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앞니 빠진 임진수는 여러 해 전 나의 제자이다. 그때 초등학교 2학년이었으니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 아마도 빠진 앞니가 다시 나왔을 터이다. 당시 녀석은 장난꾸러기 2등으로 우리 반에 들어왔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장난꾸러기 2등을 고수한 채 우리 반을 떠났다. 말하자면 장난꾸러기 측면에선 그 해 1년 동안 진수에게 내가 아무런 영향도 끼친 바 없다는 이야기이다.
어쨌거나 그 무렵엔 학부모님들이 조를 짜서 하루에 두 분씩 급식 봉사활동을 해주셨다. 내가 제자들을 교문 밖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는 동안 교실 청소까지 도맡아 해주셨다. 어느 날, 진수 할머니가 급식 봉사활동을 오셨다. 진수 어머니가 직장을 다니는 까닭에 대신 오셨는데, 멀리 신림동에서 2호선 전철을 타고 덜컹덜컹 반 바퀴를 돌아 성수동까지 오신 것이었다. 박카스 한 상자 힘겹게 손에 들고. 고마워서 교실청소를 끝낸 진수 할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수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나는 진수 할머니가 가져온 박카스를 따서 하나 권했다. “아이고, 선상님 드셔야지요.” 하시는 걸 “저도 먹을게요. 할머니도 하나 드세요. 힘든 일 하셨잖아요.” 했더니 박카스를 받아 쥐며 하시는 말씀. “일흔 다섯이에요.” “다음부턴 차례가 돼도 오지 마세요. 제가 할게요.” “아니에요. 선상님은 아이들 가르치셔야지요. 우리 진수한테 선상님이 어떤 분이냐고 물어봤어요.”
순간 나는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면서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곤두섰다. 그 동안 장난꾸러기 진수와 보낸 학교생활이 활동사진처럼 뇌리를 스쳤다. 앞니 빠진 진수를 칭찬해준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는 것 같았다. 대신 공부는 뒷전이고 장난만 일삼는 진수를 붙잡아 여러 차례 귀퉁배기를 쥐어박은 기억만 선명하게 떠올랐다. 진수가 그 사실을 미주알고주알 할머니한테 일러바쳤을 걸 생각하니, 등짝에서 주르륵 식은땀이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그때 진수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진수가 그라는데, 선상님이 참 좋은 분이라고 하대요. 우리 진수 잘되게 도와주세요.” 나는 그만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교실에서 장난친다고 귀퉁배기나 쥐어박는 나를, 멀리 사는 할머니가 걱정하실까봐, 참 좋은 선생님이라고 말했다니 어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으랴.
과연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버지란 말인가? 선생이랍시고 제자들을 쥐 잡듯 하는 내가 아버지인가? 그런 선생을 너그러이 용서하고 넉넉히 품어주는 장난꾸러기 진수가 아버지인가? 나는 내 관절이 꺾이는 것 같은 고통을 맛보았다. 그 날 이후 나는 고리타분한 꼰대 의식을 벗어던졌다. 그러고는 하느님을 섬기듯이 어린 제자들을 섬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다.
송언/서울 동명초등학교 교사 so1310@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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