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이 뽑은 책
꿈틀이사우루스는 지렁이다. 지렁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지렁이가 신기하고 재미있는 생물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겐 악몽일 뿐이다. 특히 요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진흙탕 등굣길은 온통 지렁이투성이었다. 그러면 우산과 가방을 든 채 지렁이를 밟지 않으려고 깡총거리며 뛰어야 했다. 집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마당의 하수도 근처에서 꿈틀거리던 지렁이, 화장실 문틈의 지렁이들 때문에 화장실을 가지 못한 적도 많았다. 얼마나 지렁이가 싫었던지 한때 나의 소원은 ‘지렁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였다.
그렇지만 캐런 드래포드라는 ‘지렁이 아줌마’가 조금은 수다스럽게 들려주는 <지구를 구한 꿈틀이사우루스>(현암사)는 지렁이에 대한 나의 오랜 미움을 씻어 내기에 충분했다. 아니 지렁이가 사랑스러워졌다. 사실 ‘환경 보호’라는 주제를 가진 책 중에서 재미있는 책을 찾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주 탁월하다. 환경은 소중하다고 구구절절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지렁이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공룡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살아 온 이야기며, 지렁이의 생태, 지렁이에 관한 소소한 상식뿐 아니라 지렁이가 자신의 몸 속에 있는 박테리아를 이용하여 어떻게 땅을 정화하고 쓰레기를 분해하는지가 들어 있다. 그런 이야기 속에 생태계가 어떻게 순환되는지, 환경을 지키는 힘은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알려 준다.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위안을 얻었던 건 세계적인 대문호 셰익스피어조차도 “지렁이의 좋은 점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라는 어리석은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렁이들은 어지간히도 오랫동안 인간에 대해 외사랑을 품어 온 게다. 이제는 그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 책을 열심히 읽은 꼬마 독자들에게 그 짐을 미뤄야 할 것 같다.
배수원/주니어김영사 편집부장 swbae@gimmyo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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