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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여러 과목 교사 함께 수업하니 사고력 쑥쑥

등록 2013-06-24 20:15

13일 오후 서울 동북고 1학년 교실에서 다른 학교 교사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권영부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선순환’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13일 오후 서울 동북고 1학년 교실에서 다른 학교 교사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권영부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선순환’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함께하는 교육] 서울 동북고 ‘융합독서’ 현장
교과서 아닌 단행본 교재로
수학·국어 등 전공 살려 ‘팀 티칭’
학생들은 생각하는 힘 커지고
참여 교사에게도 좋은 자극제

“‘내가 어디에 서 있더라도 모두가 나를 볼 수 있도록 광장을 설계하라’는 교황 알렉산데르 7세의 명령에 17세기 당시 이탈리아 최고의 건축가였던 베르니니도 무려 4년간 고민했대. 마침내 생각해낸 방법은 동심원이었지.”

지난 13일 저녁 서울 동북고등학교 1학년 1반 교실. 권영부 경제교사가 <이만근 교수의 수학 오디세이>란 책과 학습자료를 펼쳐놓고 ‘동그라미로 보는 경제 현상’이란 주제로 ‘융합독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교과서가 아닌 단행본 책을 교재 삼아 다양한 교과담당 교사가 동시에 수업을 이끌어가는 통합 수업이었다. 이날 수업에는 권 교사 외에도 김종덕 수학교사와 강현식 과학교사, 임영태 국어교사가 참여했다.

책의 제5부 ‘바티칸 시티에 얽힌 두 가지 원 이야기’에서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 설계에 동심원이 활용된 사례를 소개하던 권 교사가 갑자기 분필을 내려놓고 “수학 선생님께 물어볼까?”라고 제안했다. 교실 뒷자리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김종덕 수학교사는 걸어 나와 칠판에 동심원을 그렸다.

“원의 구성요소는 위치를 결정하는 ‘중심’과 크기를 결정하는 ‘반지름’이지. 중심은 같은데 반지름이 다른 원들을 동심원이라고 해. 권영부 선생님이 말씀하신 성 베드로 광장의 동심원은, 두 개의 동심원을 그려놓고 반절로 잘라서 그 끝을 가로로 길게 늘어뜨린 형태를 말하는 거야.”

학생들은 김 교사의 설명으로 베르니니의 건축설계안에 한 걸음 다가섰다. 공현민 학생은 “언뜻 이해되지 않던 동심원을 활용한 건축설계안이 수학 선생님 덕분에 단번에 이해됐다”고 했다.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권 교사의 얼굴에도 미소가 비쳤다.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이자 권 교사는 수업의 집중도를 더욱 높여갔다. ‘동그라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디자인에서 출발한 수업은 동심원과 건축설계를 거쳐, 원처럼 순환하는 경제 현상으로 전개됐다. 이번에는 학생들이 교실 앞으로 나왔다. 꼬리잡기 놀이를 하듯 학생들은 서로의 등을 잡고 둥글게 서서는 시계 반대방향 순서로 경제의 선순환 과정을 표현했다. ‘주가 상승 → 기업 투자 증가 → 고용 확대 → 경제 발전’이 학생들이 꼽은 선순환 흐름이었다.

동북고는 지난해 3월부터 ‘융합적 사고를 통한 독서토론, 창의적 글쓰기 및 사회공헌활동 강좌’라는 융합독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 참여를 희망하는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1주일에 2시간씩, 한 권의 책을 네다섯 차례에 걸쳐 나누어 읽고 토론한다. 그동안 <오래된 미래>, <다윈 지능>, <열하일기>, <생각의 지도> 등의 책을 소화했다. 수업을 이끌어가는 교사는 모두 7명. 수학·과학·국어·윤리·경제 등 교과담당 교사뿐 아니라 진로·사서교사도 참여한다. 각자의 전공분야에 맞춰 책을 읽은 후, 함께 토론하며 수업 방향을 잡아간다. 권 교사는 “과거에는 교과서를 암기하고 재생하는 능력이 공부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가 요구된다. 여러 교사가 동시에 수업하는 ‘팀 티칭’이 학생들의 생각하는 힘을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융합독서 수업은 교과지식 통합에 그치지 않는다. 진로교사와 사서교사의 수업에서는 미래 자신의 모습과 사회공헌을 고민한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이란 책을 다뤘을 때 이효선 진로교사는 예술 직업군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을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김소연 사서교사는 수업 내용을 학생들과 신문으로 제작해 주변 학교와 도서관 등에 배포했다. ‘지식나눔활동’으로 학생들이 사회공헌에 눈뜨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교사들의 의기투합은 학생들의 호응으로 이어졌다. 이명빈 학생은 “교과서는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큰 반면 융합독서는 우리 스스로 공부할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선생님 질문에도 스스럼없이 손을 들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고준영 학생은 “선생님과 학생 사이가 권위적이고 수직적 관계라면 불가능한 수업”이라며 “학생 입장을 헤아리고, 타 교과 선생님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정계에 입문하셔도 좋을 것 같다”고 웃었다.

참여 교사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된다. 강현식 과학교사는 “공통분모인 책을 놓고 브레인스토밍을 하다 보면 타 교과에서도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과학의 파동 개념은 경제의 경기주기로 확장되고, 경제의 유·무형 가치는 문학적 현실과 허구로 연결된다. 임영태 국어교사는 “자연과학 글을 다룰 때도 글의 구조 파악에 그치지 않고 융합독서로 익힌 이과적 개념을 가져와서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kyw@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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