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계약 만료를 앞둔 영어회화전문강사들이 1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소복을 입고 해고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학교 영어강사 ‘돌려막기’
교육청에 ‘해고뒤 신규채용’ 공문
경력자 우대 혜택도 전혀 없어
“정부가 나쁜일자리 양산” 지적
교육청에 ‘해고뒤 신규채용’ 공문
경력자 우대 혜택도 전혀 없어
“정부가 나쁜일자리 양산” 지적
영어회화전문강사(영어강사) 대량해고 사태는 정부가 이들을 2009년 처음 뽑을 때부터 예고된 것이다. 학교 안에서 상시적으로 필요한 교사의 업무를 정규직 채용으로 해결하지 않고,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4년짜리 기간제 노동자 채용으로 접근하면서 이미 씨앗은 뿌려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학교의 정규적인 업무를 4년짜리 비정규직으로 ‘돌려막기’하며 ‘질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는 2009년 사교육 시장이 선점하고 있던 실용 영어회화 교육을 공교육이 흡수하겠다는 목적으로 영어강사 제도를 도입했다. 도입 당시 영어몰입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영어 사교육을 막고 공교육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제도 도입을 강행했다. 특히 우수인력 모집을 위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기간제 근로자 보호법상 2년으로 제한된 기간제 고용을 예외적으로 4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지난해 말에는 4년 이상 근무한 경우에도 4년을 추가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고 보도자료까지 발표했지만, 올해 들어 철회됐다. ‘공수표’를 계속해서 남발한 것이다. 지난 14일에는 “학교 비정규직 11만명을 내년까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지만, 영어강사는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간제 근로자 보호법의 예외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들은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자가 아니다. 또 신규 채용을 원하는 응시자도 많아, 경력자에 대한 특혜를 주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교육부는 지난 10일 각 학교가 근무기간 4년을 맞은 영어강사를 계약해지하고 새로 채용하게 하라는 내용의 ‘영어회화전문강사 제도 업무편람’을 시·도교육청에 보냈다. 무기계약직 전환을 원하던 영어강사 526명의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오는 8월에 계약해지되는 526명의 영어강사는 학교별 신규 채용 과정을 거쳐 선발돼야 계속 일할 수 있다. 이들은 2009년에 시·도교육청이 직접 관리하는 3단계의 엄격한 시험 과정을 통과하고 4년의 경험을 쌓은 인력들이지만, 신규 채용 과정에서 경력자 우대 혜택은 전혀 없다. 또 이 과정을 거쳐 어렵게 재고용이 되더라도 4년 단위의 지속적인 고용불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배동산 공공운수노조 학교비정규직본부 정책국장은 “정부는 앞으로도 영어강사 제도를 계속 유지할 방침이다. 영어강사는 사실상 상시 지속적인 직종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인력은 비정규직으로 뽑는 방식을 택해 질 나쁜 일자리 양산을 정부가 나서서 하고 있는 셈이 됐다”고 꼬집었다.
학교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말 부산시교육청은 일선 학교의 방과후학교 운영실무원(코디) 400여명을 무더기로 계약해지한 바 있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달 25일부터 약 한달간 전국 초중고 1만1000여개교에서 6475명의 학교 비정규직이 계약해지됐다. 필요에 의해 뽑았던 교육 인력들의 계약해지를 남발해, 교육당국이 교육현장의 안정성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어강사협의회 고선경 대표는 “62살까지 근무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고문을 보고 시험에 응시했는데, 정부가 수차례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 특히 사교육을 못 받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영어를 가르치며 공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는데 헌신짝처럼 버려지게 됐다”고 말했다.
음성원 김지훈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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