는 태도와 가치관이 돋보인다. 시험을 보면 성적이 아니라 아이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는 늘 자신의 공부를 되돌아보고 보완하는 과정에서 지적 성장의 뿌듯함을 체감한다. 등수 올리기나 선행학습에 대한 부담 없이 공부한 결과,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는 적극적인 자기주도 학습자가 된다. 교과서와 시험범위에 갇히지 않고 교과과정에서 만나는 인물과 사건 그리고 주제에 대한 독서를 통해 지적 만족감을 만끽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국어와 논술에서 강력한 입시경쟁력을 갖춘다.
또 수학의 경우 수학적 논리를 파악하느라 많은 문제를 풀진 못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학의 명쾌함과 논리의 세계에서 재미를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해결능력은 더욱 커진다.
영어는 단어를 억지로 외우거나 문법 위주로 지겹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비디오와 오디오, 스토리북 등)을 중심으로 영어 그 자체로 습득하게 된다. 당장의 성적은 좋지 않더라도 갈수록 읽기와 듣기에 자신감이 붙게 된다. 굳이 비싼 어학원을 다니거나 어학연수를 갈 필요가 없다. 영어 때문에 입시에서 좌절할 일은 생기지 않는다.
성적 경쟁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살피고 동기를 최대한 살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부모들이 분명 존재한다.
우리 아이를 경쟁의 들러리로 내몰 텐가
다시 말하지만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적거나 성격적으로 경쟁에 강한 아이들이 있다. 당연히 초등 시기부터 우수한 성취 수준을 보여준다. 하지만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공부와 경쟁에 모두 유리한 이런 아이들과 무작정 경쟁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경쟁을 통해 성공보다는 실패를, 재미보다는 지겨움을, 성취감보다는 의무감을, 자율보다는 타율을 경험한 아이들은 대부분 수동적인 학습자로 전락하고 만다.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지면 누군가 감시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는 학생이 된다. 그 결과 공부의 질은 떨어지고 결국 양을 늘리기 위해 다시 감시와 통제가 심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다.
사회가 경쟁이기에 피할 수 없다면 경쟁 프레임을 제한적으로 적용해보라고 제안한다. 본격적인 경쟁은 초등학교나 중학교가 아니라 고등학교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부모가 먼저 성장에 필요한 관심과 호기심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아이들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대학 입시에 반영되는 성적은 분명 고등학교 성적이다. 성적에 대한 과잉 경쟁으로 쓰러질 아이들을 부모가 중학교까지는 지켜주는 것이다. 좌절할 운명에 처한 아이들에게 희망의 끈을 쥐여주려면 부모들이 먼저 결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사교육은 경쟁교육과 그로 인해 유발되는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먹고 산다. “그렇게 아이만 믿고 가다가는 나중에 큰코다친다니까. 그렇게 한가하게 아이를 키우는 건 다 옛날이야기야. 한번 성적이 떨어지면 회복하기 어렵다고.” 이런 얘기에 부모가 흔들리면 아이들에게 희망은 없다.
부모들의 불안감을 자극하여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성적과 스펙이라는 획일적인 경쟁기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희생하는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경쟁에 밀렸으니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낙오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과연 사회적으로, 또 교육적으로 정당한가?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걱정이 크고, 열정보다는 의무감이 강한, 그래서 경쟁심리를 자극하지 않는 한 동기가 생기지 않는 아이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 결국 우리 사회의 부담이자 한 가정의 우환이 될 것이다.
경쟁논리에 맞서 대항논리를 세우자. 경쟁논리는 소수의 주인공을 위해 내 자녀를 들러리로 삼겠다는 음모라고 생각하자. 경쟁은 초·중 때부터가 아니라 고교에 진학한 다음에 시작된다고, 그것이 내 아이에게 가장 유리한 경쟁전략이라고 선언하자.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은 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조장하는 이들을 위한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외쳐보자.
비록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경쟁논리에서 벗어나 뒤늦게 고1 아이에게도 희망이 생겼다고 메일을 보낸 부모와 아이 모두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키워갈 수 있기를 염원한다.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 <박재원의 부모효과> 저자
<한겨레 인기기사>
■ 오늘 밤 2차 TV토론, 박근혜·문재인 전략은?
■ “안철수 효과 크지않다”-“아직 여론에 반영 안돼”
■ 정권교체 좋지만 52.5%…박 이길것 53.3%
■ “문재인, 부엉이 귀신 따라 죽을까 걱정” 막말 논란
■ 류현진, 다저스와 계약…6년 3600만 달러 ‘대박’
■ 문재인의 서재, 박근혜의 서재
■ [화보] ‘여왕의 귀환’ 김연아, 뱀파이어와 키스~
■ 오늘 밤 2차 TV토론, 박근혜·문재인 전략은?
■ “안철수 효과 크지않다”-“아직 여론에 반영 안돼”
■ 정권교체 좋지만 52.5%…박 이길것 53.3%
■ “문재인, 부엉이 귀신 따라 죽을까 걱정” 막말 논란
■ 류현진, 다저스와 계약…6년 3600만 달러 ‘대박’
■ 문재인의 서재, 박근혜의 서재
■ [화보] ‘여왕의 귀환’ 김연아, 뱀파이어와 키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