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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설렌 개학날 행복한 첫걸음 “한달새 이리 의젓해졌구나”

등록 2005-09-04 20:55수정 2005-09-04 20:55

김권호/ 서울 일신초등학교 교사 <A href=\"mailto:kimbechu@hanmail.net\">kimbechu@hanmail.net</A>
김권호/ 서울 일신초등학교 교사 kimbechu@hanmail.net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개학날이다.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설레면서 긴장된다. 개학 첫날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 궁리하며 걷는데 벌써 교실 앞이다. 복도 쪽 창문을 활짝 다 열고는 교실로 들어서며 장난스럽게 큰 소리로 먼저 인사했다. “안녕들 하십니까!”

교실을 한 바퀴 돌면서 아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긴장했는데 막상 교실에 들어서니 편안하다. 서로 바라보며 웃기도 하고, 얼굴이 탔네 어쩌네 수작을 걸기도 한다. 그런데 수진이 기분이 영 아니다. 늦잠 잘 자다가 오늘부터 일찍 나오려니까 힘들었나, 벌써 누구랑 싸운 건가, 자꾸 신경이 쓰이는데 그냥 두었다.

방학 동안 어머니가 돌아가신 철수한테 갔다. 의기소침하지 않고 잘 견디고 있다. 장례식장에서 철수 할머니께서 철수 잘 보살펴 달라 하시며 눈물을 훔치셨지. 목이 메어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 얼른 다른 아이에게로 갔다.

일기 쓰는 데 재미가 들린 유진이는 아까부터 방학 동안 쓴 일기장을 꺼내들고는 나를 흘낏흘낏 쳐다본다. 얼른 자기를 아는 척해 달라는 뜻이다. 일기장을 살펴보니 날마다 빽빽하게 제 생각을 잘 썼다. 일기를 쓰면 무엇이 좋은지 이젠 아는 눈치다. 1학기 때는 내가 써 주는 댓글 때문에 쓰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혼자서도 이제 잘한다.

규현이도 얼굴이 마주치자 그냥 웃기만 한다. 규현이 엄마에게 들으니, 규현이가 방학 과제인 일기 쓰기를 스트레스 받지 않고 제대로 해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일기장을 살펴보니, 가끔씩 빼 먹었지만 역시 내용도 충실하고, 글씨도 바르다. 이 아이도 일기 쓰는 맛을 제대로 알아가고 있구나. 녀석들 많이 컸다.

방학 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은 지원이는 답장 내용으로 자꾸 재잘거리는데 같이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은 이림이는 그만 무뚝뚝하기만 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그렇게 아이들을 살폈다. 겉보기와는 달리 의젓해진 모습이라 안심이 된다. 2학기 때는 이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야 할 의무가 내게 있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려고 이제 남은 시간은 체육을 하자 그랬다. 그렇게 강당에서 공놀이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평화롭고 좋다.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끝날 때 선심 쓰듯 청소도 내일부터 잘하고, 오늘은 자기 자리만 깨끗이 하자 선언했다.

집에 갈 시간, 아까는 얼굴빛이 어두웠던 수진이가 내게 쪼르르 오더니 “선생님, 이 삼순이 바지, 엄마가 만들어 줬어요. 예쁘지요?” 하면서 바지를 잡고는 모델처럼 한 바퀴 휙 돈다. 활짝 웃는다. “그래, 예쁘다.” 녀석, 마음이 풀렸구나.


숙제 점검을 하는데, 이림이가 일기장에 쪽마다 “선.생.님.보.고.싶.었.어.요”라고 크게 쓰고 색연필로 예쁘게 꾸며 놓았다. 기분이 환해졌다. 긴장했던 나도 아이들도 그렇게 마음이 풀렸다. 행복한 2학기 시작이다. 김권호/ 서울 일신초등학교 교사 kimbech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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