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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교장이 학교운영·승진 쥐락펴락…“제왕이 따로 없다”

등록 2013-06-11 11:52수정 2013-06-11 14:21

교육 흔드는 학교의 갑을구조 <상>
교장이 근무평가 좌우해 ‘갑’
교사들, 이견 있어도 말 못해

학운위도 자문기구라서 한계
학생들이 갑을구조 희생양 돼

전문가 “교사 승진제 개선하고
현실 바로잡는 교사 노력 필요”

서울의 한 중학교는 올해 초 진로탐색집중학년제 시범학교로 선정됐다. 하지만 학교 쪽은 시범학교 신청 때 교사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교감이 교사들에게 “진로탐색학년제 시범학교를 하려고 하니 (겨울방학 동안) 찬반 답을 달라”는 문자를 보낸 것이 전부였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취지와 방법에 대한 사전 설명이 전혀 없었다. 방학 중이라 답을 못 한 교사도 있다는데,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도 교사들은 알 수가 없다”며 답답해했다. 준비 없이 시작되다 보니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진로탐색을 위한 체험을 할 업체를 고를 때마다 가위바위보를 하는 촌극까지 벌어진다.

10일 교육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바탕에는 교장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갑을 구조’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학교의 ‘갑’인 교장과 교감 등 관리자들이 내린 결정이 아무런 토론과정 없이 그대로 교사들에게 내려온다는 것이다. ‘을’인 평교사들은 갑의 지시에 의해 잘못된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문제제기를 하기가 쉽잖다.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 갑을 구조에 갇혀버린 셈이다.

서울의 한 자율형사립고의 사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09년 7월 자사고로 전환한 이 학교는 3년째 정원 미달을 기록했다. 올해는 10명의 신입생이 빠져나가는 등 문제가 나타나고 있지만, 교사들이 일반고로 다시 전환하자는 말을 꺼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2008년 3월 새로 온 교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보니 교사들이 문제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 학교의 오아무개(62) 교감은 2009년 자사고 전환 당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교장에 의해 학교 업무에서 거의 배제당했다. 최근에는 병가를 내고 학교를 쉰다. 오 교감은 “35년간 이 학교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이렇게 됐다. 충격이 커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자사고 전환으로 수입이 줄어 4월 말에 줘야 할 성과급도 아직까지 주지 않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말을 꺼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학교의 민주화가 어려운 까닭은 교사들의 승진구조 때문이다. 교육공무원 승진규정을 보면 평교사가 교감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경력점수와 근무성적, 연수성적, 가산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근무성적평가(100점 만점)가 교장(40점)·교감(30점)·동료교사(30점)의 평가 등으로 구성된다. 교장·교감의 역할이 가장 크다. 갑을 구조가 가장 예리하게 작동하는 지점이다. 교사 출신의 동훈찬 국회 보좌관은 “교감이 되려면 승진점수 120점을 채워야 하는데, 2~3년 전 경남 김해에서 자신이 ‘일수’(교장에게 가장 높은 평가 받는 것)를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교사가 교실에서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중요한 의사 결정 때 다양한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듣기 위해 학부모와 지역 인사 등으로 구성된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를 설치하도록 2000년에 의무화됐지만, 학교 예·결산 등 초중등교육법이 정한 일부 사안에 대해서만 심의할 수 있다. 게다가 사립학교 학운위는 심의기구가 아닌 자문기구여서 자사고 전환 등에 반대한다 하더라도 강제력이 없다. 교육계에서는 상당수 학교에서 교장이 선호하는 학운위원들이 출마하고 실제로 선출되는 관행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우현 국사봉중 혁신부장은 “학교에서는 교장의 권력을 제왕적 권력이라고 표현한다. 그게 너무 오랫동안 이어져 상당수 학교에서 학교의 분위기나 교사들 간의 관계가 수직적 통제구조로 일반화됐다. 그러다 보니 교장들은 자신들이 통제하기 어려운 ‘교포족’(교장 포기족)을 가장 싫어한다는 말도 있다”고 말했다.

교장이 혼자 결정하는 의사결정 구조는 학교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렵게 만드는 한계도 있다. 내부공모로 교장이 된 박수찬 서울 영림중 교장은 “많은 교장들이 혼자 결정을 내리다 보니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웬만한 일은 새로 시도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영림중은 모든 결정을 내릴 때 평교사들과 함께 토론 과정을 거치다 보니, 자신있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남 경북대 교수(교육학)는 “(교장이) 점수를 매기고 승진과 전근으로 옭아매는 제도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동시에 그런 제도 속에서도 교육을 위해 현실을 바꾸려는 현직 교사들의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음성원 김지훈 기자 esw@hani.co.kr


갑 되는 지름길은 장학사…선발비리 ‘덫’ 빠지기도

평교사로 시작한 이들보다
중고교 교장 5년6개월 빨라

‘을’로만 살기에 지친 교사들은 ‘갑’이 되는 왕도인 장학사를 꿈꾼다. 최근 충남에서 벌어진 교육전문직(장학사) 선발시험 문제 유출 사건은 이런 욕망의 민낯을 보여준다.

“제 인생이 이렇게 추락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검은 제의를 받기 전까지는 나름 정직하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2012년에 벌어진 장학사 시험문제 유출 비리에 연루돼 지난 3월 구속된 부장급 고교 교사 김아무개(47)씨는 경찰 조사에서 하소연하듯 말했다.

장학사 시험을 앞둔 지난해 6월 말, 그는 충남교육청의 김아무개(50) 장학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잘되도록 위에 이야기해주겠다. 그러려면 충남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금전적으로) 부담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김 교사는 경찰에서 “내가 소문으로만 듣던 ‘낙점’이 됐구나, 어차피 이것을 거절하면 눈 밖에 나서 내가 시험을 잘 봐도 합격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김 교사는 김 장학사 쪽에 2000만원을 건네고 장학사 시험 문제를 미리 넘겨받아 시험에 합격했지만, 경찰 수사로 비리 사실이 드러나 합격이 취소됐다.

이처럼 교사들이 장학사가 되길 원하는 이유는 평교사 경력만으로는 교장·교감이 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교장이 되는 빠르고 쉬운 길은 장학사가 되는 것이다. 충남교육청 행정사무감사 자료를 보면, 2008~2011년 4년 동안 중·고교 교장 신규 임용자 157명 가운데 장학사를 거친 이들은 평균 28년3개월 만에 교장이 된 반면, 평교사의 길만 걷다 교장으로 승진하려면 33년9개월이 걸렸다. 장학사 코스가 무려 5년6개월이나 빠른 것이다. 초등학교 교장도 장학사를 거친 이가 평균 31년5개월로, 그렇지 않은 이들(35년3개월)보다 훨씬 빨랐다.

경기도교육청 정책담당 장학사로 특별채용된 오재길(44)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은 “교장 자격증이 없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데 전념해온 교사들이 교장이 될 수 있는 방법인 교장공모제를 늘리고, 미국처럼 교장 양성학교를 만들어 교장이 되는 길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전/김지훈 기자, 음성원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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