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월 박정희의 ‘긴급조치’ 발동을 계기로 일본기독교교회협의회(NCCJ)는 ‘기독자 긴급회의’를 결성해 한국 민주화운동을 조직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이를 주도한 협의회의 나카지마 마사아키 총무가 80년 도쿄의 한 지하철역에서 ‘김대중을 죽이지 말라’는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모습.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68
1973년 8월8일 도쿄의 일본적십자사 바로 앞에 있는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낮에 괴한들에게 납치당했다. 71년 대통령선거에서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박정희에 맞섰던 김대중은 72년 일본 체류 중 10월 유신이 터지자 국외에서 반체제 활동에 나섰다. 기독교계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미주본부를 결성한 김대중은 일본지부를 결성하기 위해 도쿄에 머물다가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된 것이었다. 이 사건은 일본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국외 동포들뿐만 아니라 미국·유럽의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독재 상황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해 10월2일 서울대 문리대생들의 반유신 시위는 위수령의 서슬에 눌려 있던 기독학생운동을 다시금 일어나게 만들었다. ‘10·2 데모’에는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총연맹) 학사단 출신인 나병식·정문화·강연원·황인성 등이 참가한 까닭에 상당수의 기독학생들이 구속 또는 구류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에 총연맹에서는 즉각 ‘구속 기독학생 대책위원회’(기생대책위)를 구성해 옥바라지와 구명활동을 전개했고, 이 과정에서 교회의 민주화운동 참여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기생대책위는 이후 가톨릭학생 서울대교구연합회(팍스 로마나)와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대학생협의회가 가세하면서 ‘구속학생 대책위’로 이름을 바꾸어 광범위한 연대 활동에 나서게 된다.
그해 12월 들어서 장준하 선생의 주도로 재야에서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러자 74년 1월 박정희는 이른바 긴급조치 1·2호를 잇따라 선포하고 장준하·백기완을 첫 위반자로 구속시켰다. 함석헌·천관우·안병무·문동환 등 수많은 재야인사들도 끌려가 심문을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이처럼 유신독재의 탄압이 심해지자 국외의 한국 민주화 지지세력도 뭉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73년 11월 ‘재독한인 그리스도인의 선언’이 발표되었고, 74년 3월 ‘한국민주사회건설협의회’(약칭 민건회)를 조직했다. 프랑스의 ‘한국자주통일추진회’와 ‘한국민족문제연구회’, 스위스의 ‘민주사회건설협의회’, 스웨덴의 ‘민주수호협의회’, 덴마크의 ‘민족문제협의회’도 속속 결성됐다.
일본에서는 74년 1월 일본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인 나카지마 목사의 주도로 ‘일본 기독자 긴급회의’가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긴급회의는 ‘한국 민주화운동을 돕고 잘못된 한-일 관계를 반성하는 일본인 운동’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재식은 나카지마와 긴급회의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고비마다 한국 상황에 필요한 도움을 요청했고, 긴급회의는 민주화를 위한 길이라면 무엇이든 지지하고 지원해주었다. 긴급회의는 재식을 비롯한 한국 내 기독운동가들과 긴밀한 협조 아래 <한국통신>이라는 뉴스레터도 발행해 정기적으로 한국 소식을 알리며 일본 내 여론을 형성하였다.
특히 나카지마 목사는 80년 이른바 내란음모조작사건 때 일본에서 결성된 김대중구명위원회에 참여해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그즈음 어느날 재식은 일본교회협의회로 가는 지하철역에서 나카지마가 목에 샌드위치 팻말을 걸고 ‘디제이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마침 아침 출근시간이어서 몹시 붐비던 그곳에서 그는 ‘김대중을 죽이지 말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등이 써진 커다란 팻말을 몸에 붙인 채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는 이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하게 일하는 사람이었다.
나카지마는 평소 재식을 친동생처럼 허물없이 대해서, 우리식으로 하자면 ‘야, 이 새끼’ 하면서 말을 걸곤 했다. 재식에게 ‘시카케닌’이란 별명을 붙여준 사람도 그이였다. 시카케닌은 무사시대에 생겨난 말로 ‘일을 일어나게 만드는 사람’ ‘일을 하게끔 만드는 사람’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한국 민주화를 위한 노력과 한국인에 대해 헌신과 감사를 보여준 나카지마 목사는 돌아가시고 난 뒤인 96년 12월 한국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에서 인권상을 받았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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