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아가멤논과 예언녀 카산드라를 살해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테네 여신이 마련한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는다. 페터 슈타인이 연출한 <오레스테이아>(모스크바극장, 1994년)의 한 장면.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아이스킬로스는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비극 작가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기원전 458년 공연되었다는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오늘날까지 그리스 비극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세 편의 비극, ‘아가멤논’, ‘코에포로이’, ‘에우메니데스’가 내용상 서로 연결되어 있다.
트로이 원정길에 나선 아가멤논은 아르테미스 여신의 노여움을 풀고 순풍을 얻기 위해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다. 딸을 잃고 남편을 증오하게 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조카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아가멤논이 개선 장군으로 귀환하자마자 살해한다. 그들의 딸 엘렉트라는 어머니에게 복수할 것을 결심하고, 동생 오레스테스로 하여금 신들의 보복을 경고하는 어머니를 살해하게 한다. 이제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들에게 끊임없이 쫓겨다닌다. 죄와 벌의 사슬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아테나 여신은 아크로폴리스 맞은 편에 있는 아레스의 언덕에 법정을 열고 오레스테스를 재판한다. 여신은 우선 법정을 구성한다. “나는 법을 확립할 것이오… 나는 이 살인 사건을 진실하게 따지기 위하여 시민들 가운데 가장 유능한 자들을 재판관으로 뽑아 가지고 올 것이오.” 그리고 그것이 피의 복수를 대신할 정의의 보루로서 상설 법정이 되리라고 선언한다. “백성들이여, 그대들은 이제 법을 들어라. 유혈 사건을 최초로 재판하는 자들이여! 이 재판관들의 심의회는 백성들을 위하여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존속하리라.”
동태복수법 ‘탈리오의 법칙’이 지배하던 당시, 민주적 법정을 열어 살인에 대한 살인의 연쇄 고리를 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연쇄 고리에서 살인은 극단의 범죄이자, 극단의 처벌이다. 그러므로 법정을 연다는 건 무엇보다도 극단의 범죄에 대해 반드시 극단의 처벌을 하지 않는 길을 찾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레스테스의 살인죄에 대한 재판관들의 투표는 찬성과 반대가 같이 나온다. 아테나 여신이 개표 전에 세운 규칙에 따라 가부동수일 경우는 무죄가 된다. 이에 복수의 여신들은 “그대들은 옛 법들을 짓밟는구나.” 하고 외친다. 그러나 오레스테스는 방면되고 아테나 여신의 설득 덕분으로 더 이상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겨다니지 않게 된다. 오레스테스의 방면 결정은 또한 죄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벌로써 탕감되는 게 아니라, 합리적 결정에 의해 ‘면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법의 본질적 역할이 벌을 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가능한 한 면죄의 합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데 있다는 것을 뜻한다. 면죄의 가능성이 우선이고, 처벌의 필연성이 차선이라는 것이다.
아테나 여신이 연 법정은 종교적이고 가족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죄와 벌의 사슬이 정치적이고 법적인 차원으로 대체되는 것을 상징한다. 한편 법은 인간 세상에서 죄와 벌의 문제를 ‘일단락’ 짓지만,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수의 여신들이 불만을 토했듯이, 법은 모두를 만족시키며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 다만 사건을 일단락 짓는 합리적 통로일 뿐이다. 이는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착각에 대해 고대의 지혜가 발한 첫 경고음이기도 하다. 인간에게는 그때부터 가장 합리적인 자율 규범 체계를 이루어가기 위한 지난한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레스테이아>는 오늘날에도 죄와 벌에 연관한 문제들, 예를 들어 ‘합법적 살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형제도, 형벌과 사면의 문제 등에 관해 법철학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산대 교수 anem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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