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체대 입시 준비생이 대학에서 실시하는 실기고사를 치르는 모습이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음악, 미술, 체육 사교육 받는 게 당연한 문화
입학사정관제 신설…학교 역할 중요해지는 때
입학사정관제 신설…학교 역할 중요해지는 때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드럼을 배워온 고3 장아무개군의 하루는 학교에서 시작해 학원에서 끝난다. 오후 4시30분에 학교가 끝나면 실용음악학원으로 간다. 밤 10시30분까지 학원에서 드럼을 배우는 장군의 바람은 “학교 눈치 안 받고 야간자율학습을 빠지는 것”이다. 장군은 “드럼 연습을 하기 위해서 야간자율학습을 빠지면 선생님들이 눈치를 준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음악계열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순수음악부터 실용음악까지 음악계 전 분야를 챙겨주는 게 힘들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큰 틀에서 음악분야 입시 정보 상담은 해줘야 하는데 잘 안 해줍니다. 예체능계 학생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챙겨주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오히려 수업 분위기만 어지럽힌다며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죠. 실기 강의는 기대도 안 합니다. 학교에는 연습실조차 없습니다. 교내 행사에서 밴드 공연 등을 할 때는 자비를 털어 연습실을 따로 구해야 합니다.”
장군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음악, 미술, 체육 등 예체능 분야에 꿈을 품은 학생들은 진로, 진학에 대한 고민이 많다. 학교는 이들의 진학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수시 전형만 해도 2000여개. 이 안에서 예체능계 입시전형도 복잡해진다. 실기 준비는 그렇다 쳐도 일반계 학교의 경우, 20명 안팎으로 소수인 예체능 준비생들을 위해 입시 정보를 제공하는 학교는 그리 많지 않다. 예체능계 진학 준비생들이 학원을 전전하는 이유다.
시각디자인과를 목표로 공부하는 ㅎ고등학교 1학년 이아무개군도 인문계고에서 미술계열 대학 진학을 꿈꾼다. 이군은 중3 때 예고 진학도 고민했지만 일반계고를 선택했다. 이군은 “예고를 가면 미술 위주로만 가르칠 것 같아서 학업에는 신경을 못 쓸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입시정보를 알기도 어렵고, 실기 연습을 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이군의 발길 역시 학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군은 “현재는 매달 약 65만원이 나가지만 고3이 되면 100만원을 훌쩍 넘는 돈을 내야 한다”며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며 학원비를 대는 친구들도 주변에 많다”고 했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한테 흔히 ‘예고에 진학하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예고에 입학하더라도 1년 학비는 최대 약 800만원이 든다. 부대비용은 뺀 액수다. 정부에서는 사교육비 절감 차원에서 예술중점학교를 지정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예술중점학교는 일반학교에서 예술 과목에 집중해 심도 있는 중점과정을 개설하고 교내에 실기를 준비할 만한 환경을 조성한 학교로 현재 전국에 10곳이 있다. 그러나 이런 학교에 진학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ㄱ중학교에 다니는 정아무개양은 “예고는 금전적인 문제 등 다른 이유로 미뤄두고 미술 분야를 지원해주는 예술중점고교로 진학을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학교들 역시 예고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대안으로 입학하다 보니 경쟁률이 높다”며 “인문계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교에서 예체능 학생들을 위한 인프라를 따로 만들지 않는 이상 관련 분야의 지망생들은 학교에서 외면당하고, 비싼 학원만 전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반계고에서 예체능계 준비생들의 대학 진학을 돕는 일이 쉽진 않지만 최근 달라지는 입시 변화를 꼼꼼히 파악해 학생들의 진학을 돕는 학교도 있다. 인천 신현고등학교는 학교 쪽에서 예체능계 준비생들한테 적극적인 도움을 주면서 올해 수시에서 홍익대 자율전공학부 합격생을 2명이나 배출하는 등 일반계고에서는 흔치 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 김현정 미술 교사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동아리 활동과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동아리 시간과 무학년 진로담임 시간에 특정 학생의 진로와 연관된 교사가 그 학생을 지도하고 진로상담 등을 해주는 무학년 진로담임제, 그리고 학교 차원의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해서 전문 강사를 초빙해서 방과후수업 등을 활성화시킨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수시 전형으로 올해 홍익대 자율전공학부에 합격한 3학년 홍수지양은 사교육 없이 학교 활동만으로 입학사정관제로 합격한 사례다. 홍양의 경우, 대부분의 미대 지망생들이 받는 사교육을 전혀 다니지 않고 학교의 동아리 활동이나, 방과후수업에만 참여했다. 홍양의 합격은 ‘선택과 집중’ 전략의 결과였다. 김 교사는 “수지의 경우, 실기가 아주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내신이 강한 학교 쪽으로 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며 “마침 2학년 때부터 내신 성적이 많이 오르는 걸 봤고, 내신과 교내 활동 비중이 높은 학교를 집중 공략하기로 마음을 먹게 하고, 준비를 도왔다”고 했다.
이렇게 학교에서 입시 준비가 가능한 이유는 최근 들어 예체능계열에서도 내신 성적이나 수능 점수로 합격생을 가르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3학년도 입시 전형을 보면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의 경우, 수시전형에서 학교생활우수자전형은 1단계에서 학생부를, 2단계에서 학생부와 면접 점수를 합산해 학생을 선발했다. 홍익대학교의 경우, 수시 1차에서 미술계열 실기고사를 폐지하고, 모집인원 100% 비실기전형으로 선발했다. 수시 2차에서도 미술계열 학생부 100% 전형을 정원의 30%로 확대했다. 국민대학교는 2013학년도 정시모집에서 ‘다군’ 시각디자인학과(20명), 실내디자인학과(12명), 영상디자인학과(5명), 의상디자인학과(5명) 및 정시 ‘나군’ 회화전공(4명)에서 수능 성적 100%로 학생을 선발했다.
부천 원종고도 예체능계열 대학 진학의 모범사례다. 체대 입시에서 공교육의 모범사례로 평가받는 원종고는 체육 교사들 차원에서 운동 실기수업과 학업을 병행하도록 하는 방과후수업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교사들은 체대 입시 요강을 꼼꼼히 분석해 여기에 맞는 기초 체력훈련과 학교별 실기 주종목을 관리하며 맞춤형 진학지도를 한다.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 학생들의 경우, 방과후수업 비용은 학교와 교육청이 지원해 감면 혜택을 준다. 원종고의 임성철 체육 교사는 “수상 경력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특기자 전형보다 학업성적(내신, 수능)의 반영 비중이 높은 전형이 많기 때문에 체육 분야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운동 실기 능력 못지않게 수능과 내신 등 학업에 충실해야 한다. 따라서 학업과 운동의 조화로운 병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임 교사는 “체육 사교육 시장도 입시철만 되면 학생들한테 큰 부담이 되는 돈을 요구한다. 준비하는 학생이 많지는 않지만 일반 학교에서도 체육 교사와 학교 쪽이 열정을 갖고 상담활동 등을 충분히 하면 입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아하!한겨레>
8기 학생수습기자 권대옥(당동중) 박지우(구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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